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 오전 10시 30분. 작은 배터리에서 난 연기가 42초 만에 공장을 가득 메웠다. 그 짧은 시간 동안 23명의 소중한 삶이 사라졌다. <오마이뉴스>는 숫자'23명'이 아닌 그들 한 명, 한 명의 삶을 전한다.[편집자말] |
쓰러지고, 쓰러지고, 쓰러지고, 또 쓰러졌다.
처음엔 딸이 안치돼 있다고 안내 받은 영안실 입구에서. 며칠 뒤엔 온전치 못한 딸의 시신을 확인하다가. 또 주말마다 농사일을 도와주던 딸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그리고 합동분향소에 딸의 영정과 위패를 올려두다가.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로 둘째 딸 최은미선(38)씨를 잃은 최병학(70)씨는 참사가 발생한 지난 6월 24일 이후 셀 수 없이 정신을 잃었다. 5평도 안 되는 유가족 숙소 모텔방에서 지난 2일 만난 최씨는 "어제도 딸의 시신이 있는 영안실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는 양손을 가슴에 얹은 채 테이블에 엎드려 흐느꼈다. 그렇게 "냉동고 속에 누워있는 딸을 꼭 안아주고 왔다"고 했다.
"미선이한테 '네가 아빠 잘못 만나서 이렇게 고생했구나', '뜨거운 데서 불 끄느라고 고생했구나', '이제는 가시덤불 가지 말고 꽃길만 가야 한다'고 말해줬어요. 하얀 천을 덮어쓴 미선이를 안고 그렇게 계속 울었어요."
꼼꼼했던 딸의 소망
최씨는 1995년부터 세 남매를 홀로 키웠다. 그보다 1년 앞선 1994년엔 사고로 척추 7개가 부러져 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농사와 청소부 일을 병행하며 꿋꿋이 자식들을 키워냈다. 그에게 미선씨는 "세 남매 중 유독 눈에 밟힌 둘째 딸"이었다.
"어릴 적 검사를 했는데 남들보다 지능이 좀 떨어졌어요. 자꾸 애기 같은 짓을 하니까 식구들이 미워했죠. 또 둘째잖아요. 친척들이 큰딸은 먼저 태어났다고 이뻐하고, 막내아들은 막내라고 이뻐했어요. 미선이가 가운데에서 태어나 등한시되다 보니 어릴 때부터 제가 계속 싸매고 다녔죠. 그래서 애가 커서도 계속 아빠 꽁무니를 따라다녔고요."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미선씨는 집안일도 곧잘 해냈다. 식구들 밥을 책임지던 미선씨는 부추 된장찌개와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잘 만들었다. 식사 후엔 늘 설거지까지 해두었다.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고향 태안을 떠나 타지에서 공장 일을 시작했다.
"먼저 손 벌리지 않는 딸이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산에 있는 휴대폰 공장을 시작으로 천안, 안산 그리고 화성 아리셀 공장에서 일했죠. 꼼꼼한 성격이라 공장에서 검수 업무를 주로 했는데, 아리셀에서도 배터리 검수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손이 빠르고, 불량품을 잘 잡아냈어요. 남의 검수에서 나온 불량품까지 잡아낼 정도였으니까요.
미선이가 '돈 벌어서 시집갈래요'라며 아리셀 공장에 갔거든요. 나중에 유품을 보니까 주택청약도 들고 있었고, 통장도 용도별로 분류해 뒀더라고요. 보험·국민연금, TV·휴대폰, 가스·전기 이런 식으로요. 가계부도 매달 작성했고, 보험 서류처럼 필요한 자료는 파일철에 끼워 하나하나 보관할 정도로 꼼꼼했어요."
미선씨는 "돈을 벌기 위해 주말 특근을 자처하면서도 매일 아침 출근길엔 꼭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던" 딸이었다.
"출근길에 거의 매일 저랑 전화했어요. 지난 겨울엔 전화로 '아빠, 미끄러지면 안 되니까 신발 미끄럽지 않은 거 신고 다녀. 옷 단단히 입고'라고 말했어요. 그럼 저는 '뜨뜻하게 입었다'고 대답했죠. 우리 미선이가 가끔 집에 올 때면 선물을 꼭 사왔어요. 내복, 잠바, 난닝구, 팬티, 양말... 그런 것들이요.
