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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은 전북 서남쪽에 위치해 있고 전남 영광과 경계해 있는 군이다. 구시포와 동호는 고창의 해수욕장이자 항구이다. 고창 바다는 남쪽부터 구시포, 동호, 고창 갯벌(곰소만)로 이어져 있으며 곰소만의 남쪽은 고창, 북쪽은 부안군이다. 구시포와 동호에서 만난 어민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인 바다를 위도 앞바다라고도 하고 칠산앞바다라고도 불렀다.
 
 구시포와 동호 어선들이 어업 활동을 하는 칠산 앞바다 혹은 위도 앞바다
 구시포와 동호 어선들이 어업 활동을 하는 칠산 앞바다 혹은 위도 앞바다
ⓒ 유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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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은 구시포와 동호를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구시포해수욕장은 명사가 십리에 펼쳐지고 우거진 송림이 장자산 줄기를 이어받아 좌우로 해안을 따라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는 듯 펑퍼짐하게 펼쳐져 있으며  금모래 사장의 남쪽 기슭에는 정유재란때 주민 수십 명과 비둘기 수백 마리가 반년 동안 피난을 했다는 천연동굴이 있다. 천혜의 배경 속에 펼쳐진 세사 금모래는 갯벌 한점없는 최적의 해수욕장이다. 동호해수욕장은 수백년 된 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4km의 백사장은 모래가 가늘며 경사가 완만하다. (고창군 홈페이지 인용)"

지난 27일~28일 구시포와 동호에 사는 어민 3명을 인터뷰 했다. 인터뷰의 주요 내용은 어린 시절 경험한 바다와 현재 경험하고 있는 바다에 대해 변화된 것이 무엇인지?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지? 후손들에게 바다를 물려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이었다.

동호에서 만난 정수선 선장은 52년 군산 출생이다. 바다가 좋아 85년부터 고창에서 선원으로 일하다가 88년 선장이되고 지금까지 40년 어업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88년 처음 어업을 시작할때 동호는 고창의 유일한 항구였으며 23척의 배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2척만 남아있고 2척도 거의 어업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수선 선장
 정수선 선장
ⓒ 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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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어업을 시작 할 때 바다는 어땠습니까?

"88년 당시에는 하루에 두 번씩 바다에 나갔는데 오후에 나가서 잡아 오면 150~200만 원을 벌었어요. 병치, 꽃게, 양태(장대) 같은 것을 잡기도 하고 선원 3~4명과 함께 4톤 배로 가을에 꽃게를 10톤 이상 잡았어요. 노랑조개도 넘쳤죠. 당시에는 어군탐지기도 없을 때라 별 보고 달 보고 어업을 했습니다."

- 언제부터 고기가 안 잡히기 시작했습니까?

"약 10년 전부터 고기가 안 잡히기 시작했어요. 내년에는 좀 나아지겠지 하다가 지금까지 왔어요. 수심도 많이 얕아지고 지형도 많이 변했어요. 수심이 약해지니까 수온이 빨리 올라요. 칠산 앞바다는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로 잘 아는데 새만금 방조제가 생기고 조류가 약해지기 시작하면서 바다에 모래 등이 생겼어요. 고기는 섭이라고 약간 경사가 있는 곳에 숨어 사는데 그런 곳을 찾아다니며 어업 활동을 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어요. 20년 사이에 수심이 2~3미터는 얕아졌는데 그만큼 퇴적이 된 거예요. 그래서 10년 전부터는 봄에 잠깐 고기를 잡고 어업을 포기했어요. 배를 몰고 나가면 기름값도 안 나오니 방법이 없어요."

정수선 선장은 고창에서는 알아주는 베테랑 선장이라고 했다. 어군 탐지기도 없이 물고기가 있을 만한 곳을 수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으로 체득한 것이리라. 위도 앞바다라 해봐야 사방으로 20~30km 내외이고 그곳을 40년 동안 다녔으니 오죽 잘 알겠는가?

- 예전 동호 마을은 어땠습니까?

