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일로 전국의 지방의회 243곳 대부분은 후반기 원 구성을 마치고, 의정활동 후반전을 맞았다. 하지만 17일 기준, 14곳은 원구성을 하지 못해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식물의회 상태다.
이로 인해 민생과 직결된 조례안 및 추가경정예산안 등이 심의조차 받지 못해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행정사무 집행권은 직무정지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말이 좋아서 여야 간 내지는 각 정당 간 이견으로 인한 지방의회 원 구성 합의 중이지, 실상은 감투싸움과 연간 수천만 원에 달하는 법인카드(업무추진비) 차지에 불과해 보인다.
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으므로 지방의회 회의론까지 일고 있는 가운데 이전에 비해 시민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현 시점에서 제 밥그릇 챙기기로 인한 지방의회 원 구성에 차질이 있을 경우, 견제 기능으로서 ▲주민소환제 강화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결처분 인정 요건 완화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개점휴업 중인 지방의회의 상황은 구체적으로 광역 의회 중에선 울산시의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으며, 시·군·구 기초의회의 경우 서울 25개 자치구의회 중 강동·관악·광진동대문·양천 5개구 의회에서 원 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경기도는 김포시의회와 양주시의회, 평택시의회가 후반기 원 구성을 못한 상태다. 충남에선 예산군의회가, 대전에선 대덕구의회가, 강원도에서는 동해시의회와 홍천군의회가 각각 후반기 의장단 구성을 놓고 협상 중이다. 경남 겨제시의회는 상임위원장 구성을 못한 상태다.
울산광역시의회는 지난 6월 후반기 의장 선거에서 '중복 기표' 논란이 촉발된 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당초 의장 선거에 국민의힘 이성룡·안수일 의원이 출마했는데 1차부터 3차까지 11대 11 동률이 나오자 '울산광역시의회 회의 규칙'에 따라 최다선인 이 의원(3선)이 의장으로 선출됐다.
이에 안 의원이 결과에 불복해 법원에 '의장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고, 인용돼 이 의장의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하지만 아직 의회 상임위 배정이 진행 중인 현 시점에서의 인용이라 의회는 혼란에 빠졌다.
여야가 7대7 동수인 경기도 김포시의회는 2년 전 여야 간 맺은 '상생정치 실천 합의'를 통해 전·후반기 의장을 국민의힘이 모두 맡되 부의장을 비롯해 2개 상임위원장을 더불어민주당 몫으로 배정한다고 합의했다가 후반기 원 구성을 진행하면서 여야 간 입장 차로 인해 파행이 거듭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의회는 지난 6월 말 후반기 의회 출범을 앞두고 실시된 의장 선거에서 이태인 의장의 연임이 결정되면서 개표 과정에 대해 다수의 의원이 불만을 제기하여 이 사태가 촉발됐다.
이후 이 의장을 비롯한 몇몇 의원의 집회요구로 제333회, 제332회에 걸쳐 두 차례 임시회를 소집했지만 부의장과 상임위원장 선출 등 관련 사안에 대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정회와 산회가 반복되면서 파행은 지속중인 상태다.
주민소환제 요건 완화를 통한 지방의회 견제 기능 강화
2007년 5월 11일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이 시행됐다. 이 법의 취지는 지방자치에 관한 주민의 직접참여를 확대하고 지방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함이다.
주민소환투표를 위한 주민 서명수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시·도지사는 청구권자 10/100 이상, 시장·군수·구청장은 청구권자 15/100 이상, 지방의원은 청구권자 20/100 이상의 서명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소환투표결과의 확정은 주민소환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 총 수 과반수의 득표를 한 경우 주민소환투표결과로 확정된다. 그러나 전체 주민소환투표자수가 소환투표권자 총수의 1/3에 미달할 경우 미개표하고 주민소환은 종결된다. 주민소환투표의 효력은 주민소환이 확정된 때에는 소환투표결과가 공표된 시점부터 직이 상실된다.
