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영남지역 각 수도회 소속 수녀 30여 명이 금호강 팔현습지를 찾았다. 영남지역에서 생태적 삶을 사는 가톨릭 수도자들이 지난 10월부터 적지 않은 수로 팔현습지를 찾고 있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재방문하기도 하고, 다른 탐방단과 함께 다시 팔현습지를 찾기도 한다.
말하자면 팔현습지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것이다. 팔현습지를 다녀가는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밝히는 매력은 '대구라는 거대 도심 한가운데 이런 아름다운 습지가 존재한다는 게 신기하고 그래서 더 귀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특히나 이곳에는 최근까지 14종이나 되는 법정보호종 야생동물들이 목격됐다. 그래서 팔현습지를 찾은 이들은 귀한 야생의 친구들이 자리잡은 이곳을 꼭 지켜주겠다고 다짐한다.
필자가 안내한 이날 탐방은 우선 초입에서 만난 겨울철새들인 쇠오리의 관찰로 시작됐다. 멀리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너무 아름다운 존재들이란 것을 필드스코프(망원경)를 통해서 확인해봤다. 머리에 갈색 무늬가 있고 옆구리에 녹색 완장을 찬 듯한 녹색 깃을 가지고 있는 쇠오리를 필드스코프를 통해 보면 너무나 아름답다.
수녀들은 그 모습에 먼저 감탄한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이 사실 그러할 것이다. 야생의 존재들은 특히 우리가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그렇지 가까이서 그들을 직접 대면하면 그 아름다움에 우선 놀라고 감탄하게 된다.
이제 쇠오리들과 이별하고 강촌햇살교를 통해서 팔현습지에 든다. 그러곤 팔현습지 왼쪽편 제방길도 둘러보고 파크골프장이 조성돼 있는 곳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팔현습지 하천숲에 들어서는 강가로 접근해 강 속에서 민물조개도 만난다.
이어 그곳에서 팔현의 식구들의 대부분이 출연하는 연극 대본인인 '팔현 반상회' 낭독 시간을 가졌다. 곧 다가올 인간 주도 개발에 대해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를 직접 팔현의 식구가 돼 느껴보자는 의도다.
이들은 다시 팔현습지의 깃대종이자 터줏대감인 수리부엉이가 살고 있는 하식애를 병풍처럼 마주한 뒤 더 깊은 팔현습지 탐사를 통해 400년 원시 자연숲인 왕버들 숲까지 만나게 된다. 그 왕버들 숲에 깃들어서는 고요히 습지를 완상하면서 묵상에 들기도 했다.
팔현습지에 깊숙이 빠져본 것이다. 그래서 팔현습지가 바로 나고, 팔현의 식구들과 내가 다르지 않음은 각인해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이날 수도자들은 왕버들숲에서 함께한 마지막 소감 나누기에서 많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느끼는 이 습지의 가치에 대해서 함께 공유해본다.
팔현습지와 연대하다
박마리아 수녀: 저는 대구 안에 이렇게 오래된 그리고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아까 강 안에 들어갔을 때도 뭐랄까 오랜만에 이렇게 흙을 밟아보는 그런 느낌처럼 다가와서 너무 좋았고 그리고 고요하게 이렇게 바람소리 속에서 저런 나뭇잎 소리 듣는 것도 참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공간이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니까 좀 마음이 너무 안 좋고요. 그래서 저도 기회가 되면 조금 더 자주 이런 곳과 접하면서 연대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좋은 시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엘리사벳 수녀: 없는 길을 굳이 내면서까지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없애야 하는 이유가 뭘까? 그게 마음이 너무 아프고 먹먹하고 아까 제방을 걸을 때 이미 제 눈에서는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는데 누구를 위한 공사인지, 국민의 세금을 쓸 텐데 그 세금은 어디에서 오는지, 그 세금을 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지 왜 국회의원들,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런 마음을 갇지 못하는지 이런 것들이 조금 순간적으로 확 밀려와가지고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기 흙길을 걸으면서 몸이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고 이런 자연의 회복 안에서 우리가 머무르는 시간과 기회를 조금 더 늘려야겠다는 생각, 이곳을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같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실리아 수녀 : 걸으면서 습지의 향이 너무 좋았어요. 이건 어디서도 맡아볼 수 없는 이 향이 너무 깊게 가슴에 이렇게 남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것을 정말 잘 보존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도하고 또 같이 연대하겠습니다.
김크리스티나 수녀 : 대구에서 태어났는데 정말 이 도심 한복판에 이런 자연 그대로의 습지가 있다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어요. 걸어오는 길에 골프장, 호텔 맞은편 아파트들, 그리고 인공적으로 만든 정원들과 공원들 보면서 인간의 편리함 때문에 멸종위기에 놓인 동식물들이 이 작은 서식지마저도 이제 뺏길 위험에 있다니 안타깝고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정말 인간의 이기적인 우리만 생각하는 그런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오늘 걸어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정다니엘 수녀: 대구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고요. 4백년이라는 역사 안에서 정말 아름답게 어우러진 이 왕버들 군락을 보세요. 권력과 돈은 이 나무를 참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에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서 지키지 않으면 결국 또 잃을 수 있겠다는 아픈 현실이 눈앞에 다가 왔고, 직접 와보니 그것을 더욱 실감했습니다. 기도도 많이 하고 관심과 응원을 많이 보태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데레사 수녀: 오면서 제가 느낀 건 그냥 감탄사였어요. 너무 아름답다. 너무 감사하다. 여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이곳을 지키려고 활동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올 수 있다는 점에 감사했습니다. 근데 여기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까 숨쉴 곳이 점점 사라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오니까 하나가 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함께 움직이면서 함께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고 또 함께 기뻐하고... 그래서 지금 이 아름다운 상황 안에서 우리가 하나 되어 있잖아요. 이게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함께하며 기도하겠다"
지안토니아 수녀: 아까 저기 다리 입구에서 공사 조감도를 본 순간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고 뭐 해도 안 될 것 같다라는 마음이 좀 들었지만, 이 숲길을 선생님과 함께하면서 선생님 얘기를 들으면서 희망은 있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공사를 하면서 몇백년 된 이 나무들을 베면 너무 미안하고 슬플 것 같고 또 여기에 있는 자연도 화가 날 것 같습니다. 돌아가서도 이곳을 기억하고 또 좋은 소식을 위해서 기도를 함께 보태겠습니다.
이가타리나 수녀: 지금 수녀님들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 이거를 공사를 반대하고 손을 들어야 될 분들은 저 앞에 사시는 분들, 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 산책하는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 저기 여기까지 왔다가 우리 보고 돌아가신 저분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서요.
정말 이 숲이 없어졌을 때 저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그 광경은 바뀔 거라는 생각이 들 거거든요. 그래서 정말 아까 우리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그 앞에 팻말을 보고 이건 공사하면 안돼라고 저 주민들이 다 손을 들고 나서면 과연 이 공사가 될까라는 그 생각이 지금 많이 들었습니다.
마르첼리나 수녀 : 저는 오늘 이렇게 딱 왔을 때부터 강이 땅의 젖줄이라는 말이 많이 와닿았어요. 젖줄처럼 이렇게 생명력을 주는 힘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저도 이제 정말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진짜 소리를 내야겠다라는 다짐들을 하게 됐고 그리고 이렇게 한마음으로 모여 있는 수녀님들이 계시다는 것에 힘을 받고 가는 날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의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