"구시포 항이 2000년 즈음에 생겼는데 그 전에는 동호가 고창 유일한 항이었어요. 칠산 앞바다는 조기가 가득한 황금어장이었는데 영광 법성포에서 위도까지를 칠산 앞바다라 해요. 예전에는 경상도나 전남에서 조기를 잡으러 동호까지 와서 사람들이 두세 달씩 살다 가고 그랬어요. 동호가 고창에서 가장 부자 동네였어요. 사람도 많고 고기도 많고 물자가 풍부한 동네였어요."

- 현재는 어떻습니까?

"지금은 동호항이 폐항되고 어선도 2척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 마저도 어업을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예요. 올해도 3~5월 실뱀장어를 조금 잡고 말았어요."

- 후손들에게 좋은 바다를 물려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요. 방법이 있을까요?"

누구보다도 칠산 앞바다를 잘알고 바다가 좋아 모두가 떠날때도 아직 남아 있는 베테랑 선장 정수선씨 한 숨을 들으며 나는 소중한 무형문화제를 잃는 듯이 안타까웠다. 40년 동안 칠산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열 길 물속도 훤히 내다보던 그마저도 손들게 만들어버린 새만금 방조제 그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했다.

구시포에서 만난 김병호 선장은 63년 구시포 출생이다. 집안대대로 어업을 했으며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7남 2녀 중 4명이 구시포에서 어업을 하고 있을 정도로 어부 집안이다. 20살부터 어업 활동을 하다가 91년부터 선장으로 본격적인 어업 활동을 했다고 한다. 5톤 배 1척과 3톤 배 1척으로 중하(새우)와 꽃게를 주로 잡고 철마다 병어도 잡고 최근에는 멸치도 잡고 한다고 했다.
 
 김병호 선장
 김병호 선장
ⓒ 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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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기억나는 바다는 어떻습니까?

"초등학교 다닐 때였을 거예요. 바람이 많이 불어서 오징어가 백사장으로 밀려 오면 지게를 가지고 가서 담아오고는 했어요. 또 바람이 많이 불면 노랑조개가 모래 위로 드러나거든요. 그럼 막대기로 땅따먹기하듯 줄을 긋고 쓸어 담기도 했어요. 무엇이든 풍족했지요."

- 생업으로 어업을 하실때는 어떠셨습니까?

"91년부터 본격적으로 조업을 시작했어요. 항도 없어서 밀물 때나 썰물 때 갯골을 타고 배를 몰고 나가고 들어오고 하면서 어업을 했어요. 2010년 정도까지는 크게 타격없이 잘 해왔습니다. 영광 핵발전소 온배수 때문에 패류가 사라지기는 했지만 어업은 괜찮았어요."

- 언제부터 고기가 안 잡히기 시작했습니까?

"2010년 이후부터 고기가 안 잡히기 시작했어요. 새만금 방조제가 생기고 최근에는 신항만까지 물길을 막아버리니 조류가 약해지고 하다보니까 어업이 잘 안 됩니다. 여름 꽃게 금어기에는 병어를 잡아야 하는데 3년 전부터 해파리도 더 심해져 한달 전부터 조업을 포기하고 놀고 있어요. 해파리가 새만금 방조제 안에서 알을 낳고 자라서 갑문을 열면 쫘악 퍼지는 겁니다. 새우 그물에 해파리만 잡히고 그물도 망가지고 해서 여름 조업을 못하고 있어요."

- 형제 중에 4명이나 어업을 하시고 몇 대에 걸쳐 어업을 해오셨는데 혹시 자녀 중에 어업을 하는 분이 있나요?

"제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조카 중에도 없고 저희 형제가 마지막입니다.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희망이 없어요. 현재 구시포 항에 배가 150척 있는데 어업을 하는 배는 30척 밖에 되지 않아요. 그나마 새우는 좀 잡히는데 해파리 때문에 조업을 못하잖아요. 해파리라도 대책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지속가능한 바다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한빛 원전 1, 2호기가 수명이 다 되었잖아요. 구시포는 원전 온배수 배출을 위해서 막아놓은 방조제 영향도 많이 받아요. 원전 가동 중단하고 그것부터 없애면 좋겠고 새만금 때문에 조류가 약해져서 바다 속 바닥이 썩어요. 해저 바닥이 썩지 않게 뒤집어주면 숨통이 좀 트일 것 같아요."