그러나 행정안전부의 「주민소환 현황(2022.12.31.현재」 에 따르면, 국내에서 주민소환제도가 실시된 2007년부터 2022년 12월 말까지 관할선거관리위원회에서 대표자증명서 교부까지 된 124건의 주민소환사례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124건의 주민소환사례 중에서 주민소환투표까지 진행한 경우는 11건(8.9%)이고, 주민소환투표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에 종결된 경우가 113건(91.1%)이다.
주민소환제를 통해 선출직 공무원이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물러난 사례는 하남시의원 2명이 전부다. 이에 따라서 지방권력을 유일하게 견제 감독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의 무용론이 불거진 지 거의 20년이 다 되어간다.
이에 지방의회가 60일 간 원 구성 합의에 이르지 못하여, 제 기능을 상실할 시 주민소환제 청구 서명요건을 현행과 달리, 다소 완화하고, 그 책임을 해당 지방의회 의원 전원에게 묻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제21조(권한행사의 정지 및 권한대행) 제1항에 따르면, 주민소환투표안을 공고한 때부터 제22조제3항의 규정에 의하여 주민소환투표결과를 공표할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
이를 통해 해당 지방의회 의원 전원 직무정지를 더욱 용이하게 시행할 수 있고, 당연히 세비도 집행되지 않으므로, 의원직 상실 여부를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일하지 않는 의회 의원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회 원 구성 지연 시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결처분 요건
현행법상 집행부는 예산안, 결산안, 추경안, 민간위탁사무안 등 의희의 승인이 없이 집행이 불가능하다. 현재 원 구성이 안 된 14곳의 지방의회의 지방자치단체장은 조례안, 추경안 등 업무가 마비되어 있는 상황이다.
경남 거제시의회는 경남 18개 시군 기초의회 중 유일하게 아직 상임위원장을 뽑지 못해 각종 현안 처리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거제시장은 최근 거제시의회에 제248회 임시회 소집을 요구했다.
거제시는 1조3천810억원 규모의 2024년도 제2회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해 거제대대 이전 및 양여 부지 개발사업 협약서 변경 동의안, 거제시 비정규직 노동자지원센터 민간위탁 동의안 등 약 20여건의 안건을 의회에 부의하여, 승인을 받은 후 집행해야 한다.
하지만 거제시의회 상임위원장이 선출되지 않아서 해당 안건을 심의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거제시는 현재 발이 묶여 있고, 이로 인해 지역사회에 피해가 일어나는 형국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경기도 김포시의 경우, 김포시의회 원 구성 파행으로 인해 다문화 가정 출산축하금 지급 기준 변경, 사회복지사 처우 개선, 도시공원 및 녹지 이용료 감면 계획 수립 등을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난달 17일 준공된 89만 3000㎡ 규모 김포 학운5산업단지는 지번이 나오지 않아 입주 예정 기업 89곳이 토지 소유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토지 등기가 지연될 경우 각 기업은 신용대출을 토지담보 대출로 전환하는 '대출 갈아타기'를 하지 못해 고금리 이자를 계속 부담해야 하는 상황인데, 김포시의회는 요지부동이다.
「지방자치법」 제122조(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결처분)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은 지방의원이 구속되는 등의 사유로 인해 의결정족수에 미달될 때와 지방의회의 의결사항 중 주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하여 긴급하게 필요한 사항으로서 지방의회를 소집할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지방의회에서 의결이 지체되어 의결되지 아니할 때에는 선결처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제1항에 따른 선결처분은 지체 없이 지방의회에 보고하여 승인을 받아야 한다. 만일 지방의회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면 선결처분은 효력을 상실한다.
따라서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지방의회 원 구성 지연으로 인해 긴급하게 조치하지 않으면 주민의 생명과 재산에 중대한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사항 등에는 집행기관이 선결처분을 하더라도, 의회의 승인이 아니라 집행기관의 의회 보고로 갈음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법」 제44조(의원의 의무) 제1항에서는 "지방의회의원은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그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작금의 지방의회 원 구성 지연은 감투싸움에 불과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다.
그렇다고, 저런 지방의회를 두고 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안하무인 격 지방의회에 대응하는 새로운 시민의 권력 재편이 반드시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소셜미디어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