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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풍경이 달라졌다.

아침 운동을 나서는 시골길이 썰렁하다. 화사하게 피었던 벚나무 잎은 떨어지고 바람마저 불어온다. 공공근로를 하는 어르신들의 복장도 달라졌다. 두툼한 점퍼가 등장했고, 굽은 허리를 부여잡은 손에도 두툼한 장갑이 끼여있다. 야, 벌써 겨울이 오는가! 계절이 바뀌면서 만나는 것은 우선 코스모스다.

붉은 꽃을 이고 일렁이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친구는 코스코스가 싫다 했다. 한 해가 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싫어서란다. 가는 세월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계절이 바뀌는 골짜기 풍경은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길가에 옥수수를 팔던 가판대가 문을 닫았다. 휑한 가판대에 천막을 덮고 끈으로 단단히 묶은 모습이다. 혹시나 바람에 날아갈까 염려해서다. 얼마 후면 김장배추를 파는 가판대로 바뀔 것이다.

배추와 무가 등장하고 여름이 길러낸 붉은 호박과 고추가 등장한다. 겨울을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현수막도 펄럭인다. 절임배추를 주문받고 김장을 판매한다는 내용이다. 현수막 속 환하게 웃는 주인장 모습이 이채롭다.

 가을을 알려주는 코스모스 가을의 꽃,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다. 가을을 환하게 밝혀주는 코스모스를 친구는 싫다했다. 한해의 끝을 알려주는 것 같아서란다. 오는 세월을 거역할 수 없는 현실,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하면서 한해의 끝을 잘 마무리 하고 싶은 심정이다.
가을을 알려주는 코스모스 가을의 꽃,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다. 가을을 환하게 밝혀주는 코스모스를 친구는 싫다했다. 한해의 끝을 알려주는 것 같아서란다. 오는 세월을 거역할 수 없는 현실,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하면서 한해의 끝을 잘 마무리 하고 싶은 심정이다. ⓒ 박희종

길거리를 지키던 메타쉐콰이어도 겨울을 준비한다. 푸르던 잎은 어느새 주황색으로 물들었고, 길거리에 쏟아낸 잎새가 수북하다. 지나는 차량에 날리는 나뭇잎들이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늦가을 산등성이는 노랗게 물들었다. 노란 산국이 꽃을 이고 진한 향을 품어내고 있어서다. 산속 벌들을 다 모였고 나비가 어울러지는 진 풍경은 가을이 깊어가면서 만나는 골짜기의 아름다움이다.

가을비 오는 썰렁한 풍경

감성을 불러내는 가을비는 쓸쓸하다. 낙엽을 떨구고 옷깃마저 여미게 하는 썰렁한 가을비가 며칠 내렸다. 농부들은 거두어들여야 할 농작물들이 걱정이다. 서둘러 들깨밭으로 향하는 농부들의 발길이 바쁘다.

비탈밭을 가득 메운 들깨를 수확해야 하지만 쏟아지는 가을비가 야속하다. 넓은 밭에 베어 놓은 들깨가 비를 맞고 있는 풍경, 농부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언제 비가 그칠까를 기대해 보지만, 아직은 그칠 조짐이 없다. 괜히 먼 산만 바라보는 모습은 오래 전의 내 아버지다.

벼가 익어가는 들판엔 콤바인소리가 요란하다. 사람이 한 포기씩 베어내던 들판에 기계음이 정적을 깬다. 문명의 덕에 몇 날이 걸리던 가을걷이가 순식간에 훤한 들판으로 변해버리지만 가끔은 오래 전의 추억이 떠오른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벼를 베고, 논둑에 앉아 점심을 먹던 모습이다. 넓은 들녘의 이웃들을 불러 모아 함께하는 자리였다. 길가엔 트럭이 세워져 있고, 바쁘게 움직이던 거대한 컴바인도 가을비가 세우고 말았다. 가을비가 주는 불편함이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녘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녘은 바쁘기만 하다. 바쁜 중에 내린 가을비는 농부들의 바쁜 발목을 잡고 있다. 가을이 더 깊어져 가을걷이가 끝나면 텅빈 벌판으로 변하고, 어느덧 가을이 깊어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리라.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녘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녘은 바쁘기만 하다. 바쁜 중에 내린 가을비는 농부들의 바쁜 발목을 잡고 있다. 가을이 더 깊어져 가을걷이가 끝나면 텅빈 벌판으로 변하고, 어느덧 가을이 깊어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리라. ⓒ 바긔종