동호와 구시포의 베테랑 어민들은 새만금 사업에 의한 영향이 이렇게 클지 몰랐다고 했다. 고기가 주로 조류가 쎈 곳에서 잘 잡히는데 새만금 방조제가 있기 전에는 밀물 때 동진강까지 쭉 밀고 올라가고 썰물 때 쭉 빠지면서 조류가 세고 고기도 잘 잡혔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방조제가 막혀 조류가 약해졌다는 주장이다. 

동호에서 새우 양식장을 하며 갯벌 체험장도 운영하는 최보선씨는 70년 동호 출생이다. 한국수산경연인연합회고창군지회 지회장은 맡고 있는 그는 최근 갯벌의 변화가 무서울 정도라고 했다. 최보선씨도 집안 대대로 어업을 해온 어부 집안으로 아버지 따라서 초등학교 때부터 실뱀장어를 잡으러 다니기도 하면서 자랐다고 한다.

고창군의 소개처럼 구시포와 동호는 멋진 모래 백사장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런 모래 백사장에 펄이 쌓이고 있다고 했다.
 
 최보선씨가 동호 해수욕장 뻘 웅덩이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최보선씨가 동호 해수욕장 뻘 웅덩이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 유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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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호 백사장이 어떻게 변하고 있습니까?

"예전에는 트랙터나 경운기를 몰고 동호 백사장 어디로나 갯벌로 나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펄만 쌓인 곳이 많아져 트랙터나 경운기가 빠지는 일이 많이 생겨요. 펄과 모래가 썩여있는 혼합 갯벌이어야 하는데 펄만 쌓이니 빠지는 거예요. 잘 보고 들어가야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예요. 그리고 장마철에 마을 물을 내보내기 위해 백사장에 수로를 내고 갑문을 만들었는데 7~8년 전부터 펄이 쌓여 갑문을 막아버립니다. 포크레인으로 1년에 한번씩 퍼내지 않으면 안 돼요. 그만큼 퇴적 환경을 급격히 변하는 거죠. 1년에 1mm가 쌓여서 갯벌이 형성된다는데 70cm 이상 쌓여 갑문을 막아버리는 것을 보면 무서워요."

- 왜 그런가요?

"조류의 영향이죠. 백사장도 고르게 펼쳐져야 하는데 중간에 모래톱이 쌓여요. 조류가 약하니까 쓸어내지 못하는 겁니다. 그럼 조류가 왜 약해졌을까요? 어종이 바뀌고 수온이 상승하고 그런건 기후 영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퇴적 환경이 급격히 바뀐건 새만금 사업이 제일 큰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새만금을 살려야죠. 방조제를 허물수는 없잖아요. 강하구는 자궁과도 같아요. 물고기들의 산란장이잖아요. 새만금이 물고기 산란장으로 살아나면 그 새끼들이 밖으로 나오고 자연스럽게 어업도 활성화되겠죠. 조류가 다시 원상 회복되지는 않겠지만 우선을 새만금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갑문을 자유롭게 열어서 살려야 해요."

최보선씨는 죽은 바다를 살리는 길은 새만금을 살리는 길이라고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전과 같이 돌아가지는 못하겠지만 이제라도 살리지 않는다면 칠산 앞바다는 더 황폐화되고 고향 마을도 황폐해 질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주장하면서도 그 말 속에서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느껴졌다. 그들은 체념으로 경고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새만금어민피해#새만금해수유통#새만금기행#고창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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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에 살고 있습니다. 기자 활동은 전라북도의 주요 이슈인 새만금 사업에 대해서 다뤄보고 싶어 시민 기자로 가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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