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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

올해 8월이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수많은 이주노동자의 죽음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8월 3일, 인천 서구 건설 현장에서 이주노동자가 철근에 찔려 사망했습니다. 8월 5일, 인천 송도 건설 현장에서 이주노동자가 추락사고로 사망했습니다. 8월 7일, 합천군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의 이주노동자가 화물차에 깔려 사망했습니다. 8월 10일, 안성의 한 건설 현장에서 붕괴 사고로 베트남 국적의 이주노동자 형제가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들은 보도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사건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올해 여름 얼마나 많은 이주노동자가 다치고, 아프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위의 사건들은 모두 건설 현장이기도 합니다. 고용노동부는 2022년 산업재해현황 중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 현황을 발표했습니다. 2022년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자는 총 874명입니다. 그 중 건설현장 사망자 수는 총 402명으로 이 가운데 이주노동자는 47명(11.7%)에 달합니다. 건설 현장 산재 사망자 구성을 들여다보면 10명 중 1명 이상은 이주노동자인 셈입니다.

우리나라 건설 현장은 이미 이주노동자 없이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건설업뿐일까요? 농어업과 제조업에서도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노동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023년 지금, 이주노동자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멈춰버립니다. 이주노동자는 우리 사회의 필요에 따라 우리나라 산업 현장 곳곳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의 안전은 늘 위태롭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률은 정주 노동자의 사망률에 3배에 달합니다.

법이 있어도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

압도적인 사망률 차이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상대적으로 우리 노동법이 정주 노동자보다 이주노동자를 덜 보호하고 있는 것일까요. 의외로 우리 법은 이주노동자와 정주 노동자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도록 다양한 노동관계법에서 정하고 있고, 이에 대한 국가와 사업주의 책임을 동일하게 정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도, 산업안전보건법도, 산재보상보험법도 그 외 여러 노동관계법은 이론적으로는 정주 노동자-이주노동자에게 차별 없이 적용됩니다.

그런데도 법이 각자의 사업장까지 공평하게 다다르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이주노동자에게 있어서는 '고용허가제'와 이에 따른 '사업장 변경 제한'이 가장 큰 이유가 됩니다. 고용허가제로 인해 사업주는 이주노동자에게 그 어떤 노사관계에서보다 권력적 우위를 갖습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상황은 더욱 나쁩니다. 불안정한 신분상의 이유로 임금체불과 산재 은폐 등 위법한 상황을 참아 넘겨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법학자는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최소한의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지 않은, 안전 조치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불안전한 환경에서 노동자가 일하도록 하는 것은 위법일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도덕과 윤리를 저버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글의 서두에서 짚어본 산재 사건들은 추락, 붕괴 등 소위 재래형 재해였습니다.

사업장 안전에 관한 최소한의 법조차 지키지 않았을 때, 즉 누군가 또는 이 사회가 최소한의 도덕을 저버릴 때마다 어떤 노동자가 다치거나 아프거나 죽게 됩니다. 그토록 우리의 노동법은 언제나 매번 부족한 점이 있어 자주 비판을 받곤 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이 법에라도 기대어서 최소한의 도덕이 지켜지도록 제대로 감시하고 지도하길 바라는 것이 정말 과한 기대일까요.

앞선 통계와 다양한 사회적 자원을 고려했을 때, 이주노동자보다 정주 노동자의 노동환경이 대체로 그나마 나으리라는 추측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정주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안전한 환경이냐고 묻는다면 역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위험한 노동은 약자에게 또 약자에게 넘어갑니다. 그렇게 위험의 외주화라는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를 한 가닥 한 가닥 따라 내려가다 보면 우리는 '위험의 이주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위험해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하다가 다칠 수 있는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기를 강요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노동자라도 산재를 당했다면 법이 정하는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아파도 대충 치료하고 다시 일을 해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위험하면 못 한다고 하면 되잖아요?' - 작업중지권

누군가는 간혹 의구심을 표현합니다.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기에, 위험하면 하지 말라고, 때로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작업을 지속한 노동자들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 법은 이 권리도 정해두고 있습니다. 일하다 위험하면 대피하고 이에 따라 불리한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로,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고, 이렇게 작업을 중지한 근로자에게 불이익 처우는 금지된다'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타고난 권리일 '도망갈 권리'이지만 불이익이 있다면 노동자가 소극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기에 법적인 보호망을 만들어 둔 것입니다.

한 국내 대기업은 2021년 작업중지권을 장려한 결과 반년 만에 2천여 건의 작업중지권이 발동되었는데, 그중 30분 이내에 조치되는 사항이 90%였다고 보고한 바 있습니다. 산재가 발생할 수 있는 급박한 위험의 90%는 30분이면 해소할 수 있었다는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노동자가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고, 사업주가 30분가량 조치해 준다면, 위험하지 않은 사업장에서 일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주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가 '위험해서 못 하겠다'라고 했을 때 그가 어떤 답변을 듣고, 또 어떤 곤란한 상황에 처해질 지에 대해서는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결국 법의 '도망갈 권리'도 대다수의 이주노동자에겐 공허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최소한 이주노동자가 스스로가 도망가야 할 때를 알 수 있을까? 라는 질문 역시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입국 시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안전교육, 사업장의 한국어로 이뤄지는 안전교육, 다루는 기계나 물질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주노동자는 위험성을 충분히 감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관련법을 들여다봐도 '안전표지를 이주노동자의 모국어로 표시하라'는 조치 외에 이주노동자의 산업안전교육이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해둔 것이 없습니다. 결국 위험사업장의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의 위험으로부터 도망치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위험 역시 감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주노동자와 위험의 외주화 : 위험의 이주화

이주노동자는 위험의 이주화를 통해 위험해서 정주 노동자에게 기피되는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위험한 노동, 고용 불안정, 저임금·열악한 근로조건의 노동은 언제나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노동의 약한 고리로 내려오고 또 내려옵니다.

누군가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 당연한 권리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은 이 당연한 권리를 사업주의 호의, 배려 또는 준법의식이 있어야만 누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 모두가 그 누군가가 지은 건물을, 그 농수산물을, 그 공산품을 사용한다면, 과연 우리는 이 약하고 부러질 듯한 연결고리에 대해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요. 이주노동자 그리고 모든 노동자가 당연히 안전하고 건강하게 집에 돌아가는 날을 기다립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변수지 공인노무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9,10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이주노동자#외국인노동자#고용허가제#산재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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