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함께 국정감사의 시간이 다가왔다. 국정감사는 '국회법'과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기국회 기간 내에 3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실시한다. 지난 9월 2일 개막한 올해 정기국회는 10월 7일부터 25일까지 국정감사를 진행한다.
관련하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10월 7일 외교부, 8일 통일부 감사를 진행하고 해외공관에 대한 현장 감사를 수행한 이후, 10월 24일 종합국감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 글에서는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점검이 필요한 세 가지에 대해 논해보려 한다.
첫째, 통일부의 기본(시행) 계획 늦장 수립과 국회 보고
통일부는 법령에 따라 각종 기본계획과 연차별 시행계획을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통일부는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과 연차별 시행계획을 국회에 보고해야 하며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 및 집행계획을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또한, '이산가족 교류촉진 기본계획'에 따른 연도별 '진행 경과'를 관련 법률 규정에 따라 역시 국회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
관련하여 통일부는 2023년 '남북관계발전에관한법률'에서 "정기국회 개회 전까지" 국회에 보고하도록 한 규정(제13조 5항)을 위반하고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을 11월에 늦장 보고했으며, 2023년 시행계획을 11월에 고시하는 촌극을 펼친 바 있다. 통일부의 기본계획 및 연차계획 늦장 수립과 국회 보고는 2023년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하지만 통일부의 늦장 계획 수립과 국회 보고는 2024년에도 고쳐지지 않았다. 통일부는 올해 5월 말이 돼서야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기본계획'과 '남북관계발전시행계획'을 수립하고 국회에 보고했다. 그것도 21대 국회 종료를 며칠 남겨두지 않고 동 계획들을 국회에 보고하는 꼼수를 썼다. 통일부는 또한 올해 '통일교육 기본계획'을 6월에,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시행계획'은 8월에야 수립하였다. 연차계획이 여름에 수립되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관련 기사:
늦어도 너무 늦은 계획수립, 통일부 왜 이러나, https://omn.kr/28vbb).
뿐만 아니라 통일부는 '자문위원회의 자문 없이 수립이 불가'하다는 이유로 '제3차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2023~2025)'과 연차별 집행계획을 국회에 보고하지 않고 2023년 12월 '북한인권 증진 종합계획'을 수립해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북한인권법'에 따르면, "통일부 장관은 기본계획에 따라 매년 북한인권증진에 관한 집행계획을 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수립"해야 하며, "기본계획 및 집행계획이 수립된 때에는 이를 지체 없이 국회에 보고하여야 한다"(제6조 3항). 통일부가 단지 '자문'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해당 기본계획과 집행계획을 수립하지 않는 것은 '북한인권법'의 입법 취지를 부정하고 국회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통일부가 법률에 규정된 기본계획과 연차별 시행계획을 늦장 수립하는 것은 형식적인 계획 수립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이 계획들을 국회에 늦장 보고하는 것은 국회의 권한을 무시, 침해하는 행위이다. 정부 각 부처가 연초에 대통령에게 해당 연도 업무보고를 하는 만큼 통일부의 각종 계획이 연초에 수립되어 국회에 보고될 수 있도록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둘째, 부실한 '통일 독트린', 2년 동안 무엇을 준비했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관련하여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 통일부 소관 국정과제로 '미래 통일국가의 청사진' 마련을 제시한 바 있다. '통일 독트린'이 2년 이상 통일부 국정과제로 준비된 결과라는 말이다.
통일부는 2022년부터 매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통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통일방안 발전안'을 준비해 왔다. 관련하여 통일부는 (가칭) '新통일미래구상' 마련을 위해 민·관 협업 플랫폼으로 '통일미래기획위원회'를 신설해 운영해 왔다. 통일미래기획위원회는 2023년 출범 이후 5개분과 35명의 위원들이 54차례의 회의를 개최했으며 2023년과 2024년 25억 5천만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통일 독트린'은 그야말로 부실한 내용에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전적으로 계승했다고 보기 힘든 흡수통일론으로 채워졌다. 특히 3대 통일 추진전략에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강조하는 남북관계가 아예 빠져 있으며, 7대 통일추진 방안 또한 통일부가 이미 수행해 왔거나 수행 중인 사업들이 모양만 다르게 정리되어 있을 뿐이다(관련기사:
2년 동안 준비한 '통일 독트린', 매우 실망입니다, https://omn.kr/29tdl).