지난 제 생일에는 미선이가 태안 집에 오면서 사과, 배, 송산포도 같은 과일이랑 소고기를 사서 왔어요. 이전에도 미선이가 음식을 사 왔거든요. 아까워서 제때 안 먹고 냉장고에 넣어두니 말라 비틀어지더라고요. 그걸 본 미선이가 '픽'하고 웃으면서 자기가 새로 사 온 사과를 깎아줬어요."
행복이 멈춘 날
미선씨는 참사 5일 전인 지난 6월 19일 아빠에게 "시흥에 있는 자취방으로 들기름을 좀 보내달라"고 했다. 평소 직접 김치를 담가 보내줬던 최씨는 그날도 미선씨의 연락에 들기름과 마늘, 감자, 양파를 택배로 부쳤다. 며칠 뒤 '딸이 택배를 잘 받았을까' 궁금했지만 미선씨와 더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참사 이후) 미선이 집에 가서 보니까 택배는 도착해있더라고요."
6월 24일, 부녀의 행복이 멈췄다. 그날 아침 최씨는 자전거를 타고 은행에 가는 길이었다. 오전 10시 40분쯤 얼핏 뉴스를 봤는데 '속보', '아리셀 참사'라는 자막이 보였다. "딸이 아리셀 공장에서 일했다는 걸 알고 있었"던 최씨는 "그때부터 막 여기가..."라며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쳤다.
"갑자기 전화가 왔는데 당황해서 내용이 하나도 안 들렸어요. 자전거를 도로 돌렸고 경찰 세 명이 저한테 와서 '미선씨 아빠 되시냐'고 묻더라고요. '그렇다'고 했더니 제게 '내일 DNA 검사를 하러 화성에 가셔야 한다'고 말했어요. 다음 날(6월 25일)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해 아들, 친척들과 같이 화성서부경찰서로 가 DNA 검사를 했어요.
26일 아침엔 경찰이 '미선이 사진을 가져가라'고 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경찰한테 전화가 왔는데 '장례식장에 안치돼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장례식장에 갔는데 미선이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흥분해서) 주변에 있는 의자를 부수려고 하니 사람들이 제 허리를 붙들었어요. 그러다 쓰러졌습니다."
깨어나 보니 인근 병원이었다. 팔에 꽂혀 있는 링거를 뺀 뒤 최씨는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우여곡절 끝에 딸의 시신을 본 그는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당시를 떠올리며 눈물을 참지 못한 그는 자신의 몸 곳곳을 딸의 몸인 것처럼 가리키면서 "없었어요"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제가 거기서 다시 쓰러졌어요. 또 병원에 실려 갔죠. 밤마다 잠이 안 왔죠. 며칠 뒤에 미선이가 생각나서 또 쓰러졌어요. 주말에 태안 집에 와서 아빠 농사 돕는다고 농약 줄도 잡아줬거든요. 출근 때문에 시흥에 다시 돌아간다고 버스 타러 가던 그 뒷모습이 아직도 보여요."
약속
지난 7월 4일 화성시청 1층에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최씨는 그날 미선씨의 영정과 위패를 분향소에 올리다 다시 쓰러졌다.
그날 이후, 최씨는 더 이상 쓰러지지 않기로 했다. 유가족협의회가 꾸려진 뒤부터 그는 다른 유족들과 함께 아리셀과 정부를 향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제대로 된 대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참사 이후 한 번도 (아리셀) 박순관 대표를 만난 적이 없어요. 정부에도 불만이 많아요. 저출산 대책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은 '아이 많이 낳으라'는 말만 하지 말고 이미 낳은 자식들을 좀 잘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그나마 8월까지 연장하긴 했지만 화성시는 유족 지원을 끊겠다고 해요.
도움 주는 사람 하나 없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애들 엄마도 없고, 큰딸은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고, 아들은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저는 혼자 싸운다고요. 어서 이 문제가 해결돼서 집에 가고 싶어요. 미선이 장례를 아직 못 치러줬어요. 이 싸움이 끝나야 치러줄 텐데, 자꾸 사람들이 아리셀 참사를 잊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 벌써 '아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하면서 살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어요."
최씨는 최근 화성시청 앞에서 열린 시민추모제를 앞두고 딸에게 편지를 썼다. 그 자리에서 "생명 다하는 날까지 목숨 걸고 네 원수를 갚겠다"고 약속했다. 다시 일어난 아빠가 힘주어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아빠는 미선이 네가 뜨거운 불 속에서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너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내 생명 다하는 날까지 목숨 걸고 네 원수를 갚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늘나라에서 가시덤불 가지 말고 꽃길만 걸어라. 사랑하는 아빠가. 2024년 7월 26일."
[아리셀 희생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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