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초등학교, 중학교 때 졸업식을 하면 몇몇 친구들은 꼭 눈물을 흘리곤 했다. 아쉬운 마음에서 나온 눈물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 이런 친구들이 참 부러웠었다. 슬퍼서 당장에 눈물을 흘리고 곧바로 부모님과 짜장면을 먹으러 갈 수 있는, 감정이 풍부하고 솔직하고 순수한 아이들.
고전 문구 수집가로 살아온 5년
나는 막상 졸업식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졸업하고 일주일간은 밤마다 혼자서 눈물을 흘리던 아이였다. 내가 그런 아이였기 때문에 난 지금도 슬플 때 울지 않고 샐쭉한 표정만 짓고 있는 아이들이 밤새 베갯잇을 적시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안다.
어른이 된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이별을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고전 문구를 수집하는 햇수가 늘어날수록 20여 년 이상 운영한 문방구들에 단골이 되어간다. 사장님들과도 안면을 트고 지내게 된다.
햇수로 벌써 5년도 넘는 시간을 고전 문구 수집가로 살아왔다. 그러면서 내가 사는 지역의 정말 많은 문방구를 방문했고, 반드시 무언가를 건질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방문하는 곳들도 어느 정도 리스트에 있다. 나름대로 내 기준에서 순위를 매겨놓은 것이다. 이곳에 갈 때마다, 어느덧 꽤 친해진 사장님들과 대화하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덤이다.
갈 때마다 기분 좋던 문구점이 사라졌다
이틀 전에는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서, 집에서도 꽤 거리가 있는 문구점에 방문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버스를 2번 갈아타고 15분 정도 걸어야 도착하는 오래된 아파트 상가 내 문구점이었다. 차로만 가도 50여 분을 가야 하므로 한 번 갈 때마다 아주 커다란 가방을 들고 마음을 먹고 가는 곳이다.
그곳은 내가 한창 동네별 문구점들 지도를 만들 때 방문했던 곳으로, 먼지가 많고 정리는 잘되지 않은 편이었지만 1990년대 디즈니 백설 공주 액자와 다마고치 게임기, 여러 PC게임 CD들, 외국가수 뉴키즈 온 더 블록과 김남주, 이정재 등 연예인 엽서와 책받침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여긴 진짜 노다지다!'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자주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몇 차례 방문해 사장님과 대화도 나누고 문구를 구경하곤 했던 곳이었다. 수줍음 많고 친절하신 사장님이 유독 기억에 남는 곳이었는데...
한참을 졸면서 버스를 2번 갈아타고 도착한 문구점에는 왜인지 셔터가 내려가 있지 않았다. 불이 켜져 있거나 아니면 평소에 문을 안 열었을 때와는 달랐다.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투명한 유리문 안쪽으로 텅 빈 건물만 있었다.
20년 된 문구들 위에 한참을 쌓여 있던 더께는 어디 가고 말끔해보이기까지 하는 공간이었다.
공간에 깃든 추억
고전 문구를 수집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이런 상황에 한 번씩 맞닥뜨린다. 문방구 공간이 아예 사라지는 것이다. 사실 요즈음은 학교에서 제공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이전 세대보다 많은 준비물들이 필요하지 않다. 학교에 가는 어린이들의 수도 줄었다. 더구나 대형 문구점의 등장으로 학교 앞, 아파트 상가 안 오래된 문구점은 입지가 많이 좁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나도 최근 1~2년에 한 번씩은 이런 일을 겪고 있다.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찾아가던 나의 아지트가 프랜차이즈 카페로 바뀌거나 크게 '임대'라는 현수막이 붙는 일도 이젠 익숙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소리 소문도 없이 조용히 사라지다니. 아쉬웠다.
원래 문방구였던 텅 빈 공간을 보니, 적어도 30여년은 그곳에 쌓여 있었을 추억들이 모두 함께 날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괜히 조금 우울해졌다.
내가 좋아했고 좋아하는 공간이 언젠가는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내가 아무리 애정을 가지고 많이 드나든 곳이라고 해도, 나는 그냥 일개 손님일 뿐이니 이 추억이 사라지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다는 게 나를 허무하게 만든다.
사실 기사를 쓰는 지금도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 든다. 사람이 장소와의 이별에 슬퍼하는 게 누군가에겐 웃기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내 의지로 다시 만들어 낼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가고 슬픔이 남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별에 익숙해지는 일일지 모른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나도 장소, 그리고 사람과의 이별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여전히 어렵고, 앞으로도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에게 그 문방구에서 샀던 문구들이 남아있으니, 문방구의 추억을 조금이나마 떼어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며 나를 추스려야겠다. 이별에 익숙해지는 방법에 대해 알고 계신 분들께 조언을 듣고 싶다.
끝으로 아마 나를 기억 못 하시겠지만, 나에게 기쁨과 설렘을 주었던 문방구와 문방구 사장님께 마음 깊이 감사를 보낸다. 더 빨리 찾아뵙고 직접 인사드릴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는 아주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