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부실대응 혐의로 기소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측은 24일 법정에서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11건의 112신고가 들어왔음에도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던 책임을 상급기관인 서울경찰청에 돌렸다. 112신고를 접수한 서울청이 용산서에 신고 내용을 별도로 무전하지 않아 위급성을 파악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전 서장 측은 참사 현장 주변 클럽 앞에 줄지어있던 시민들 탓에 참사가 발생했다는 식의 변론을 펴다 검찰 측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날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배성중·김병일·백송이) 심리로 열린 이 전 서장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사건 재판에서는 압사를 우려한 시민들의 112신고 육성 음성이 검찰에 의해 처음 재생됐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16분보다 네 시간여 앞선 오후 6시 34분을 시작으로 총 11건의 112 압사 신고가 있었다.
"여기 이태원 메인스트릿 들어가는 길인데요. 여보세요, 클럽 가는 길 해밀턴 호텔 그 골목에 이마트24 있잖아요. 그 골목이 지금 사람들하고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거든요. 사람들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서 압사당할 것 같아요. 겨우 빠져 나왔는데, 이거 인파 너무 많은데 통제 좀 해 주셔야 될 거 같은데요. 지금 너무 소름 끼쳐요. 그 올라오는 그 골목이 굉장히 좁은 골목인데, 이태원 역에서 내리는 인구가 다 올라오는데 거기서 빠져 나오는 인구와 섞이고. 그 다음에 클럽에 줄 서있는 그 줄하고 섞여 있거든요. 올라오는 인구를 막고, 그 다음에 그 메인스트릿에서 나오는 인구하고, 그 다음에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사람들이 다 나와서 그 골목으로 다 들어가요. 지금은 아무도 서있지 않아요. 이거 경찰이 좀 서서, 통제해서 인구를 좀 뺀 다음에 그 다음에 안으로 저기 들어오게 해줘야지. 나오지도 못하는데 지금 사람들이 막 쏟아져서 가고 있거든요." - 오후 6시 34분 112신고
검찰이 "신고자가 구체적인 해결책까지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이 전 서장 측 변호인은 "112신고는 서울청 112상황실에서 응대(접수)하는 것이지, 용산서와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전 서장 측 변호인은 "이렇게 중요한 신고에 대해서는 (112신고를 접수한) 서울청에서 관할 서에 확인해보라고 무전 지령을 해야 마땅한데, 무전 지령도 하지 않았다"라며 "그런데도 일선 경찰서에서 왜 확인하지 못했냐는 건 너무 무리한 것 같다"고 했다. 상급기관인 서울청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에 검찰은 "무전 지령은 플러스 알파일 뿐, 서울청에 112신고가 접수되면 시스템상 바로 관할 경찰서로 지령이 내려간다"라며 "전산 시스템상 용산서도 서울청과 같은 화면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신고 음성을 듣고자 한다면 버튼을 눌러 들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다만 검찰은 "서울청도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다"라며 "그 부분은 별도로 기소가 돼있다"고 했다. 지난 1월 뒤늦게 기소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과 류미진 전 서울청 112상황관리관, 정대경 전 서울청 112상황3팀장 등을 언급한 것이다.
서울에서 112신고를 하면 서울청이 최초 접수해 중요도에 따라 코드0부터 코드4까지 분류하고, 이를 관할 경찰서로 내려 보낸다. 참사 직전 있었던 11건의 압사 경고 신고는 ▲코드0이 1건 ▲코드1이 7건 ▲코드2이 3건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이중 서울청에서 용산서로 별도로 무전을 한 것은 코드0(참사 당일 오후 9시) 신고가 유일했다. 코드0과 코드1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이 출동해야 하지만, 당시 코드1 신고 7건에 대해선 경찰 출동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임재 측 "서있는 사람들은 누구냐"… 검찰 "그래서 참사 발생했다는 거냐"
재판에서는 참사 당시 현장 상황이 담긴 일부 CCTV 영상이 처음 재생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서장 측 변호인은 검찰 측에 거듭 "해밀턴 호텔 쪽에 대기하고 멈춰있는 무리들은 누구냐", "108라운지 쪽에 계속 서있는 사람들은 누구냐", "클럽 입장 대기 줄 아니냐"라고 물었다. 이어 변호인은 "당시 넘어지게 된 계기가, 대여섯명 되는 사람들이 밀었기 때문에 한번 출렁인 사실도 다른 쪽 CCTV로 확인되고…"라며 "그런 부분에 대해 수사를 하다 중단이 됐었는데, 그런 부분도 (CCTV로)보여 줄 수 있나"라고 강변했다.
이에 검찰 측은 "질문의 취지가 뭐냐"라며 "그분들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말을 하려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검찰 측은 "그분들이 어떤 목적으로 그 장소에 있었는지는 공소 사실과 연관이 없다"라며 "클럽을 방문하기 위한 대기줄이었든 뭐든 간에 그런 많은 인파를 예견한 이상, 그 장소에 정체돼있지 못하게 한다든지 하는 조치를 포함해 안전 조치를 했어야 한다는 것이 본건 공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도 이 전 서장 측 변호인이 일부 시민들의 정체를 묻는 질문이 이어지자 "아까 물어보신 것 아니냐"고 했다.
참사 당시의 CCTV영상이 켜질 때마다 법정은 침묵에 빠졌다. 불과 1년 8개월 전 159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 관련 공판이 진행 중이던 이날 오후, 경기도 화성의 한 배터리 공장에서 불이 나 20명 넘게 사망했다는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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