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 오전 10시 30분. 작은 배터리에서 난 연기가 42초 만에 공장을 가득 메웠다. 그 짧은 시간 동안 23명의 소중한 삶이 사라졌다. <오마이뉴스>는 숫자 '23명'이 아닌 그들 한 명, 한 명의 삶을 전한다.[편집자말] |
"절대 뒤돌아보면 안 된다. 앞만 보고 걸어야 해."
앳돼 보이는 아이가 맨 앞에 서자 누군가 이렇게 말을 건넸다. 자신의 상체를 다 가리는 영정을 두 손으로 붙든 채, 아이는 그 이야기에 따라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뗐다.
영정엔 옅은 미소를 띈 아이 엄마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고인의 남편은 지친 얼굴로 뒤를 따랐고, 숨진 딸의 소식을 듣고 타국에서 온 어머니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로 숨진 고 주이(34)씨의 발인이 15일 오전 경기 화성시 함백산추모공원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그는 지난달 24일 발생한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라오스 국적의 주이씨는 참사 발생 이틀 후에야 신원이 확인됐고, 유가족들은 그로부터 19일이 지난 7월 13일 빈소를 차렸다.
이날 오전 찾은 그의 빈소 앞엔 전국동포애심협회,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화성시의회 의원 명의의 근조화환이 놓여 있었다. 빈소 주변에 있던 한 조문객은 "(주이씨는) 밝고 잘 웃으시는 분이었는데..."라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오전 7시가 되자 장례식장 관계자가 "제사를 지내겠다"고 알렸다. 유가족들은 빈소 안쪽에서 약 10분간 발인제를 진행했다. 이어 "이제 진세(塵世, 고통을 주는 복잡하고 어수선한 세상)를 마치시고 영원히 다시 못 오실 길에 오르셨습니다"라는 축문이 이어지자 유가족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빈소 밖까지 새어 나왔다.
유가족들은 발인제를 마친 뒤 운구차로 향하기 위해 줄을 섰다. 제일 앞줄에는 아이가 영정을 든 채 서 있었고 그 뒤로 남편과 어머니가 따라 걸었다. 다른 가족들과 지인들도 이들을 뒤따랐다. 운구차 앞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주이씨의 관을 옮겼다. 주이씨의 어머니는 휴지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고 차량은 장지로 떠났다.
"다음 생엔 모두 행복한 세상에서 태어나길..."
주이씨의 남편 이재홍씨는 전날 이곳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추모제에 참석해 "회사와 정부가 책임자들을 잘 가려내 엄하게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도록 조치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모제 중 마이크를 잡은 그는 "여기 모이신 분들 모두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힘드실 것이다. 힘 내시란 말씀을 드리고 싶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이씨는 "돌아가신 분들은 일만 열심히 하다 돌아가신 분들"이라며 "다음 생엔 희생자들이 편하고 행복한 세상에서 태어나길 바라며, 유가족 협상과 사측에 대한 처벌도 잘 진행돼 유가족들의 마음이 풀리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주이씨를 비롯해 장례 절차를 마무리했거나 진행 중인 이는 모두 9명이다. 다른 희생자 중 상당수의 유족은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장례를 미루고 있다. 장례 여부와 관계없이 유가족들은 추모제에 참석해 서로를 위로하고 빈소를 들러 조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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