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역사가 열린 뒤, 즉 단군 왕검부터 2024년 대한민국에 이르는 동안 우리가 성웅이라 부르는 이는 오로지 단 한 명뿐이다. 요즘에야 찾아보기 어렵지만 오랫동안 전 국민이 가장 자주 만지는 화폐, 100원 짜리 동전 앞면에 새겨진 사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그저 영웅이라는 말로 부족하여 성인이라는 표현까지 덧댄 인물이 이 땅에 살다 떠났다. 그가 구해낸 이가 얼마나 많았는지, 그가 지켜낸 마음이 얼마나 귀했는지, 그가 바꿔낸 역사가 얼마나 값졌는지를 이 시대 모두가 알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479년 전 오늘, 즉 양력 1545년 4월 28일 이순신이 첫 울음을 울었다. 두 차례 백의종군과 이루 말할 수 없이 잦았던 음해, 강등, 모욕을 딛고 일어나 임진년과 정유년 두 차례 왜란에서 조국을 지켜낸 이가 이 땅에 났다. 전라좌수사와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하며 무패의 신화를 썼고, 전란의 끄트머리에서 아깝게 숨진 이 위대한 장수를 우리는 479년이 아니라 4790년이 지날지라도 마땅히 기억해야만 한다.
문학은 역사를 말하는 훌륭한 방법이다. 수많은 역사소설이 수많은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저마다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이유다. 비범한 역량, 불굴의 의지, 비극적 결말까지 소설의 주인공으로 손색없는 이순신의 이야기는 일찍이 수많은 문학을 통해 그려져 왔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그중 최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문학을 아는 이는 하나같이 한 작품을 꼽을 테다. 바로 <칼의 노래>다.
이순신 내면을 파고든 걸출한 작품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문호로 손꼽을 만한 이가 바로 김훈이다. <한국일보> 기자 가운데서도 글 잘 쓰기로 손꼽혔던 그는 기자직을 내려놓은 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작품목록 가운데서 가장 특별한 작품이 바로 <칼의 노래>다. 박래부 기자와 함께 쓴 <문학기행>, 2003년 작 에세이 <밥벌이의 무거움>, 2015년 출간된 <라면을 끓이며> 같은 걸출한 산문도 여럿이지만 <칼의 노래>는 김훈을 걸출한 소설가로 기억하게 한다.
소설은 이순신이 두 번째 백의종군하던 시기부터 노량에서 전사하기까지를 다룬다. 즉 정유재란이 발발한 1597년 여름부터 이듬해인 1598년 늦가을까지가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다. 장군의 심경이며 역사적 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난중일기>가 기본 토대가 되었으나 소설인 만큼 창작된 부분 또한 상당하다.
<칼의 노래>의 가장 큰 가치는 이순신에 대한 해석에 있다. 소설은 이순신의 영웅적 행보를 그리기보단 처절한 인간적 고뇌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전까지 여러 매체를 통하여 이순신이 민족주의를 표상하는 영웅으로써 소비돼온 점을 고려하면 김훈의 해석은 당대로선 여러모로 신선한 것이었다.
특히 이후 제작돼 국민적 흥행을 한 KBS 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 고뇌하는 이순신의 캐릭터는 <칼의 노래>에 빚진 바 크다. 작품 자체는 김탁환의 <불멸>을 뼈대로 삼고 있지만, 김명민이 연기한 이순신의 캐릭터에선 곳곳에서 <칼의 노래>의 숨결이 느껴진다. 실제로 김명민은 촬영 도중 틈틈이 <칼의 노래>를 반복해 읽으며 캐릭터를 잡았다고 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훈의 문장이 베어 올린 이순신의 의식
<칼의 노래>를 특별하게 만든 것 중 하나는 문장에 있다. 김훈은 과거의 만연체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보다 대중적이면서도 작품과 잘 어우러지는 강렬한 단문으로 변신을 꾀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작품은 소설가가 내용 뿐 아니라 문체로도 말을 할 수 있음을 선명히 보여준 작품으로 기록됐다. 역사 속 이순신과 21세기를 살아가는 작가 사이에 이뤄지는 의식의 교차, 그 단순하고 순결한 흐름이 간결한 문장의 모양으로 베어져서 백지 위에 나란히 펼쳐진다. 읽고 있자면 '그래, 바로 이것이다' 감탄케 되는 순간이 적잖다.
