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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 용암서원 앞에 있는 남명 조식 선생의 흉상과 을묘사직소를 새긴 비석
 합천 용암서원 앞에 있는 남명 조식 선생의 흉상과 을묘사직소를 새긴 비석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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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 성대곡(成大谷)은 어릴때부터 남명의 벗이었다. 평생 솔리만에서 은거하여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훗날 남명의 묘갈명을 지었다.

성대곡의 제문

아아!
기린이 노나라 들판에서 죽었고
봉황새는 기산에서 떠났군요
아련한 우주 사이에
신령스러운 것 숨어 사라지는군요
아아! 훌륭하도다. 현철한 분이여
이에 그 모습 빛났습니다
높은 산악의 정기를 타고났으니
천년 동안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아름다운 바탕은 맑고 순수했나니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었습니다
저 진주조개 안에서 진주가 잉태되어
맑은 물에 씻겨서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뛰어나서
용모가 두드러졌습니다
맑은 모습은 사람들에게 비쳤고
영특한 재주는 걸출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나서
닭 무리 속에 고니 서 있는 듯했습니다
아이 때부터
노성(老成)한 사람보다 더 침착하여
앉을 때는 일정한 자리가 있었고
몸은 마루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단정하고 엄숙하고 깊이 있고 묵묵하여
보는 사람들의 정신이 ㅎㅁ칫하였습니다
일찍부터 스스로 주의하여 깨달아서
성인의 학문에 힘서 뜻 두었습니다
떨쳐 일어나서 큰 용기 내기를
마치 노여움 풀지 못한 듯하였습니다
장막을 내리고 글 읽고 외우며
성리에 대해서 연구하였습니다
항상 미치지 못하는 듯하여
마치 배 저어 물 거슬러 올라가듯했습니다
힘을 들여 우물을 파는데
지하수에 닿은 디ㅜ에라야 그만두었습니다
그대의 한 조각 마음은
말이 땀 흘려 공을 거두 듯했습니다
학문은 참되게 이루어지고
덕은 높게 쌓여갔습니다
빛이 밖으로 나타나니
그 문채가 찬란하였습니다
생각은 샘물 솟아나 듯하였고
힘 있는 붓을 구름 위로 치솟았습니다
어찌 화려한 수식만을 일삼아
남의 눈 현란하게 하였겠습니까?
글 짓는 것은 도리에 맞는 데로 나아갔나니
옛날 고전을 법도로 삼았습니다
녹을 받으며 벼슬하길 좋아하지 않아
길이 과거공부를 포기했답니다
다른 사람이 가지려는 것을 그대는 버렸으니
모르는 사람들은 의심을 했답니다.
세상에 나가는 데 어찌 뜻 없었다고 하겠습니까?
배운 바가 시대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맑은 생각은 깨끗하디 깨끗하였나니
세상 어지럽고 흐린 것 싫어했습니다
높고 높은 신어산은,
구름 깊고 물은 푸르렀습니다
망아지 타고 골자기로 들어가
거기에서 자취 감추었습니다
바위 깎아 집을 지었는데
맑은 바람이 자리를 스쳤습니다
수수한 병풍에 검은 책상
왼쪽엔 역사책 오른쪽엔 경서
정신을 집중하여 꼿꼿이 앉았으니
그림이나 상처럼 엄숙하였습니다
때때로 휴식을 취할 때면
지팡이 짚고 일어났답니다
구름 헤치고 학을 찾아가기도 하고
샘물소리 들으며 귀 시원하게 했습니다
매양 좋은 밤이 되면
하늘 가운데 달을 구경했습니다
맑은 빛 가슴으로 받아들여 즐겨
마음 속이 밝고 깨끗해졌습니다
십년 동안 산속에서 지내면서
나아간 바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칼날 빛이 위로 치솟는 듯
난초 향기가 멀리 퍼지는 듯
덕을 숨겨도 숨길 수 없어
이름이 훌륭하신 임금님에게 알려졌습니다
임금님께서 교서 내려 불러
은혜 베풀어 벼슬에 임명했습니다
숨어 엎드려 일어나지 않기를
마치 새가 주실피하 듯했습니다
평소의 절조에 더욱 힘쓰니
감히 그 뜻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몸은 구름 낀 바위 속에 있지만
