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로 23명이 사망한 경기도 화성 리튬배터리 업체 아리셀이 25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외국인 노동자 불법파견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해명 과정에서 개념이 전혀 다른 '파견'과 '도급'을 동시에 사용하고, 고용형태를 묻는 질문에 "파견도급직"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펴 불법파견 의혹만 키웠다.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이날 오후 경기 화성시 전곡산단에 위치한 공장 화재 현장 앞 기자회견에서 '불법파견이 없었나'라는 질문을 받고 "그런 건 없었다"고 답했다. 박 대표는 "총 103명 근로자가 있고 이중 내국인 정직원이 50명, 나머지 53명이 외래(외국인) 근로자였다"고 했다. 박 대표는 안전교육이 이뤄졌느냐는 질문에 "충분히 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사측은 유독 불법파견이나 외국인 노동자 채용의 불법성에 관한 질문이 나오면 번번이 말문이 막혔다.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자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대표는 말이 없었다. 대신 답변에 나선 박중언 아리셀 본부장은 "그 부분은 현재 파악 중에 있다"고 했다.
'고용허가제 대상 사업장이 아닌데, 외국인 노동자들은 모두 파견직이었나'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박 본부장은 잠시 침묵한 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 드리겠다"고 했다. '제조업에서 파견은 금지돼있는데, 파견직이라는 건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거냐'라는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다.
"파견도급"이라는 업체... 제조업 '파견'은 법으로 금지
심지어 '돌아가신 분(외국인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가 어떻게 되나'란 질문에 박중언 본부장은 "파견이다. 도급이다"라고 말했다. 박순관 대표는 "파견도급직에 대해서는 인적 사항을 저희가 갖고 있지 않고, 인력 도급 회사가 갖고 있다"면서 아예 '파견도급직'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파견과 도급이 엄연히 다른데, 둘 다였다고 한 것이다.
파견은 사용업체가 노동자에게 업무지시를 할 수 있는 반면, 도급은 사용업체가 노동자에게 업무지시를 하면 불법이다. 제조업에서는 법적으로 파견이 금지돼있는데, 이를 피하려고 '도급'을 덧붙였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대재해전문가넷 대표인 권영국 변호사(정의당 대표)는 통화에서 "파견은 다른 회사에서 인력을 공급 받아 사용주가 지시하고 사용할 수 있지만, 도급은 수급자에게 아예 독립적으로 업무를 위임한 것이기 때문에 둘은 법적으로 같이 쓸 수 없는 개념"이라며 "불법파견에 대한 공세를 받으니 황당하게도 '도급'이란 표현을 함께 쓴 것 같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도급의 경우 법으로 업무 지시를 막고 있는데, 실제 제조공정에선 지휘명령을 한 정황들이 보인다"라며 "불법을 빠져나가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법무법인 원곡 최정규 변호사 역시 "아리셀 사측은 파견 노동자들에게 업무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불법파견이 안 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근로자 파견은 해당 공장과 같은 생산 공정이나 제조업에서 원칙적으로 금지돼있다"라며 "(화재가 난) 배터리 검수 및 포장 업무 자체도 일시적이고 간헐적인 업무가 아니라 상시적인 업무다. 103명 중 53명이 파견직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짚었다.
하지만 아리셀이 위치한 전곡산단에는 이같은 불법파견이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이용근 더큰이웃아시아 이사는 "산단 자체가 중소 사업장 위주"라며 "제조 공장에서도 인력 업체를 통한 파견이 음성적으로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현장 주변에서 만난 한 자동차 부품 공장 노동자(여, 55)는 "전곡산단에는 주로 인천이나 안산 등에 위치한 파견업체들을 통해 불법 체류자(미등록 이주노동자) 들이 많이 온다"고 했다.
박 대표는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 중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있나'란 질문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번 참사로 인한 23명의 사망자 중 18명이 외국인 노동자였다.
사측 "참사 이틀 전 화재 발생한 것 맞다"
한편, 사측은 참사 발생 이틀 전날에도 화재가 있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다만 이틀 전 화재는 참사가 일어난 3동이 아닌 2동에서 발생했다고 했다.
박 본부장은 '참사 전에도 화재가 있었는데 쉬쉬했다는 말이 있다'라는 질문에 "쉬쉬하지 않았고, 6월 22일 토요일 오후에 최초의 화재가 다른 현장에서 발생한 게 맞다"면서 "실시간으로 보고 받아 교육 받은 작업자가 적절하게 조치해 진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본부장은 '119신고는 왜 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엔 답변하지 않았다. 앞서 소방 당국은 22일 화재에 대해 신고 접수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관련기사: '이틀 전에도 공장 화재' 의혹에 소방당국 "두달간 119 신고 없었다"
https://omn.kr/296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