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딱 30년이 되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바람대로,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 온 것일까.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김남주 정신이 필요하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지금 여기에서 김남주가 다시 살아 서 있는 모습을 그려 본다. 24인의 문학인들과 활동가들이 2024년의 한국 사회를 짚어 보며,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자 한다.[편집자말] |
시란 인식의 전환을 끌어내는 일이어서, 좋은 시를 접하면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는 그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고야 만다. 그것을 일종의 혁명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그렇기에 과거에는 시인이 일종의 혁명가적 기질을 가진 자들을 의미했다. 시란 머물기를 거절하는 일이고 그러므로 지속적으로 갱신하는 일이다. 그것은 시인이 각 시편의 시 쓰기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 격렬한 변화와 갱신은 각 편의 시 내부에서 스스로 이뤄지는 법이다. 생명이 긴 시란 세월과 더불어 계속 새로워지는 시이며, 그 세월 속에서 독자와의 화학반응을 통해 이전과는 달리 읽힐 힘을 얻는 시를 가리킨다. 가령 김남주의 시처럼.
꽃이다 피다
피다 꽃이다
꽃이 보이지 않는다
피가 보이지 않는다
꽃은 어디에 있는가
피는 어디에 있는가
꽃 속에 피가 잠자는가
핏속에 꽃이 잠자는가
-<잿더미> 부분
김남주의 이 시를 그의 절창 가운데 하나로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이 시를 처음 읽으며 전율하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때는 대학생이었고, 대체 시가 무엇인지 한참 고민하던 때였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어, 이런 걸로도 되는구나.'
이런 것이란 이토록 추상적이고 많은 것이 생략된 말하기를 의미하는 것이고, 된다는 것은 그 생략된 말하기가 지극히 구체적인 현실을 지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꽃과 피라는 지극히 단순한, 심지어는 낡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저 은유가 맥동하는 리듬과 더불어 실체를 얻어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게끔 하고, 그것이 우리의 '영혼'과 '육신'으로 결합하며 우리의 삶으로 틈입해 온다.("죽음의 불길 속에서/ 영혼은 어떻게 꽃을 태우는가/ 파도의 심연에서/ 육신은 어떻게 피를 흘리는가", <잿더미>) 관념이 육체와 영혼을 얻은 뒤 도달하는 곳은 '보리'와 '잡초', '누룩'과 '죽순', 그리고 '죽창' 등으로 표상되는 구체적 삶의 자리다. 이 자리에서 구분되어 있던 '피'와 '꽃'은 하나가 되어, "꽃속에 피가 흐른다"는 전기적인 선언이 도출되는 것이다.
리듬을 통해, 그리고 육체와 영혼을 통해 손에 잡히지 않는 관념의 자리에 선명한 삶의 현장이 자리 잡고, 다시 그 현실은 시적 승화에 힘입어 더 나은 내일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감각이었다. 형식적인 아름다움과 삶에 대한 날 선 감각이 마주하는 순간, 그 순간 가능해지는 놀라운 경이로움, 그런 것이 김남주의 시에는 있었다.
감탄 뒤에 오는 곤란함
그것은 김수영이 말하는 '온몸으로 밀고 가는 시'와도 통하는 것이었다. 본디 길항할 수밖에 없을 시와 현실이 시인의 육체를 경유하여 모순적인 합일에 도달하고야 마는 것이 김수영의 '온몸의 시학'이라고 한다면, 피와 꽃의 은유가 육신과 영혼을 경유함으로써 피가 꽃이 되고, 또 꽃이 피가 되는 저 시적 도약의 순간이야말로 '온몸의 시'가 탄생하는 순간이라고 말해야만 하리라.
김수영이 후대에 던진 저 질문을 오래 간직하며 고민하던 나에게 김남주의 시는 일종의 통쾌한 답안지에 가까운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일종의 혁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의 시를 접하면서 시에 대한 인식 자체가 크게 바뀌고야 말았으니까. 진은영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첨예하게 미학적이면서 치열하게 정치적인 시'라는 아주 예외적인 순간이 어떻게 가능해지는 것인지, 그 단초를 김남주의 시가 전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남주의 시는 나에게 오늘날 시가 처한 어떤 불가능을 실감하게 만드는 두터운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가 김남주의 시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고, 뒤이어 생각한 것은 이런 것이었다.
