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할 때 언제든 병·의원에 가 치료를 받고 약을 먹을 수 있다'는 건 현대사회의 공통감각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이나 성별, 직업,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농촌 의료의 지금을 조명합니다. 더 많은 기사는 <월간 옥이네>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편집자말] |
충남 홍성군 홍동면, 홍동면행정복지센터와 농협, 하나로마트, 보건지소, 파출소 등 중심시설이 자리한 이곳에 알록달록 자그마한 의원이 하나 있다. 이름부터 이곳에 꼭 맞는 '우리동네의원'.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금창영)이 운영하는 의료시설이다.
전체 인구 약 3500명. 노인 인구가 전체의 약 41%(919세대)이고 이 중에서도 1인 가구가 절반 가까이 이르는 면 지역이지만 이곳 의원은 하루 평균 50명, 한 달에 약 1000명이 방문할 만큼 주민들에게 사랑받는다. 전국 최초 면 단위 의료사협으로, 670명의 조합원이 힘을 합쳐 운영한다는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우리동네의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앞선 기사 :
마을에 '우리 병원'이 있을 때 생기는 일 https://omn.kr/2ao3b ).
제약 속에서 피워낸 변화
주민들에게 호응을 받으며 운영 중인 홍성의료사협과 우리동네의원이지만 제도의 제약으로 인해 마음껏 활동이 어려운 한계점도 있다. 안상균 사무국장은 각종 규정에서 비롯된 활동의 제약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 충남 홍성 홍동면에는 별도 약국이 없어 의약분업 예외지역으로, 본래 우리나라에서 약은 약사에게 진료와 처방은 의사에게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예외지역에서는 의사가 조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이 경우 그 수익의 1.8%만을 의원에서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값으로 1000만 원의 수입이 있다고 한다면 18만 원만 실수익이 된다는 이야기죠. 조제에 들어가는 인력에 비할 때 너무 작은 규모입니다."
운영에 제약이 되는 규정은 또 하나 있다. 이곳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는 교통편이다. 면 지역에서도 깊숙한 곳에 자리한 마을에서는 의원까지 찾아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 자차가 있는 경우 어렵지 않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면 하루에 몇 차례 없는 버스를 기다려 오가야 하고 그마저도 노선이 효율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들을 위해 의원 전용 차량을 운행하고 싶어도 현행 의료법상 제약이 있다.
"차량운행을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 알선, 유인하는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서 조심스럽죠."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이들의 활동은 지역의료생태계에 조금씩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국에는 홍성의료사협 외에도 1994년 국내 처음 설립된 안성의료생협(안성의료사협) 등 30개의 의료사협이 설립·운영되고 있는데 올해는 의료사협이 설립된 지 30주년을 맞는 해로서 지난 25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의료사협 30주년 기념행사 및 심포지엄'이 개최되기도 했다. 그간 이들의 발자취를 통해 다양한 시범사업이 시행되기도 했다. 장애인 건강 주치의 사업과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이 그것.
장애인 건강 주치의 사업은 장애정도가 심한 장애인이 자신의 주치의를 직접 선택하고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이 양질의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하는 것으로, 2018년부터 시범사업으로 진행돼 2025년부터 본사업으로 전환할 계획을 하고 있다.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은 어르신들이 장기요양시설이 아닌 집에서 의료 혜택을 받으며 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2022년 시작되어 홍성의료사협에서도 3명의 대상자를 관리하고 있다.
"농촌에서는 가까운 의료시설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장기요양시설에 머물다 생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사실 대부분 집에서 생을 마감하기를 원하시거든요.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은 그것에서 시작된 정책이죠. 등록 환자들의 가정에 의료인이 방문해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의료체계,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안상균 사무국장이 이상적인 모습으로 꼽은 사례는 쿠바의 의료체계다. 쿠바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무상의료를 제공하며 특히 1차의료기관의 분포와 기능이 인상적인데, 반경 1km에 거주하는 지역주민 1000~1500명을 맡아 관리하는 1차의료기관이 1만 곳 넘게 분포돼 있다.
이곳에서는 의사 1명과 간호사 1명이 근무하며 질병 치료의 역할보다 병을 조기 발견하고 예방하는 역할을 도맡고 있다. 이후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상급 의료기관에 연결해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이런 형태는 1차의료기관보다 무조건 2차·3차 등 상급의료기관을 찾는 분위기가 팽배한 한국 의료 소비 행태를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야말로 '적정의료' 실현을 통해 특정의료기관으로 몰리는 불필요한 수요를 줄이고, 의료공백지역을 지원함으로써 선순환을 만드는 기초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차의료기관이 점점 줄어가는 추세인데, 사실 피라미드 형식처럼 1차의료기관이 더 많아지고 상급 의료기관 수가 줄어드는 형태가 돼야 하죠. 의료 형태도 주사 처방과 같은 즉각적인 치료보다는 상담을 통해 생활 습관을 개선하고 원인을 해결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더 맞다고 봐요. 그러려면 의료 행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어느 정도 바뀌어야겠죠."
