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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의 옛 시가지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습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시가지 안에는 여전히 오래된 건물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오래된 건물 안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붐비는 광장을 빠져나와 구시가 언덕에 오르면 주변은 적막합니다. 문 앞에 의자를 두고 적적한 오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만 몇 보일 뿐입니다. 길을 따라 천천히 오르막과 계단을 올랐습니다.

그리 높이 오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바쿠 시내의 전경이 보입니다. 오래된 건물과 멀리 보이는 카스피해. 그리고 높이 '알로프 타워'가 서 있습니다. 이것이 바쿠의 오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풍경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알로프 타워와 구시가
알로프 타워와 구시가 ⓒ Widerstand

'알로프 타워'는 불꽃을 형상화한 모양의 고층 빌딩입니다. 3개의 빌딩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 높은 건물은 182m 높이입니다. 층수로는 33개 층이라고 하죠. 지금이야 이보다 높은 건물이 많지만, 2013년 완공 당시만 해도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습니다.

알로프 타워가 불꽃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은, 당연히 '불의 나라'라는 아제르바이잔의 별명 때문입니다. 여기서 불은 바쿠에 남은 조로아스터교의 흔적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풍부한 지하자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알로프 타워
알로프 타워 ⓒ Widerstand

조로아스터교와 페르시아만큼이나, 석유와 지하자원은 아제르바이잔의 역사에 많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바쿠의 석유 산업 발전은 아제르바이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니까요.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오래 전부터 석유를 사용해 왔다고 하지만, 본격적인 시추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초반입니다. 19세기 중반부터는 원유 정제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죠. 특히 1873년 러시아가 바쿠의 석유 산업을 민간에 개방하고, 규제를 해제하면서 바쿠의 석유 산업은 급격히 성장합니다.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의 형, 로버트 노벨 역시 바쿠의 석유 산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었습니다. 당시 노벨 가문의 브라노벨(Branobel) 사는 바쿠를 기반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회사 중 하나로 성장하기도 했죠.

물론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 제국과, 이어 소련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러시아 제국이 붕괴한 뒤 잠시 독립국가를 꾸렸지만, 러시아는 바쿠의 석유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요. 실제로 2차대전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소련의 에너지 공급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죠. 독일은 바쿠의 석유 공급을 차단하기 귀한 '에델바이스 작전'을 실시하기도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바쿠 성벽
바쿠 성벽 ⓒ Widerstand

소련이 해체된 뒤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석유는 여전히 아제르바이잔의 역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축이었습니다. 1991년 10월 18일 아제르바이잔은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독립한 아제르바이잔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죠.

'나고르노-카라바흐'라는 지역은 공식적으로 아제르바이잔에 속해 있었지만, 인구는 아르메니아계가 다수였습니다. 소련이 해체되고 아제르바이잔이 독립하면서,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 속한 아르메니아계 지역이 생겨버린 것이죠.

이 지역의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아르차흐 공화국'이라는 국가를 만들고 아제르바이잔에서 독립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지역의 행방을 둘러싸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갈등했습니다. 결국 전쟁이 벌어졌죠.

전쟁은 아르메니아의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주변 지역을 장악했죠. 아르차흐 공화국은 사실상의 독립국가가 됐습니다. 패전한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대통령이 사퇴하고, 쿠데타가 벌어지는 등 정치적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헤이다르 알리예프 공항. 대통령의 이름을 따왔다.
헤이다르 알리예프 공항. 대통령의 이름을 따왔다. ⓒ Widerstand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성장한 정치인이 KGB 출신의 헤이다르 알리예프(Heydar Aliyev)였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었고, 곧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군과 정보기관을 장악하고 절대적인 대통령제를 꾸렸죠. 개인 숭배와 언론 자유 탄압, 인권 침해는 일상이 되어갔습니다.

1993년 집권한 헤이다르 알리예프 대통령은 재선을 거쳐 2003년까지 집권했습니다. 2003년 그의 나이는 이미 80세였고, 건강 문제로 사임을 선언하죠. 하지만 독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들인 일람 알리예프(lham Aliyev)가 대통령직을 세습했습니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직 승계 순위를 바꾸고, 아들을 총리로 임명해 대통령직을 물려준 것입니다.

일람 알리예프는 현재 20년째 임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연임 제한은 이미 사라졌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기간 집권이 이어질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미 영부인이 부통령직을 겸직하고 있으니, 일람 알리예프 이후에도 정권의 세습은 이어질지 모릅니다. 물론 이 독재의 뒤에는, 석유로 쌓아올린 부가 있었죠. 독재와 인권 탄압 속에서도, 석유로 쌓아올린 부는 정권을 지탱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바쿠 시내의 국기
바쿠 시내의 국기 ⓒ Widerstand

이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가려져 잊혀졌지만, 2020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에도 전쟁이 있었습니다. 역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이 문제가 되었죠. 두 달여간 전쟁이 이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아제르바이잔의 승리로 전쟁이 끝났습니다. 아르메니아는 지난번 전쟁에서 차지한 영토 상당 부분을 상실했죠. 아르메니아는 서방 국가 상당수의 지지를 받았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했습니다. 반면 독재국가로 국제사회의 제재 논의까지 오갔던 아제르바이잔은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전쟁의 승패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분명 석유와 지하자원은 중요한 변수였습니다. 자원 부국인 아제르바이잔을 서방 국가에서 쉽게 적대시할 수 없었던 것이죠. 바쿠에서 조지아를 거쳐 튀르키예 제이한(Ceyhan)으로 연결되는 석유 파이프라인은 유럽 입장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습니다. 아르메니아가 그간 러시아나 이란과 가까운 행보를 보였던 것도 문제였죠.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튀르키예를 비롯한 우방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튀르키예의 지원은 그 자체로 서방 세계의 개입을 주춤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로부터 석유를 수입할 수 없어, 석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아제르바이잔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제르바이잔에 무인기를 비롯한 무기도 지원했죠.

그렇게 전쟁은 아제르바이잔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전쟁의 승패를 두고 어느 한쪽의 편을 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승전을 기반으로, 아제르바이잔의 독재정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쿠 구시가
바쿠 구시가 ⓒ Widerstand

무슬림 세계 최초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꾸렸던 아제르바이잔은 이제 세습 독재국가가 되었습니다. 석유는 한때 성장과 근대화의 기반이었지만, 곧 침략의 원인이 되었고, 이제는 독재국가의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제르바이잔은 여러 의미에서 불꽃의 나라였고, 석유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지하자원이 만들어낸 부가, 아제르바이잔의 역사에 긍정적인 의미만을 남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아제르바이잔에 남은 '자원의 역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세계일주#세계여행#아제르바이잔#바쿠#코카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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