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이스라엘의 텔 아비브입니다. 항공편이 연착된 탓에,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한 것은 벌써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습니다. 조용히 체크인을 마치고, 다음날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텔 아비브의 기차역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데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트램을 타고 조금만 가면 높은 성벽이 나타납니다. 이곳이 예루살렘의 구시가입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예루살렘은 성지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가 공유하는 성지죠. 예루살렘은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다윗 왕이 중건한 도시로 알려졌습니다. 이후에는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면서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가 되었죠.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면서 예루살렘은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페르시아와 마케도니아, 로마가 예루살렘을 지배했죠. 로마가 예루살렘을 지배하던 시기, 이 땅에 나타난 이가 예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고, 예루살렘 땅에서 십자가형을 받았다가 부활했습니다.
예루살렘은 로마의 분열 이후 동로마의 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함마드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슬람 세력이 차지했죠. 예루살렘은 이슬람교에게도 중요한 성지입니다. 무함마드가 예루살렘에서 천국으로 올라가 여러 예언자를 만난 뒤 돌아왔다는 전승이 있기 때문이죠. 메카, 메디나와 함께 예루살렘이 이슬람교의 3대 성지입니다.
하지만 성지의 역사는 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11세기부터 유럽에서는 십자군을 조직해 성지인 예루살렘을 차지하고자 했죠. 실제로 십자군은 한때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교도에 대한 학살과 약탈이 자리하고 있었죠. 9차에 걸친 십자군의 원정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습니다. 4차 십자군은 예루살렘 정복을 위해 출발했다가, 오히려 같은 기독교 국가인 동로마 제국을 공격하는 엉뚱한 결말을 낳기도 했죠.
이후 예루살렘은 맘루크 왕조나 오스만 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917년 말, 1차대전 와중에 영국군에 의해 점령되었죠. 십자군 전쟁 이후 수백 년 만에 유럽인이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배 역시, 수백 년 전 십자군 전쟁만큼이나 예루살렘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미 영국은 외무장관 아서 벨푸어의 편지를 통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국가를 세우는 데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었습니다. 하지만 2년 전에는 "아랍 지역에 아랍인의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맥마흔 선언을 발표한 바 있었죠. 모순된 약속이었습니다.
2차대전 이전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의 이주가 시작됩니다. 위협을 느낀 아랍인들은 1936년부터 대규모 봉기를 통해 영국에 저항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끝은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낳은 폭력적인 진압이었죠.
1945년 2차대전이 끝나고, UN 총회의 결의에 따라 영국은 이 땅에서 철수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죠.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의 행방을 둘러싸고 또 수 차례의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원래 UN의 계획은 팔레스타인을 아랍인 지역과 유대인 지역으로 구분하고, 예루살렘은 UN의 관리 하에 중립지대로 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도 아랍인도 이 제안에 만족하지 못했죠.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직후 1차 중동전쟁이 벌어졌고, 결국 예루살렘은 둘로 나뉘게 됩니다. 서쪽은 이스라엘의 영토가, 동쪽은 요르단의 영토가 되었죠.
하지만 이 역시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원래 요르단의 영토였던 동부 예루살렘까지 모두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전역이 이스라엘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1994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탄생한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협약대로라면 예루살렘의 동부 지구는 팔레스타인의 영토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예루살렘 전역을 장악하고 있죠. 팔레스타인 영토 안에도 불법으로 유대인의 정착촌을 건설하며 영토 확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성지를 둘러싼 싸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싸움이 이어지는 천여 년의 세월 동안, 예루살렘에서도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화려했다던 예루살렘 성전은 이제 벽 하나로만 남았습니다. 이 '통곡의 벽' 앞에서 오늘도 유대교 원리주의자인 '하레디'들은 기도를 하고 경전을 읽습니다.
도시는 구역으로 나뉘었습니다. 유대인이 사는 지역과 무슬림이 사는 지역, 기독교인이 사는 지역은 철저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구역 사이를 오가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 같은 문외한도 분명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각 구역의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높은 심리적 장벽이 있는 것이겠죠.
예루살렘의 구시가 안에는 여러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가 갇혀 있었다던 감옥과 그가 십자가를 끌고 걸었던 거리가 남아 있습니다. 성벽 밖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올랐다던 겟세마네 동산도 있죠. 올리브 산에 오르면 예수가 부활한 뒤 승천했다는 자리도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화려했던 도시의 흔적은 썩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딜 가든 어수선하고 불안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금을 덧씌운 바위의 돔에는 무슬림이 아니면 입장할 수 없었습니다. 골목 곳곳에는 군인이 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무슬림 구역에는 테러로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는 명패가 서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성지입니다. 세계의 절반 가까이가 예루살렘을 성지로 삼는 종교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성지를 수호하는 방식은 결코 성스럽지도 거룩하지도 않았습니다. 천여 년 전부터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
골목에서 총과 방패를 들고 서 있는 군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세 종교의 선지자들 가운데, 총과 방패를 들고 성지를 수호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 사람이 누군가 있었던가.
물론 저는 불신자입니다. 종교인의 종교적인 활동에 무어라 말을 얹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종종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는 예루살렘에서, 누구든 나를 지켜줄 군인이나 경찰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요. 자신의 성지를 이교도가 지배한다는 사실이, 종교인의 정체성에는 큰 상처가 되리라는 사실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화려했던 예루살렘 성전은 벽 하나만 남고 무너졌습니다. 우리 눈 앞에 서 있는, 예루살렘 성지의 수많은 건물들도 시간이 지나면 결코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겨우 이 벽 하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이웃들의 목숨을 희생해야 하는 걸까요.
예루살렘 성전의 화려함에 대해 말하는 제자를 두고,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통곡의 벽 앞에 앉아, 저는 그것이 꼭 예루살렘 성전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벽 하나가, 결국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성지의 건물들이, 우리가 지금 마주보고 있는 이웃을 적대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종교인이 아닌 저는 아직 이해하지 못할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