"왜 예년과 달리 (이태원 핼러윈축제) 대비가 없었는지... 참사 전에 (관련) 정보들이 서울경찰청에 다 올라간 것 아닙니까. 언성이 높아서 죄송합니다... (중략)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었는데 숨기고 뺄 게 뭐가 있습니까."
이태원 참사로 딸 이민아씨를 잃은 아버지 이종관씨가 법정 방청석에서 마이크를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피고인들께 호소드린다"라고 외쳤다. 3일 오전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배성중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태원 핼러윈축제 위험 대비 보고서 삭제 의혹 공판 준비기일에서다.
"대형 참사 숨은 내막, 사실대로 밝혀달라" 유족 호소
"피고인들께"로 불린 이들은 정보 경찰들로, 2022년 이태원참사 발생 전 서울 용산경찰서 에서 작성된 이태원 인파 운집 위험 관련 정보 보고서를 참사 직후인 11월 초 삭제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경무관)과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경정)은 삭제 지시를, 하급자인 용산서 정보과 직원 A씨는 지시 이행을 통한 증거인멸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서울경찰청의 지시로 작성된 '핼러윈 데이 앞둔 분위기 및 부담 요인' 제목의 보고서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도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원 참사 유족이 '참사 위험 보고서' 삭제 혐의를 의심 받는 정보경찰들에게 읍소한 까닭은 진상 규명 때문이었다. 이종관씨는 이날 재판부가 '법원에 할 말'을 묻자 "피고인들은 이런 대형참사의 숨은 내막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경찰서 최고급 정보를 다루는 정보관들이 (참사 원인을) 사실대로 밝히는 게 159명 희생자들에 대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위험을 인지하고도 과거와 달리 사전 대비를 하지 않은 이유를 법정에서 밝혀달라는 호소였다. 그는 "정보관이 (위험을) 파악해 보고서를 쓰면 상급에서 판단해 대책을 수립하지 않나. 하나같이 (위험을) 인식 못했다고 하시는데,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1990년대 용산에서 의경으로 근무한 사람이 그 당시에도 핼러윈 데이 때는 경찰관을 골목골목 배치해 혼잡경비했다고 증언했었다. 왜 사전대비가 없었나... 아까운 청춘들이 다 저승으로 갔다"고 말했다.
'지시 안 했다' vs. '상부 지시라 어쩔 수 없었다'...엇갈리는 주장
이날 재판에선 실무 하급자인 정보과 직원 A씨를 제외하고 지시 라인인 박 전 부장과 김 전 과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A씨 측 변호인은 "상사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런 행위를 했기에 위법성이 낮게 평가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구속 기소된 박 전 부장과 김 전 과장은 푸른색 수의를 입은 채 피고인석에 착석했다. 이날 공판에서 박 전 부장 측은 '삭제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항변했다. 김 전 과장은 '상급자인 박 전 부장의 반복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었고, 법적 문제는 없다'는 취지로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날 공판에는 고 이민아씨 아버지 이종관씨뿐만 아니라 고 이주영씨, 고 이지한씨의 유족 등 이태원참사 유족들이 방청을 통해 재판을 지켜봤다. 다음 공판은 오는 24일 오후 2시 30분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