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 탐방(고전문구를 찾아 오래된 문구점을 찾아다니는 일)을 다니다 보면 문방구 구석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하는 것이 바로 '책받침'이다. 80~90년대 연예인 사진이 있는 코팅된 종이 책받침부터, 만화캐릭터가 그려진 플라스틱 책받침 등 종류도 그림도 다양하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고전문구'에 대해 소개할 때 가장 먼저 꺼내는 것도 바로 이 책받침이다. 안재욱, 이정재 등 유명 배우의 젊은 시절 책받침들은 들고 다니기에도 편하고, 지금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자랑하기에도 좋다. 그렇게 여느 날처럼 자랑을 이어가고 있던 한때, 나는 머리를 탕 치고 가는 질문을 하나 받았다.
"그런데 책을 왜 받쳐?"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말이 자칭 '고전문구 마니아'인 나의 마음을 건드렸다. 하긴 지금도 생각해보면 '책받침', '책받침스타'라는 것은 내 머릿속에 존재했지 책받침이 정확히 어떤 형태로 사용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차차 나보다 조금 윗세대들을 만나보며 책받침의 용도를 아는지 확인해 봤다. 그 결과, 먼저 90년대 초, 80년대 후반의 주변인 4명을 인터뷰 해 본 결과, '책 밑을 받쳐서 옮기는 용도?'라는 구체적이지 않은 추측성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80년대 중반 생에게도 '책 밑에 까는 것 아닌가?' 하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대 70년대 초, 60년대 후반 생들에게서 그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책받침을 주로 책이 아니라, 공책용으로 이용되었던 학용품이었다. 그러니 책받침보다는 공책받침에 더 가까웠다.
연필의 진하기가 현저히 옅고 종이의 부드러움이 부족했던 즉, 필기구의 질이 지금보다 좋지 않았던 시절에는 글씨를 예쁘게 쓰기 위해 책받침이 필요했다. 글씨를 쓸 공책 한 장 뒤에 책받침을 받쳐 연필로 진하게 눌러 써도 종이가 찢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그 존재는 알지만 용도는 알지 못하였던 '책받침'에 대한 시원한 해설에 나는 비로소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그간 수집했던 고전문구를 포함한 고전물품들 중 용도를 모르거나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였다.
책받침의 다음주자는 '소매밴드'였다. 소매밴드의 경우, 아쉽게도 내가 인터뷰한 전 연령에서 확답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조사 내용과 나의 생각을 합쳐 그 용도를 추측해보고자 한다.
'소매밴드'는 그 이름에서 예측할 수 있듯이, 옷 소매에 사용하는 도구로, 소매가 내려오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밴드이다. 그 모양은 조그만 멜빵과 흡사하고, 어린이용으로도 종종 출시되었다. 그 사실로 미루어볼 때, 성인에 비해 조심성이 부족한 어린이들이 소매를 걷는 불편함을 예방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정확한 용도를 아시는 분이 있다면 댓글을 달아주셔도 좋겠다.
마지막으로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비둘기색 스타킹'이다. 비둘기색 스타킹의 존재 이유를 알기 위해 60~70년대생 여성 분들께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그 반응은 정말 뜻밖이었다.
주된 반응이 '비둘기색 스타킹이 뭐가 신기하냐'는 것이었다. 특히 60년대 생인 나의 어머니에게 비둘기생 스타킹은 전혀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80~90년대에 여성들은 실제로 비둘기색 스타킹을 종종 신었고,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긴, 고정관념을 걷어내고 생각해보면 다리가 검은색인 것보다 비둘기색인 것이 덜 이상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비둘기색 다리는 자연스레 자취를 감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내가 추가적으로 궁금했던 것은 그 '비둘기색'이라는 이름을 누가 붙였을지였는데, 내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단순 소비자였기 때문에 그 내용을 실체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혹시나 답을 아는 분이 있다면 댓글로 답변 부탁드린다.
정말이지 요즘 흔히 '닭둘기'라고 불리는 비둘기 말고, 그렇다고 아주 하얀 비둘기도 아닌 그 희뿌연 회색 비둘기에 딱 밪는 색의 스타킹인데 그걸 누가 어찌 포착했는지, 나도 궁금하다.
우리 집의 비둘기색 스타킹은 내구성이 약해 실착용하지는 못하고, 신발 모양 고정용이나 먼지청소용으로 쓰이고 있다. 그렇지만 찬 바람이 솔솔 불어와 스타킹이 필요해지는 요즘, 다시 한 번 시도해보고 싶음 마음이 들 만큼 매력적인 색이다.
오늘은 이렇게 책받침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의문으로 고전 물품들의 용도와 그 시대별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물건이 있던 시대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전혀 상상도 못한 모습도 있었고, 생각보다 더 유행했던 것들도 있었다. 고전 물품들을 모을 때마다 느끼지만, 그 물건들이 그 시대에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는지 알아가는 것이 고전 물품을 더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 시대에 사람들과 함꼐 살아가던 이 물품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도 행복한 과거를 수집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