이순신과 그의 전쟁에 대해 모르고서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의 삶과 죽음이 너무도 잘 알려져 있기에 자칫 단조롭게 흘러갈 위험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작가는 마치 이순신 본인의 의식을 들여다보는 듯한 문장으로 그 익숙함마저 낯설게 만들어버린다.
역사적 인물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살려내기 위해 의식을 전면에 드러내는 과감한 방법론적 선택이 주욱 이어진다. 의식의 흐름을 압축적인 문장으로 표현해내는 솜씨의 탁월함은 대가의 그것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읽는 내내 작가의 실력에 압도되게 하는 글, 실제 이순신이 살아온 듯 그 고뇌를 헤매게 하는 문장이 이어진다.
바다 가득한 보이지 않는 적의, 부수고 부수어도 새까맣게 몰려오는 적들, 절로 두렵게 만드는 병질적인 임금, 그 모두를 넘어서 살육당하는 존재들, 이 모든 사태를 마주하여 칼 찬 자로서 느끼는 무력함, 어디도 의지할 곳 없이 둘러싼 모든 것과 싸워야만 했던 무장의 고독, 그리고 허무까지. 이 작품으로부터 이순신에 반하였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를 모신 곳곳의 사당을 찾아다닌 세월이 벌써 십 수 년이다. 아마도 나는 이 소설로부터 읽지 않아도 되었을 무언가까지 읽어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왜 이순신을 성웅이라 부르는가
우리는 이순신을 쉽게 성웅이라고 부르지만,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유학에서 최고로 꼽는 인간형이 바로 성인이다. 시대를 가로지르는 업적을 이룬 비상한 이를 영웅이라 칭한다. 성인과 영웅을 합쳐 부르는 것이 바로 성웅이다. 왜 이순신만이 이 땅에서 나고 죽은 수많은 이들 가운데 유일한 성웅으로 불리는가. 그건 그저 그가 이룬 업적 때문만이 아니다. 보통의 인간이 질 수 없는 짐을 지고 보통의 인간이 갈 수 없는 길을 갔기 때문이다. 그 길 위에서 그가 마주했을 인간적 고뇌를 이 소설은 집요하게 파고들어 진지하게 묘사한다.
<칼의 노래>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순신을 그린 훌륭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그가 태어난 지 꼭 479년이 된 날, 이 소설을 꺼내 이야기하는 이유다.
다음은 인상적인 대목.
"나는 개별적인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온 바다를 송장이 뒤덮어도, 그 많은 죽음들이 개별적인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나는 여자가 죽으면 어디가 먼저 썩을 것인지를 생각했다. 나는 그 썩음에 손댈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은 자는 나의 편도 아니었고 적도 아니었다. 모든 죽은 자는 모든 산 자의 적인 듯도 싶었다. 내 몸은 여진의 죽은 몸 앞에서 작게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면은 돌아서지 못했다. 다시 돌아서려는 순간, 적의 칼이 면의 오른쪽 허벅지를 찔렀다. 면은 왼쪽 다리로 버티고 서서 자세를 낮추었다. 살아남은 적은 셋이었다. 3명의 적을 앞에 두기 위하여, 면은 거듭 뒤로 물러섰다. 허벅지에서 피가 흘러 신발이 미끈거렸다. 면의 자세는 점점 낮아졌다. 면은 뒤쪽으로 퇴로를 뚫지 못했다. 반쯤 구부러진 면은 칼을 높이 치켜들어 머리 위를 막아냈다. 위로 뛰어오른 적이 내려오면서 면의 머리 위를 갈랐다. 면은 비틀거리면서 피했다. 적의 칼이 땅바닥을 쳤을 때 면의 칼은 다시 나아가 적의 허리를 베었다. 그리고 나서 면의 오른편 다리가 꺾여졌다. 면이 다시 세를 수습하려고 몸을 뒤트는 순간, 적의 칼이 면의 오른쪽 어깨를 갈라내렸다. 면은 칼을 놓치고 제 피 위에 쓰러졌다. 스물한 살이었고, 혼인하지 않았다."
"내 시체를 쓰레기의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이길 수 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냄새와 내 젊은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 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 냄새가 떠올랐다. 멀리서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냄새들은 화약 연기에 비벼지면서 멀어져갔다. 함대가 관음포 내항으로 들어선 모양이었다. 관음포는 보살의 포구인가. 배는 격렬하게 흔들렸고, 마지막 고비를 넘기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선창 너머로 싸움은 문득 고요해 보였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