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09 19:58최종 업데이트 23.10.09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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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며 개회를 알리고 있다 ⓒ 연합뉴스


아시안게임 축구 한중전이 열린 지난 1일, 한국의 승리로 끝난 경기 종료 직후 포털 사이트인 다음의 응원 페이지에서 이상한 모습이 발견되었다. 이 페이지에서는 승리를 기원하는 팀에게 응원을 남길 수 있는데, 중국팀을 응원하는 수가 갑자기 급증해 2919만 건을 기록한 것이다.

이는 전체 응원 수에서 약 93%에 달한다. 이 상황에 대해 대통령실과 여당 정치인들은 '여론조작'이라는 화두를 올렸다. 가령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4일 자신의 SNS에 "포털(사이트) 다음이 여론조작의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면서 "여론을 조작해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공작이 자행되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이 기우가 아니라고 보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이 사안에 대한 긴급 현안 보고를 받고 여론 왜곡 조작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범부처 태스크 포스 구성을 지시하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이 무척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처럼 움직이긴 했지만 사실 내 주변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다음에 그런 페이지가 있는지 이번 뉴스를 통해서 처음 알았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때 포털 사이트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이제는 다음을 사용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웹사이트 분석 업체 '인터넷트렌드'를 인용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하향곡선을 그리던 다음의 검색시장 점유율은 5% 아래로 떨어졌다. 물론 이와 별개로 앞서 언급한 상황이 정말 이상한 일인 건 맞다. 국내 사용자를 주된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에서 오히려 다른 나라의 팀을 압도적인 격차로 응원하는 일이 발생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일이 정부와 여당까지 나서서 진지하게 취급해야 할 사건인가? 여기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기이하게 높은 중국팀 응원, 정치인까지 나설 문제인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일단 이 일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확실히 밝혀진 건 없다.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 누군가 응원 수 조작을 인증하는 글을 올렸다고도 하고, 또 다음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원 클릭의 대부분이 중국과 무관한 해외 국가 IP를 통해 이루어졌다고도 한다.

하지만 어떤 정보를 보아도 정황만 추측 가능할 뿐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물론 지금 당장 그렇다 뿐이지 이게 영원히 전말이 묻힐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이 이 상황에 심각하게 반응하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는 몇 가지 가정과 추측에 의존하여 설명할 수밖에 없다.

먼저 다수의 국내 혹은 국외 사용자들이 실제로 중국 팀을 응원한 경우를 가정해 보자. 지난 5일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카카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팀의 경기 내용에 불만이 있는 경우 다른 팀을 응원하는 '역응원' 현상은 이전에도 종종 벌어져 왔다고 한다. 물론 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굳이 해외 IP로 우회해서 이런 일을 집단적으로 벌였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게 사실일 경우 문제가 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딱히 그렇지 않다. 그저 엄청난 숫자의 축구팬들이 매우 분노했다는 뜻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사우디도 역응원당했는데... 묻지도 않고 '댓글 국적제' 몰고가는 국힘,https://omn.kr/25vqc)

만일 다수의 중국인들이 다음으로 몰려와 중국팀을 응원했다면 어떨까. 이것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역시나 별로 문제 될 일은 아니다. 남는 결과라고는 한국 포털 사이트의 국가 대표 팀 응원 페이지에 남겨진 기이할 정도로 높은 중국팀 응원 숫자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이 자국 국민들이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하는 것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그런 규제가 없는 한국에서 중국인의 다음 접속을 막을 이유는 없다. 심지어 그 포털 사이트의 위세는 예전만 하지도 않다. 굳이 정치인이나 언론이 찾아서 해당 현상을 알려주지 않으면 대부분은 모르고 지나갈 만큼.

실제로 조작이었다면?
 

카카오가 4일 공개한 시간대별 클릭 응원 그래프. 경기가 끝난 다음날 새벽 0시 30분쯤부터 중국 응원 수가 급증했다. ⓒ 카카오

 
두 번째는 특정한 개인 혹은 집단이 의도를 가지고 응원 페이지에 접근하여 결과를 조작한 경우다. 평소와 다른 비정상적인 접속 행태가 발견되었다는 카카오 관계자의 말을 감안한다면 이 가정이 사실일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다. 그렇다면 문제는 발생한다. 다음이 애초에 이 페이지를 만든 것은 여러 축구 팬들이 승리를 바라는 팀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한 사람 혹은 집단이 페이지를 독점하고 결과를 자기 입맛대로 조작하기 위함이 아니다. 즉 서비스를 만든 애초의 취지가 훼손되는 결과가 발생한 셈이다. 카카오가 여러 언론을 밝힌 것처럼 업무방해 행위로 경찰에 신고를 해도 무방할 정도의 일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사용자가 포털 사이트의 서비스에 훼방을 놓는 일에는 그만한 수준의 처분과 관심이면 충분하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자기 일을 하고 포털 사이트는 사태의 재발을 막도록 서비스를 잘 보수하면 된다. 물론 이런 일이 유행처럼 번져서 다수의 포털 서비스들이 사업을 운영하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혹은 서비스 사용자들에게 심각한 불편이 초래된다면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단순히 개인이나 집단의 일탈로 볼 수 없고 공공이 머리를 모아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생한 상황이 바로 그런 일인가. 글쎄, 개인적으로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정부와 여당이 할 일이 '여론조작' 몰이인가?
 

이종배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은 지난 1일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한중전 당시 포털사이트 다음에 중국 응원이 쏟아진 것을 두고 매크로를 이용해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보이는 성명불상자에 대한 고발장을 4일 오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제출했다. ⓒ 선대식


결론적으로 말해 어떤 각도로 살펴보아도 이번 일은 정부와 여당이 굳이 나설만한 게 아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심각하게 반응하며 제시하는 추가적인 이유가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번 사태가 '여론조작'의 신호탄이며 특히 총선을 앞두고서는 결코 발생해선 안 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자. 여론을 조작한다는 것, 거짓된 결과로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력만 있다고 될 일도 아니고 계획 또한 치밀하고 비상해야 할 것이며 필요한 사람도 한두 명 수준이 아닐 게다(과거 국가정보원이 비슷한 일을 시도하며 왜 '팀' 씩이나 만들었는지 생각해보라). 그런데 그런 일을 할 수 있고 또 하기로 마음먹은 세력이 시장 점유율도 점점 하락하는 포털 사이트의 응원 페이지에 가서 결과를 조작하며 자신의 전력을 노출시키고 있다? 이들이 목표와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멍청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음모론은 재밌다. 거기에는 사람의 상상력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실제로 벌어졌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보면서 자기만의 생각을 덧붙여 전말을 완성하곤 한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도시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들을 찾아보곤 한다. 하지만 이를 진지하게 믿는 건 곤란하다. 아니 적어도 단순히 개인들이 그런 이야기에 빠져드는 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런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입법자로서 혹은 행정가로서 공공의 책무를 다하는 사람들이 누가 봐도 허황된 주장에 신념을 가지는 건 위험하다. 다른 모든 걸 떠나서 일단 자원 낭비다. 그들이 우려하고 신경 써야 할 일은 이미 지천에 널렸다. 물가는 폭등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소득은 줄거나 제자리걸음 중이다. 이건 실질적으로 시민들의 생활을 위협하는 문제다.

그 와중에 한 포털 사이트의 응원 페이지가 조작으로 추정되는 일을 겪은 것을 놓고 여당 대표가 근거도 없는 주장을 하거나 정부가 태스크 포스까지 구성하는 일이 과연 상식적으로 보이는가. 이번 사태를 둘러싼 정부와 여당의 반응이 황당함을 넘어서 짜증까지 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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