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께서 입원하셨다는 연락이 왔다. 혼자 가기 좋은 여행지를 검색하고 기차표와 숙소를 알아보고 있을 때였다. 전날 전화를 드렸을 때는 목이 가라앉고 몸살기가 약간 있다고만 하시더니 증세가 심해지셨다고 했다.
검사 결과, 심한 위궤양에 코로나까지 걸리셔서 위장과 폐의 상태가 모두 안 좋아지셨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입실이 허락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매일 전화로만 상태를 확인하는 중이다. 낼모레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라서 요즘 부쩍 몸의 이곳저곳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그리고 이틀 후 친정엄마도 편찮으시다는 연락이 왔다. 갑작스런 심한 옆구리 통증으로 병원에 가려 하는데 하필 연휴라서 응급실 이외에는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고 하셨다. 기저질환을 앓고 계시는 엄마는 행여 응급실에서 독감이나 코로나라도 걸리게 될까봐 연휴동안 진통제로 버티고 계신다고 하셨다. 결국 여행 계획을 접고 부모님께 다녀오기로 했다.
양쪽 부모님 모두 이제 연세가 많으시다 보니 번갈아 가며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해오신다. 그때마다 가슴에 돌덩어리를 얹은 듯 마음이 무거워진다. 시댁과 친정이 모두 지방에 있다 보니 갑작스런 연락을 받으면 바로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다. 내려가서도 편찮으신 어머니들을 보살펴 드리는 것 말고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더 있다. 집에 혼자 남겨지신 아버지들의 식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평생 스스로 밥을 해 드신 적이 없다보니 누군가는 식사를 챙겨드려야만 한다. 시골에 계시는 시아버지는 이웃집에서 신세지고 계신다고 하고 도시에 사시는 친정아버지는 밖에 나가 사드신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머니들의 부재가 길어지면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간 남편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지만
가방에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챙겨 내려갈 준비를 하다 말고 부엌으로 갔다. 급하게 쌀을 씻어 밥을 앉히고, 냉동고에 있던 고기를 꺼내 해동시켜서 소고기무국을 끓였다. 내가 집을 비우는 며칠동안 우리 식구들의 끼니를 위한 준비였다. 남편은 자신의 밥은 신경쓰지 말라고 했지만, 내가 없으면 배달음식으로 해결할 걸 뻔히 알기에 안 해놓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득, 남편도 늙으면 지금의 시아버지나 친정 아버지와 별 다를 게 없이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식들의 도움을 기다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후 내가 밥을 도맡아 해왔고, 집을 오래 비운 적도 없으니 남편 역시 스스로 밥을 해먹어 본 경험이 별로 없으니 말이다.
남편이 하는 건 어째 어줍어 보이고 내 성에도 안 차서 어지간해서는 남편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남편은 돈을 벌어오니까 전업주부인 내가 집안일을 책임지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밖에 나가 일하는 남편에게 집안일까지 시키는 건 주부로서 직무유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편을 위해서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세탁기 돌리는 법을 가르쳐야겠다. 만약 늙어서 내가 없더라도 남편이 자식들 도움 없이 혼자 지낼 수 있도록 미리미리 연습을 시켜야 할 것 같다. 남편들이 집안일을 하는 것은 아내를 위한 것만이 아니고, 100세 시대에 자신을 위해 꼭 필요한 노후준비라는 사실을 남편들도 알아주기를 바란다.
벼러왔던 안식년의 여행은 이렇게 무산되었다. 한가하고 느긋한 여행 대신에 병원과 집을 오가며 부모님을 보살펴 드려야 한다. 시간은 많아졌지만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은, 나의 안식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