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자그마한 골짜기에 맑은 햇살이 찾아왔다. 흰 눈에 내린 햇살로 눈이 부신 아침,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맑은 햇살이다. 언제나 넋을 놓고 바라보는 맑고 투명한 햇살은 이 골짜기를 떠날 수 없는 이유이다. 보다 보니 오래전 네팔 사랑콧 전망대에서 만난 햇살이 떠 오른다. 연말에 출발해 새해 아침에 맞이하는 해돋이였다.
새벽 찬바람을 뚫고 올라선 포카라 히말라야의 언덕배기 사랑콧 전망대, 무엇에 홀렸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올라선 전망대에서 황홀한 햇살을 만났다. 세상에 태어나 숨 쉰 으뜸 공기 맛에 숨이 멎었고, 맑은 햇살은 거대한 히말라야 봉우리를 선사했다. 웅장한 스크린에 맑은 햇살이 비추면서 거대한 봉우리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투명한 빛에 넋을 잃어 발은 묶이고 말았다.
이 연말, 누구는 동해안으로 떠나고 어떤 이는 해외로 떠나간다. 어떻게 할까? 어수선함을 싫어하는 늙어가는 청춘은 슬그머니 햇살을 찾아 떠났다. 연말이 아니면 어떻고, 연초가 아니면 어떠하랴? 부산에 자리 잡은 딸아이 집을 찾았다. 언제나 다정하게 불러주는 딸이 있고 손녀가 살고 있는 집이다. 곰살맞은 사위의 안내를 받으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미리 해돋이 장소를 찾았다. 딸네 식구들과 찾은 간절곶, 먼바다에서 바라보면 대나무로 된 긴 장대를 일컫는 간짓대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제일 먼저 해가 뜬다 하는 간절곶, 햇살은 나올까 말까 망설였다. 작은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에 눈이 멀어 한참을 기다려도 맑은 햇살은 오지 않았다. 작은 햇살마저 숨어버린 널따란 공원, 한낮의 맑은 햇살대신 밤의 빛을 보기로 했다. 호젓한 카페에서 바라보는 해맞이 공원은 다양하게 변해 있었다. 야간 빛 조형물 및 조각작품 등을 전시한 '간절곶 상상공간'엔 다양한 정크아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넓은 공간에 펼쳐지는 현란한 조명과 어우러지는 조각작품들은 일출 행사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이었다.
넓은 광장 갖가지 볼거리가 연말이 오고 있음을 알려 주었고, 밤바다의 싸늘해도 불빛에 빛나는 조형물과 다양한 작품들은 거대한 축제의 장이었다. 어김없이 들어선 카페들이 손님을 주저앉게 했고, 밤바다의 웅얼댐은 여기가 바닷가임을 실감하게 한다. 찬란한 밤의 불빛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발걸음, 연말과 연초엔 감히 찾을 생각조차 못하는 세월이 아쉬웠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불빛을 뒤로하고 찾아간 딸네집, 행복한 부산의 명품 생선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방어의 단단한 근육에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긴 하루의 피로를 풀 겸 달콤한 겨울밤을 보냈다. 사위의 안내로 광안리와 동백섬 등을 한가로이 둘러보고, 다음 날 새벽 딸네집을 떠나는 아침은 여느 때와 같았다. 하루라도 더 잡아 두려는 손녀와 딸을 뒤로하고 슬며시 나오는 것이 좋다. 언제나 반갑지만 저희들도 삶이 있고 생활이 있기에 이 정도면 족하다는 생각에서다. 오래전 내 어머니의 삶의 모습, 혹시나 자식이 힘들까 하여 서둘러 나서는 뒷모습은 늘 가슴이 저려왔다.
세월 따라 고단한 삶은 머리칼도 드문드문, 걸음걸이도 느려졌다. 아이들이 애틋해하면 어떻게 할까 얼른 문을 닫고 나서는 아비의 뒷모습을 들키고 말았다. 어서 들어가라 하는 아비에게 아프지 말라는 딸의 말에 가슴이 아려온다. 서둘러 맑은 햇살을 찾아 나서는 발걸음은 간절곶을 둘러봤으니 호미곶으로 향하는 길이다. 언제나 운전에는 자신 있어 하지만 가능하면 느릿하게, 신호등에 신경을 써야 한다.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해도 끼어드는 차량들, 늙음을 알았는지 곳곳을 살펴주는 아내의 안내에 따라 구룡포로 들어섰다.
