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양쪽 끝에서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세계 최대 군사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1월 하순부터 32개 전체 회원국에 참여한 가운데 '확고한 방어자(Steadfast Defender)' 훈련을 벌이고 있다. 훈련에 참가하는 병력수는 약 9만 명으로 냉전 종식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한다.
한미동맹도 '자유의 방패'라는 이름하에 한국 안팎에서 대규모 훈련을 실시 중이다. 한미 군당국은 훈련 규모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지만, 나토 훈련의 약 5배에 달한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한미연합사는 "예년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훈련 규모가 공개된 2016년 3월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한 병력수가 미군 4만 명과 한국군 30만 명 등 총 34만 명이었기 때문이다. 또 야외기동훈련과 유엔사령부 회원국 가운데 참여국도 작년에 비해 2배 정도 늘어났다.
'톤다운'에 들어간 한미동맹과 북한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북한이 예상외로 차분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직 예단하긴 이르지만, 북한은 3월 4일에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된 후 열흘 동안 6일과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찰한 포사격 훈련 외에는 이렇다 할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북한이 한미동맹의 군사훈련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군사적 맞대응을 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끌어올렸던 얼마 전까지의 행태와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한미동맹이 대규모의 연합훈련을 실시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로우키'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동맹은 연합훈련과 미국 전략 자산 전개의 '가시성'을 높이겠다면서, 이들 군사 활동을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아마도 유럽과 중동에서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이 한반도 위기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게다.
이처럼 최근 수년 동안 '치킨 게임'을 방불케 하는 무력시위 공방전을 벌였던 한미동맹과 북한이 '톤다운'에 들어가면서 연밀연시에 고조되었던 한반도 위기설은 일단 잠잠해졌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 악재가 불거질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한반도 상공을 유령처럼 떠돌던 '전쟁위기설'이 누그러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등장한 '종북·반미' 낙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연합훈련을 검색하면 최근 보도량이 크게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한미연합훈련이 색깔론의 도구로 호출되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과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연합의 시민사회 비례후보로 내정된 전지예·정영이가 과거에 한미연합훈련과 사드 배치를 반대했다며 '색깔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은 시민사회 측에 "재논의"를 요청했고, 두 후보는 결국 사퇴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적인 가치는 집회·표현·결사의 자유에 있다. 그런데 수구보수 세력은 한미연합훈련과 사드 배치 반대를 '종북·반미'로 낙인찍고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을 펼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훼손했다. 이러한 색깔론에 당당히 맞서기보다는 굴복한 민주당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
기실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사드 철수, 심지어 주한미군 철수까지 공공연히 말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린 사람이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미국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이러한 주장을 가감 없이 펼쳤었다. 돈이 큰 이유였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트럼프의 생각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북한과 협상을 하자면서 "전쟁 연습(war game, 트럼프가 실제로 쓴 용어다)"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10억 달러를 들여 만든 사드를 왜 미국 땅이 아니라 한국 땅에 배치한 거냐? 위대한 산업국가인 한국이 먹고살기도 힘든 북한을 스스로 막지 못한다며 대규모의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트럼프의 이러한 생각과 표현은 '미국 우선주의'로 불렸다. 그런데 비슷한 표현을 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반미·종북' 딱지가 붙는다.
아마도 트럼프는 재집권에 성공하면 1기 때 못지않게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려고 할 것이다. "어른들"로 불렸던 트럼프 행정부 내 저항세력이 2기 때에는 거의 없어질 것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가 져도 트럼프주의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미국 정치 전문가들의 얘기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하여 묻게 된다.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가? '민의와 다양성의 전당'이라는 국회에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주장하는 사람은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검열'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기에 던져본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