'어, 그런데 이걸 지금 어떻게 할 수 있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김남주의 시대는 많은 이들이 혁명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던 시대였다. 그렇기에 시인은 일종의 혁명가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는 옥중에서 시를 쓰며 그 자체로 감옥인 우리의 현실을 초월하는 혁명적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그 꿈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혁명을 꿈꾸는 이가 그 혼자만은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의 옥중 시의 상당수가 동료와 이웃을 떠올리고 말을 거는 식이었던 것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고 외칠 때, 그는 '우리'의 실재를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우리'가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 강하게 믿고 있었다. 요는 많은 이들이 혁명의 꿈을 꾸는 시대였기에 그러한 시 또한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시인이 그와 같은 혁명가적 기질을 가질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제 어느 누구도 작가를 지식인이나 혁명가, 혹은 불온분자 비슷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예술은 예술의 자리에 한정되어 생산되며 소비되고 있을 따름이고, 어지간히 도발적이고 문제적인 예술 작품 또한 결국 예술 시장에서 유통되고 소비되는 상품이 되었을 따름이다. 그것이 이 시대의 시인으로서 내가 느끼는 가장 큰 곤란함이다.
오늘날의 작가-독자 관계는 생산자-소비자 관계에 보다 가까우며, 이러한 관계 안에서 '우리'라는 감각을 갖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세계를 개변하리라는 꿈을 갖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이제 불온한 예술이라는 것은 좀처럼 존재하기 어렵고, 설령 그처럼 예외적인 작품이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독특한 취향의 상품으로서 유통될 뿐이다.
그런 상황이니 김남주의 저 허리 곧은 시구를 읽으며 할 말을 잃을 수밖에. 그 어떤 시를 써도 감옥에 가지 않는 오늘날의 시인은 시 쓰기 자체가 불온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의 시인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뼈아픈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김남주의 시라는 이야기다.
김남주의 꿈, 우리의 꿈
그러나 시인으로서 여전히 나는 시가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그리하여 세계 자체를 전혀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매체라고 믿는다. 또한 그 세계 인식의 변혁은 한 명의 시인이 해내는 일이 아니라, 시가 독자와 만나 그 의미가 확장되고 갱신되어 가는 과정 속에 있노라 믿는다. 그러므로 내가 바라는 것은 저 '우리'의 재건과 확장이다. 김남주의 시대에 가능했던 그 혁명의 꿈이 다시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우리'의 재건이 절실할 테니까.
창비에 실린 시를 보고
이따위 시는 나도 쓰겠다 싶어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시라는 것을 써보았다
나의 칼 나의 피에 실린 나의 시를 보고
이따위 시는 나도 쓰겠다 싶어 보면서
노동자와 농민이 또는 전사가
시라는 것을 처음으로 써보았으면 한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보람이고 나의 자랑이다
-<이 따위 시는 나도 쓰겠다> 부분
다시 김남주의 시를 읽는다. 모든 이들이 시를 쓰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말하자면 만민의 시 쓰기를 주장하고 소망하는 시라고 할 수 있겠다. 김남주는 어째서 노동자와 농민, 나아가 전사까지 시라는 것을 써보기를 원했던 것일까. 시인으로서 그에게 필요했던 것이 그의 시를 읽고 깨달음을 얻을 수동적인 독자였다면 그가 이런 만민의 시 쓰기를 주장하지는 않았으리라.
그가 진정 바랐던 것은 민중이 실천적이며 능동적인 시 읽기로서의 시 쓰기를 수행하고, 그리하여 민중들 각자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시 읽기가 우리의 인식을 개변하는 행위라면, 시 쓰기를 통한 시인 되기는 그 개변을 적극적으로 촉진하는 한편 스스로 자기 변화를 이뤄내는 능동적 주체가 되는 일이다. 그는 민중을 계몽하기를 소원하지 않았다. 그가 바란 것은 민중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의 '우리 사는 꼴'을 발화하는 것, 그리하여 각자가 개별적인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만들어지고 또 갱신되는 것이다.
나는 김남주의 꿈으로부터 오늘날 사라져가는 '우리'를 회복할 방법을 발견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우리 모두가 시인이,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모두가 등단을 목표로 시를 써야 한다거나, 무슨 시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시를 통해 우리 삶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리라는 결심을 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을 시의 독자-소비자로 여기지 않고, 시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뀔 수도 있겠지. 물론 그것은 한참 허황된 꿈과도 같은 것이리라. 그러나 시란 다름 아닌 꿈 꾸는 일 아니겠는가. 김남주가 꿨던 그 꿈을 21세기의 우리가 이어서 함께 꿀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공동주최 : 김남주기념사업회·한국작가회의·익천문화재단 길동무
후원 : 더숲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