골짜기 비탈밭에는 무와 배추가 주를 이룬다. 무럭무럭 자라던 배추밭이 처절하게 변해버렸다. 고온다습했던 가을 날씨에 가을비의 만행이다.

곳곳에 피폐화된 배추밭을 보며 농부들의 시름을 알게 한다. 널따란 배추밭을 갈아엎어야 하고, 적지 않은 농사비용을 버려야 하는 아픔을 주는 가을비다.

배추 한 포기에 기천원을 넘는다는 가슴 아픈 소식도 있다. 농사는 하늘이 하는 일임을 또다시 알게 한다.

겨울을 준비하는 골짜기 풍경

골짜기의 겨울은 서둘러 온다. 서리가 내리고 훤한 들판이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길가 화원에 핀 노란 국화가 아름답다.

가을을 갖고 싶어 화분 두어 개를 차에 싣는다. 지나는 가을을 잠시라도 더 보고 싶어서다. 국화 화분 한두 개는 놓고 보아야 가을날의 제멋이 아니던가? 여기에 구절초가 피고 산국마저 거들면 가을의 맛을 한동안 맛볼 수 있다. 시골에서 만나는 호사스러운 가을맞이다.

가을이 오는 골짜기는 바빠진다. 대부분 어르신이 사는 동네, 차가운 겨울을 이겨내기엔 버거운 골짜기다. 추위를 대비해야 하고, 가을을 마무리해야 한다. 몇 해 전엔 장작 패는 소리가 가득했던 골짜기다.

어느새 그리운 그 모습은 사라지고 대부분 기름보일러가 돌아간다. 나무를 구입하기도 어렵지만 장작 패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다. 기름보일러의 유용함 속엔 어려움도 있다. 치솟는 난방유 가격 때문이다.

 골짜기 배추밭의 현실 고운 다습한 긴 여름은 많은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다. 골짜기에 가득한 배추밭의 모습은 농부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내린 긴 가을비가 설상가상으로 처절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 농부들의 시름이 커질 수 밖에 없는 골짜기의 풍경이다.
골짜기 배추밭의 현실 고운 다습한 긴 여름은 많은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다. 골짜기에 가득한 배추밭의 모습은 농부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내린 긴 가을비가 설상가상으로 처절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 농부들의 시름이 커질 수 밖에 없는 골짜기의 풍경이다. ⓒ 박희종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는 늘 그리운 장면이었다. 아침저녁으로 피어나는 연기, 이젠 볼 수도 없는 풍경으로 변함은 보일러 역할이다. 하지만 골짜기 어르신들에겐 겨울 난방이 부담스럽다.

몇 해 전보다 두 배이상 오른 난방유가격, 지나는 길마다 머무는 눈길은 주유소 난방유가격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가격, 순식간에 오른 가격은 떨어질 줄 모른다. 어쩐지 감당할 수 없음에 늘 걱정이다.

아침 운동길엔 만나는 공공근로 노인들의 모습은 늘 눈에 밟힌다. 굽은 허리를 부여잡고 쓰레기를 줍고 있다. 어렵게 끌려가는 리어카엔 종이 박스 몇 개뿐이다.

가까스로 걸을 수 있음에도 일거리를 찾아야 해서다. 운동삼아 하신다지만, 가슴마다 저린 사연과 저마다의 아픔이 있으리라. 새벽부터 나선 어르신들의 수고가 고맙고도 안타깝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도 언제나 죄송한 마음이다. 아직은 움직일 수 있는 세월, 여기에 운동을 할 수 있음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은 아침이다. 가을이 깊어지는 골짜기는 벌써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가을#가을비#겨울준비#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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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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