구룡포 지나 해맞이 광장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들어선 구룡포는 정스러운 재래시장이 즐비하던 작은 작은 포구였다. 가끔 만나 자전거를 타고, 더러는 막걸리잔을 나누는 친구의 딸네미가 써 내려갔다는 '동백꽃 필 무렵'의 고장 구룡포다. 덩달아 으쓱해지는 어깨를 아내에게 자랑하며 찾아선 구룡포는 어느새 많이 달라졌다.
드넓은 공영주차장엔 주차할 공간이 없었고, 시장은 활기가 넘쳐났다. 지역특산품인 과메기가 넘쳐났고 길손의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얼른 소주 한잔 거리 과메기로 서운함을 달래고 찾아간 호미곶,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널따란 해맞이 광장엔 찬디찬 겨울바람으로 가득하다. 시원하고도 상쾌한 겨울바람은 맑은 햇살과 함께 왔다. 가득 내린 맑은 햇살에 눈을 둘 곳이 없다. 이른 아침이라 한가하지만 젊은이들은 추위에도 상관없는 양 활기차다.
젊음이 흘러넘치는 발걸음들 앞에 소심한 내 발걸음이 주춤거린다. 겨울 추위를 이기려 두툼하게 무장했지만 겨울바람은 늙음을 봐주지 않았다. 해마다 '호미곶 한민족 해맞이 축전'이 열린다는 해맞이 광장에서 만난 것은 거대한 상생의 손이다.
인류가 화합하고 화해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의미로 만들어진 조각상, 바다에는 오른손이 빛을 떠 올리고 육지에는 왼손이 받아낸다. 광장을 지나 만나게 되는 바다에도 영롱한 햇살이 내려왔다.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윤슬, 골짜기에서 만난 한없이 맑은 햇살이다. 맑고도 투명한 햇살이 바다에 떨어졌고 다시 반사된 그 빛은 하늘로 튀어 오른다. 눈 뜰 수 없는 지경의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 어떤 문명의 이기도 담아낼 수 없는 맑은 햇살을 즐기러 근처 카페를 찾았다. 누구도 다가갈 수 없는 아름다움에 정신줄을 놓는다.
해맞이 장소에 가득한 사람들의 소망
며칠 후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올 해맞이 장소엔 저마다의 소망으로 가득할 것이다. 올해도 12월 31일과 1월 1일에 해맞이 축전이 열린단다. 오래전 장독대에 숨어하던 내 어머니의 기도, 무뚝뚝한 내 아버지가 정월 보름달을 보며 했던 기도 속 소망은 인도의 갠지스강에서 만난 처절한 기도와 티베트의 오체투지 속에 넘쳐나던 처절한 기도와 무엇이 다를까?
네팔의 사랑콧 전망대에서 맑은 햇살을 보며 기도했던 소망은, 내 어머니의 기도와 아버지의 근엄한 절규 속에 다 숨어 있었다. 다름이 아닌 가족의 안녕과 자식의 행복을 기원하던 그 기도였으리라. 가끔 찾아가는 절집은 좋은 날도 괜찮고 외로워 쓸쓸한 날도 좋다. 할머니를 따라 부처님을 보며 하던 어린 손녀의 기도 속엔 소박한 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 담겨 있었다.
골짜기 앞뜰에서 만난 맑은 햇살은 젊은 날 히말라야의 언덕에서 만났던 맑은 햇살과 다르지 않았다. 간절곶의 밤에 만난 불빛과 호미곶에 내려온 맑은 햇살은 한해의 긴 어둠을 거두어 주는 빛이었다.
맑은 햇살을 보며 하는 소박한 삶의 기도는 늙어가는 육신의 건강과 내 가족의 아름다운 행복을 위한 기도였다. 이것이 아닌 어떤 기도가 또 있을 수 있을까? 맑은 햇살을 찾아 만난 아름다운 빛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소박한 새해를 밝혀 주려는 신성한 빛이었다. 새해가 있어 또 행복한 하루, 새해가 찾아오면 뒷산에라도 올라 해맞이를 하며 또 소박한 기도를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