더욱 심각한 문제는 통일부가 '통일방안 발전안' 초안을 마련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국회 내 여야 간 초당적 논의를 통해 최종 확정"한다는 세부 계획을 수립했었다는 점이다. 관련하여 통일부가 국회에 '통일 독트린'과 관련한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초당적 논의'를 제안했는지, 국회 논의가 진행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윤석열 정부의 '통일 독트린'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25억 원의 세금이 투입된 국정과제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민망한 부실 과제이다. 통일부가 민·관 협업 플랫폼으로 구성한 '통일미래기획위원회'가 제대로 운영이 된 것인지 혹은 '통일미래기획위원회'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은 된 것인지 혹시 대통령실이 '통일미래기획위원회'를 배제하고 '통일 독트린'을 '짬짜미'로 만든 것은 아닌지, 이와 관련한 면밀한 감사가 필요하다.
셋째, '정부 관계자' 발 북한 정보 왜곡과 부실 검증
통일부는 2022년 7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소식을 전하는 사업', 즉 "북한의 언론, 출판, 방송 등의 단계적 개방을 통해 상호 이해와 공감대를 넓혀가며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북한 정보를 독점하다시피 한 정부로서는 전향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김영호 통일부 장관 이후 돌변해 통일부가 '북한실상 자료와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하는 '북한실상 알리기'라는 사업으로 바뀌었다. 북한 정보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다시 강화된 것이다.
관련하여 정부는 '정부 소식통', '관계자'란 이름으로 '필요할 때'마다 북한 정보를 언론에 전달해 왔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가 검증을 거부하는 일방적인 정보 제공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침소봉대(針小棒大)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점이다.
관련하여 지난 7월 10일 TV조선은 '정부당국 관계자'의 정보 제공을 근거로 북한당국이 "대북 전단 속 USB에 담긴 한국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중학생 서른여 명을 지난주 공개처형했다"는 소식을 '단독' 뉴스로 보도했다. 관련하여 통일부는 "보도와 관련해서 통일부 차원에서 확인해드릴 내용은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 중학생 30명 공개처형' 뉴스는 급속하게 퍼져나갔고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을 방문한 김건희 여사가 워싱턴의 민주주의진흥재단(NED) 회의실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최근 북한이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중학생 30여 명을 공개 처형했다는 보도는 북한의 잔혹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인용하는 소스가 되었다(관련 기사:
'북한 청소년 30명 공개 처형' 뉴스, 검증이 필요하다, https://omn.kr/29i1x).
지금까지도 이 뉴스의 사실관계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북한 정보에 밝은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개인 SNS를 통해 "북한 중학생 30명 처형" 뉴스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김건희 여사는 이 뉴스를 확인한 것인가? 아니면 활용한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여전히 통일부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가 북한 정보를 통제하는 것을 넘어, 북한 정보에 대한 독점을 이용해 국민 여론을 호도한 것이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관련하여 정부가 더는 '정부 당국자', '관계자'란 이름으로 검증할 수 없는 정보를 통해 언론과 국민 여론을 왜곡하는 일이 없도록 국정감사에서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이 외에도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9·19 남북군사합의를 '정지'한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가 이뤄졌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남북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북 전단지 살포에 대한 통일부의 대응은 적절했는지 감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북한 인권 개선을 강조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어떤 실효적인 성과를 얻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특히 중국 동북지역에서 탈북자의 강제송환 등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통일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다시 질문하건대, 통일부는 왜 존재하는가
최근 통일부는 '북한인권부', '북한이탈주민부'로 불릴 만큼 예산과 업무 면에서 북한이탈주민지원사업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정책 면에서 북한 인권에 몰두하고 있다.
다시 질문하게 된다. 통일부는 왜 존재하는가? 통일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통일부 장관은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 통일교육,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정부조직법 제31조). 과연 통일부는 남북대화와 교류, 협력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필자의 대답은 '아니요'다.
윤석열 정부, 특히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임명된 이후 통일부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남북대화와 교류, 협력을 잊어버린 통일부는 그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정하고 망각하고 있는 듯 보인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윤석열 정권의 비겁한 통일부 개조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란 점이다.
국회는 더 이상 윤석열 정부의 통일부 죽이기, 통일부 개조에 눈감지 말아야 한다. 국회는 이번 국정감사와 예결산 심의를 통해 통일부가 본래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입법부로서 행정부 견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회는 통일부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조직을 무너뜨리고 있는 김영호 장관이 그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오디세이>, <한반도 스케치北>,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 집필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