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옥천허브(Hub)는 제법 쉽게 떠오르는 단어다. 그 어떤 손님보다 반가운 택배가 거쳤다 오는 곳이기 때문. 덕분에 하루에도 몇 번이고 수많은 화물차가 옥천을 향하고, 또 옥천을 떠난다. 누군가 손꼽아 기다리는 택배 상자를 가득 실은 채 말이다.
이렇게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도로를 달리는 이들도 쉴 곳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작은 택배부터 톤 단위의 컨테이너까지, 갖가지 물건을 싣고 전국을 누비는 이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 옥천 만남의광장 휴게소(이하 옥천만남 휴게소)를 찬찬히 둘러보자.
도로를 일터로 둔다는 것
"서울에서 부산, 부산에서 또 인천을 왔다 갔다 하면서 컨테이너 짐 운반해 주는 일을 한다"는 노용주씨는 '츄레라' 운전자다. 츄레라는 트레일러를 부르는 말로, 일본어 발음에서 변형된 단어다.
"이 일이 정시에 시작하고 정시에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일 많을 때는 집에 못 들어가고 도로에서 살다시피 지내기도 해요. 서울·부산·인천을 오가는데, 중간에 기름도 넣어야 하고 휴식도 필요하잖아요. 옥천이 딱 그 중간이에요. 일하는 중간중간, 업무 전후에 쉬기 좋죠."
운송업에 몸담은 지 20년이 훌쩍 넘은 그는 주로 수입품과 수출품을 운반한다. 그는 "국가 경기에 따라서 업무량이 변동이 크다"며 "코로나19 이후 물량 상당 부분이 줄었고, 11월부터 2월까지는 경기가 위축되는 시기라 요즘은 평일에도 집에 들어가곤 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주로 향하는 목적지인 부산은 옥천에서 3시간 30여 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다. 그것 또한 쉬지 않고 달렸을 때인 것을 고려하면 그가 도로 위에 있는 시간은 훨씬 많을 터다. 그 긴 무료함을 달래는 건 동료와의 대화다.
"예전에는 라디오 많이 들었죠. 다른 동료들과 소통할 때는 무전기를 주로 썼고요. 근데 우리네가 시간 때우는 방법도 시대를 반영하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유튜브도 많이 보고, 전화 통화도 자주 해요. 전화 통화량을 요금으로 환산하면 100만 원은 나올 거예요(웃음). 이런 것도 없으면 이 일 오래 못 했죠."
그는 "일반 휴게소에서는 대형 차량 운전자를 선호하지 않는다"면서 "옥천만남 휴게소와 같은 화물차 휴게소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일반 휴게소에는 운전자 휴게실이 구비돼 있지 않기에 화물차 휴게소가 생기기 전에는 "꾀죄죄하게 다니고, 옷도 여러 벌 들고 다니면서 빨아 입곤 했다"는 것이다.
"여기 아니면 우리가 밥도 먹고 쉴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어요. 코로나19 전에는 여기서 직원들이랑 밥도 자주 시켜 먹고 그랬죠. 한식, 중식... 안 가리고 같이 먹었지. 게다가 사람들도 좋으니 자꾸 여기로 오게 되는 거예요."
안전한 도로를 만드는 휴게소
2005년 화물연대파업으로 화물차 운전자의 휴식 공간에 대한 목소리가 모였다. 이에 옥천군과 한국도로공사가 협약을 맺고 SK에너지(내트럭하우스)가 투자해 2012년 옥천만남 휴게소가 문을 열었다. 이러한 화물차 휴게소는 전국에 24개소가 있는데, 그중 옥천만남 휴게소는 옥천IC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해 그 편의성이 뛰어나다.