최근 논의되고 있는 '한국형 주치의제'와 '농촌 마을주치의제' 도입은 이러한 흐름을 살릴 수 있는 정책이다. 지역 1차의료기관과 대형 거점병원이 협업 관계가 되고, 의사가 환자의 주치의가 돼 특정 질병 치료뿐만 아니라 특성에 따라 건강과 질병 관리, 재활, 진료 조정 등을 하는 것이 기본 뼈대. 환자는 건강 개선을 통해 의료비를 줄이고, 국가 차원에서는 건강보험 재정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농촌에 의료기관이 부족한 상황은 제도를 시행하는 데 아쉬운 점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 등 공공의료시설과의 협업이 필연적일 것으로 보인다.
지역 의료인 양성을 위한 제언
지역에 의료기관과 의료인이 부족한 현 상황은 어떻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전국에 의료사협과 이들의 교류가 늘어나는 것은 다행스러운 점이다.
홍성군 우리동네의원을 맡고 있는 이훈호 원장의 말은 의료인 양성을 위해서 제도와 더불어 건강한 마을공동체가 늘어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제가 처음 홍동면에 이주해온 건 이곳이 그만큼 매력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이죠. 이곳 주민들의 살아가는 방식과 이곳 마을공동체의 분위기 등이 제가 이곳의 일원이 되고 싶을 만큼 특별했어요.
전국적으로 의료사협이 많이 생겨난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다행스러운 점입니다. 의료사협이 존재하는 지역일수록 그곳이 매력적인 공간일 가능성이 높아지니 말입니다. 그러한 마을공동체가, 연대할 수 있는 이들이 앞으로도 더 늘어나길 바라요."
전국 의료사협, 더 알아보기 |
한국에는 현재 30개의 의료사협이 존재한다. 올해는 의료사협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특별한 해이기도 하다. 전국 의료사협은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연합회를 구성해 연대하고 있다.
의료사협은 ▲서울지부에 7곳 △서울(영등포) △살 림(은평) △함께걸음(노원) △마포 △성북 △건강한(성 동) △관악정다운 ▲충청지부에 3곳 △민들레 △홍성 △세종 ▲강원지부에 1곳 △강원 ▲경인지부에 11곳 △안성 △안산 △인천평화 △용인 △수원 △시흥희망 △행복한마을(안양) △느티나무(구리) △부천 △화성 △성남 ▲경상지부 4곳에 △대구 △위드(대구) △산청 △상주 ▲호남·제주지부에 4곳 △전주 △익산 △광주 △제주가 존재하며 이 중 가장 처음 시작된 곳은 1994년 설립한 안성의료사협, 가장 최근 설립된 곳은 2023 년 11월 시작된 상주의료사협이다.
상주의료사협은 경북에서는 첫 사례로, 지난 6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고 내년 2월경 1차의료기관을 개설할 예정이다. 상주의료사협은 400여 명의 조합원을 구성해 상주 시내에 공간을 마련, 의원 인테리어 작업 중이다. 이곳을 담당할 의료인은 과거 상 주에서도 2~3년간 의원을 운영한 경력이 있는 인물로 빠르면 올해 12월~내년 1월 초에는 개원할 예정이다.
"저희가 전국에서 서른 번째 한국의료사협연합회원 이 됐네요. 어려움 속에서도 의료사협이 성장하고, 최 근 어려운 의료 상황 속에서 힘을 합할 수 있으니 감사한 마음입니다. 국가로서도 의료 문제가 큰 해결과제 인데, 의료사협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의료 제도를 개선해나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바라죠." (김하동 이사장)
경남 산청 의료사협에서는 지난해 11월 11일 '농민의 날'에 화목한의원을 개설했다. 한센인 치료와 보호를 위해 재단법인 프란치스코회에서 1959년 설립한 복지 시설인 성심원 건물을 무상임대해 사용하는 것으로, 산청군이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해 리모델링을 완료했다. 김명철 원장이 진료를 보는 이곳은 하루 평균 50여 명이 내원하며 원활히 운영되고 있다. 산청의료사협은 홍성군과 함께 군 단위에 존재하는 유일한 의료사협이기도 하다.
"산청의료사협은 시작할 때부터 한센인과 지역 주민을 돕고자 했습니다. 성심원에 화목한의원을 개원한 것도, 이곳의 한센인들을 더 돌보기 위한 목적도 있죠. 성심원이 한센인을 위한 시설인 데다 외지에 위치해 있어서 이곳을 많은 분들이 이용해주실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많이 찾아주고 계세요(웃음).
진료시 간은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매주 화·목 오후에는 원장님께서 한센인 15명과 주민 10여 명을 대상으로 방문진료를 나가시죠. 화목한의원 외에도 3년 내에 내과와 치과 진료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공간은 이미 마련돼 있고, 담당해주실 분을 모실 차례입니다." (산청의료사협 황재홍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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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옥이네 통권 88호(2024년 10월호)
글 한수진 사진 김혜리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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