늘 나라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번 상소하여 대궐 앞에 부르짖었나니
대단한 말슴 바르고 발랐습니다
마치 손에 좋은 칼을 잡고서
가을 빛을 마음껏 가르듯했습니다
세상에서 버리고 살피지 않았지만
그대에게 무슨 해될 것 있었겠습니까?
사대부들이 그 기풍을 추앙하여
서로 사귀고 접촉했습니다
그대의 맑은 논의를 들으면
음악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웠습니다
배우려 하는 맣은 사람들이
경서를 가지고서 와서 물었습니다
한 마디 말로 의혹 제거해 주시니
해를 보듯 분명했습니다
황하에서 여러 사람들이 마셔
각각 그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덕 있는 원로에 힘입어
사람의 모양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늘은 이런 분을 남겨두지 않아
마룻대가 부러지듯 갑자기 작고하였습니다
아아! 슬픕니다.
신령스스런 용이 떠났으니
물고기나 벌레들은 이지할 데가 없습니다
유림의 종장이 세상을 떠났으니,
우리들은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야 하겠습니까?
하늘을 보고 울부짖어도 도리가 없고,
나 같은 것 백 명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구름도 근심스러운 듯 물도 목이 매는 듯.
산의 수풀도 쓸쓸해졌습니다.
거룩하신 임금님 마음에 슬픔이 일어나
품계 뛰어넘어 관작을 추증하셨습니다
관원에게 명하시어 조문하고 치제하셨으니
초애롭게 내려주심 넉넉했습니다
아아! 슬픕니다
내가 막 갓을 썼을 때
그대와 서로 알았습니다
환한 서리처럼 뜻이 맞아
흙으로 만든 피리와 가로 부는 피리 소리 화음 이루 듯
쪼고 갈고 한 것은
오직 도와 덕이었답니다
그대의 날카로운 도끼 휘둘러
나의 울퉁불퉁한 통나무 다듬어주었습니다
내가그대만 같지 못한 것 부끄러워했는데
내가 인(仁)하게 되는 것 도와줄 것 허락했습니다
옛날 그대가 서울에 살 적에는
집이 바로 이웃에 붙어 있었습니다
아침에 만나 이야기하여 저녁까지 갔고
밤에는 같은 자리에서 잠자기도 했습니다
활시위와 화살이 서로 떠나 듯
남기성과 북두성처럼 서로 떨어지게 됐습니다
모래 움켜지면 손에서 빠져나가는 듯
구름과 용 서로 떨어진 듯했습니다
다만 서신을 통해서
때때로 쓸쓸함 달랬답니다
그대 숨을 거두기 전에는
그래도 소식 이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승과 이승 길이 떨어졌으니
아아! 슬픕니다
나도 이제 아주 늙었고
고질병도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말라빠진 귀신 같은 모습
마루에서 내려갈 힘도 없습니다
고개 돌려 남쪽 하늘 바라보니
산과 내만 멀리 아득합니다
상여가 길을 떠남에
나는 상여줄도 잡지 못한답니다
관(棺)을 무덤 구덩이 속에 넣을 때
나는 무덤 구덩이 가에 있지도 못했습니다
음식 갖추어 제사 드릴 때도 직접 술 따르지 못하니
어찌 정성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절하는 것은 다른 사람 손 대신 빌렸지만
우는 데는 목소리를 빌리지 않았답니다
무덤 속에 계신 그대에게 면목 없지만
내가 좋은 친구였다는 것 아실런지요?
글로써 내 마음을 적으니
울음이 나오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합니다
아아! 슬픕니다.
흠향하시옵소서. (주석 1)

주석
1> 허권수, 앞의 책, 10~1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진짜 선비 남명 조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조식평전#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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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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