옥천만남 휴게소에는 화물차 휴게소가 갖춰야 할 기본 시설인 정비소, 주유소, 주차장, 휴게실, 편의점이 입점해 있다. 2018년에는 전국 최초로 휴게소 내 화물차 정밀검사소를 신설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화물차의 경우 2년에서 4년이 지나면 정기 검사를 받게 되는데, 대전·신탄진까지 가야 받을 수 있던 검사의 번거로움을 덜었다는 평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화물차는 야간에 운행하는 일이 잦아요. 그렇기에 작은 결함도 큰 사고로 이어지기 쉽죠. 시골길을 달릴 때는 더하고요. 예를 들어 백라이트 하나가 고장난 채 어두운 길을 운전하면 오토바이로 오인돼 사고 나는 경우가 있거든요. 고속도로 인접한 곳에 검사소와 정비소가 있으니 결함을 빠르게 해결하기 좋고, 이게 곧 운전자의 안전으로 이어지죠." (이선희 소장)
옥천만남 휴게소를 운영하는 내트럭하우스 옥천사업소 이선희 소장은 "옥천만남 휴게소가 개소하고 나서 인근 경부고속도로의 2차 사고가 없어졌다"고도 강조했다. 고속도로와 인접한 곳에 있어 사고지점으로 긴급 출동해 빠른 조처를 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옥천만남 휴게소 주 이용자인 화물차 운전자뿐 아니라 도로 위 모든 운전자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곳 검사소 및 정비소는 대형 차량 맞춤 시설이지만, 일반 승용차도 이용이 가능하다. 휴게소 내 주유소 이용 차량 또는 장애인 자동차는 검사비의 50%(1만 원) 할인이 적용된다. 휴게소에서 세차나 정비 서비스를 받은 차량에게 주유비 일부를 할인해 주는 혜택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2015년 확장한 2차 부지까지 포함해 대략 200면의 주차 공간을 갖고 있다. 이곳은 2시간 무료 주차를 제공해 지역 내 주차 공간 확보에도 기여하고 있다.
가족 같은 쉼터가 되고 싶다
"화물차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옥천만남 휴게소엔 재밌는 서비스가 있다. 바로 모닝콜 서비스다. 화물차 운전자들은 차 안에서 잠을 해결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때 시간에 맞춰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사무실에 서비스를 요청하면 1차로는 전화, 2차로는 직접 차량을 방문해 모닝콜을 해준단다.
"모닝콜 서비스는 잠귀 어두운 분들이 주로 이용하세요. 보통은 전화만 해도 잘 일어나셔서 차까지 찾아가는 경우는 드물어요(웃음). 기사님들이 평일 내내 도로에서 일하고, 주말에야 집에 들어가시는 일이 잦거든요. 그래서 모닝콜 서비스 외에도 택배 보관, 상비약 구비 등 생활 전반을 지원하기 위한 서비스도 준비돼 있습니다." (이선희 소장)
휴게소 이용자들이 모닝콜 서비스보다 더 자주 찾는 서비스는 전자세금계산서 발급 서비스다. 화물차 운전자들의 연령대가 높은 것을 고려해 종이계산서에 더 익숙한 이들의 서류작업을 지원해 주는 것.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옥천만남 휴게소의 노력을 알기에 이용자들도 꾸준히 옥천만남 휴게소와 관계를 이어간다.
이외에도 꾸준한 방문을 만드는 요인을 꼽자면, 옥천만남 휴게소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휴게소 직원 대부분이 붙박이에요. 저는 주유소에서 일한 지 10년 됐는데, 다른 언니들은 개소 때부터 일을 했으니 12년째죠. 제가 언니들한테 붙박이라고 부르니, 언니들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더라고요(웃음)." (주유소 직원 이영애씨)
긴 근속연수를 자랑하는 직원들은 화물차 운전자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휴게소 개소와 함께 주유소 일을 시작한 신용숙씨는 "하루에 한 번씩은 얼굴 보는 사이"라며 "주유소 들어와서 쉬다 가시는 분들이랑은 말을 자꾸 하게 되니까 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몇 년 전에는 복부 통증을 호소하는 운전자와 직원들이 가까운 병원으로 동행했는데, 급성 맹장이라 당일 수술을 하는 일도 있었다. 통증을 무시하고 도로에 올랐으면 큰 사고로 이어졌을 상황이었지만, 가깝게 지내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였기에 빠른 대응이 가능했다.
"저녁 늦게 오면 또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노용주씨의 말처럼 도로 위 사정이란 명확하게 떨어지는 것이 없다. 그렇지만 먼 길을 떠났다가도 "잘 다녀왔느냐"는 인사를 물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옥천만남 휴게소 직원과 이용자 모두에게 '다행'이 되곤 한다.
"주유소에서 처음 일할 때는 이렇게 오래 일하게 될지 몰랐죠. 하루하루 사람들과 부대끼며 보내다 보니 벌써 12년이네. 솔직하게 말해 이 직장이고 저 직장이고 크게 다를 것 없어요. 좋은 사람들이랑 편하게 지내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거죠." (신용숙씨)
전국으로 향하는 수많은 화물차가 옥천만남 휴게소를 들른다. 잠시 기름을 넣고 가는 이도 있고,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는 이도 있다. 일과를 시작하려 기지개를 켜는 이도, 긴 여정을 마치고 시동 꺼진 차 안에서 숨을 고르는 이도 있다. 옥천만남 휴게소는 가능한 한 그 자리를 지키며 전국을 누비는 이들의 쉼터가 되어 줄 테다.
월간옥이네 통권 80호(2024년 2월호)
글 이혜빈 사진 이혜빈·임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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