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베이비부머의 집수리>는 오래된 집을 수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한 기록이다. 노후를 위해 집을 수선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여러 생각과 시행착오들이, 베이비부머 등 고령자와 그 가족들에게 공감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기자말] |
최근 친구들과 이런저런 모임으로 바깥에 외출했다가도, 리모델링한 집을 생각하니 귀가하는 발걸음이 서둘러졌다. 이렇게 서둘러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게 언제였나 생각해봤다. 예전 아주 어렸을 적에 느낀 것 빼곤 정말 오랜만이다.
이 말에 사연 모르는 독자들은 왠 뚱딴지같은 소리야 할지 모른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3개월 동안 수리한 집이 전에 없이 정이 가기 때문이다.
집 수리 이전만 해도 우리집은 40년 이상 오래돼 불편하고 주방과 화장실은 창고나 다름 없었다(관련 기사:
안전 위한 결단, 46년 된 집 수리한다니 95세 아버지가 보인 반응 https://omn.kr/29vtf ).
지난 6월 집수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10월 말 공사를 마무리했다. 지금은 진작 수리를 할 걸 하고 뒤늦게 후회를 하기도 한다. 꼬박 5개월, 약 5천만 원이 들어간 나름 대공사였다. 해서 이런 배경과 사연을 지난 8월부터 연재기사로 써왔다.
내 인생을 바꾼 집수리
리모델링이라고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다. 눅눅한 방, 비좁은 주방과 거실, 창고 같은 화장실을 고쳤다. 그런데도 그럴듯한 새로운 집이 탄생한 것이다.
고령자에 맞춰 안전을 중시한 집이었기에, 방문 아래 있던 방문턱도 없애고 화장실에는 안전바를 새로 추가했다(새롭게 단장한 화장실에는 낙상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바가 설치됐는데, 이는 고령자 낙상사고를 예방하는 기본장치다).
집 내부도 예전 갈색톤에서 화이트, 하얀색으로 모두 바꾸었다. 안팎으로 새로 단장한 이 새 집 효과가 얼마 동안까지 갈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한동안 지속될 것 같은 느낌이다.
집을 수리하면서 안팎의 걱정이 많았다. 집을 나가 떨어져 사는 아이들은 리모델링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 표정을 지었다. 그간 연락이 끊겼던 친척들도 "힘든 일로 고생하십니다"라며 안부와 연락을 자주 해왔다. 하지만 내심 반갑고 고마웠다.
집수리는 1955년 생인 나에게 있어 사실 인생의 모멘텀, 즉 반전의 기회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 공사를 시작하면서 나와 아내, 95세 아버지 이렇게 가족들이 집을 떠나 한 달여를 셋방살이를 했는데, 실은 그때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폭염에 에어컨조차 없는 월세 빌라에서 셋이 복닥복닥 지내는 건 거의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버텨낸 것은 기적이었다(관련 기사:
95세 아버지와 셋방살이... 집수리가 이렇게 쉽지 않다 https://omn.kr/2a7np ).
아내는 공교롭게도 집수리 기간에 손목과 몸이 아파서 근처 병원을 자주 오가야 했다. 당시 나는 안타깝지만 공사 현장엔 더 이상 신경쓰지 말라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차도가 있어 지금은 건강을 회복해 안심이지만, 그때는 다소 심각해 온 가족이 '비상'이었다.
이제 새로운 집에서 보내는 일상이 즐겁고 집은 몸을 휴식하게 하고 다독일 뿐 아니라, 마음까지 풍요롭게 만드는 행복한 휴식공간이라는 시실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 식구들은 곧 닥칠 겨울에도 예전처럼 추위를 걱정할 것 같지 않다.
돌아보면 돈은 들었지만 좋은 일이 더 많았다. 바뀐 환경에서도 아무 사고 없이 경로당을 오가셨던 95세 아버지께 무엇보다도 감사하다. 아버지가 그나마 건강하시기에 집수리도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난 8월 말 낭보도 있었다. 한 달 평균 4번을 내원해 항암치료를 하는데 주치의가 어느 날 기쁜 소식을 알려준 것이다.
"이혁진 환자분, 환자분은 치료 성적이 좋아 이제 항암주사를 중지하고 예후를 당분간 지켜봐도 될 것 같습니다."
공사현장을 감독하면서, 그 와중에도 채혈과 주사, CT 등으로 병원 일정을 챙기고 항암을 하러 병원에 가는 일이 내게는 내심 늘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제 주사에서 해방된다니, 의사가 웃으며 예후를 지켜보자고 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집수리를 시작할 때 심란했던 마음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자연히 암치료에도 도움이 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현장에서 '안전 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것도 감사하다.
공사 중 인부들이 낙상하거나 부상당했다는 소식을 흔히 접하곤 하는데, 이번엔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 내가, 또 전문가 친구가 현장에 자주 와 잔소리한 탓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8월 초 '서프라이징' 한 소식도 들렸다. 집수리 때문에 경황이 없기도 했지만 글쓰기 동력이 너무 떨어져 고민했는데, 내가 오마이뉴스 상반기 '뉴스게릴라'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꿈인가 생시인지 내 살을 꼬집었는데, 악 소리가 날 만큼 아팠다. 그간 소진됐던 에너지가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용기를 내 오마이뉴스에 다시 글과 기사를 올리게 됐음은 물론이다.
노후에 살 집은 어때야 하는가... 집은 사람이 나고 죽는 곳
5개월 대공사를 마치고 나니, 이제는 '맥가이버'까진 아니어도 가벼운 집수리는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간 못 하나 제대로 박을 줄 몰랐던 내가, 이제는 아내 앞에서도 인테리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훈수마저 둘 수 있게 됐다.
향후 집에서 구석구석을 살피며 손 볼 곳은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처리하기로 다짐했다. 사는 집도 사람처럼, 평소에도 자주 손을 보고 고치고 꾸며야 보기 좋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수리는 '종합 예술'이다. 감각과 기술이 총동원돼 하나의 예술이 만들어지는 걸 현장에서 시종 지켜보고 느낀 결론이다. 집에 활력을 불어넣는 리모델링 업자들이 새삼 달리 보인다.
집수리는 처음에 업자 뜻대로 시작했지만 시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수정과 변경이 있었다. 이에 평소 놓치기 쉬운 문제들이 개선됐다. 여기엔 고교동창인 친구의 세심한 조언이 한몫 했다.
4개월 넘게 진행된 리모델링의 최종 마무리는 '도배와 장판'이었다.
천장과 벽, 마루 시공을 어떻게 했는지를 보면 업자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배가 들뜨기 때문이다. 도배업자가 추천하는 건축 리모델링 업체들의 능력과 평판도 참고할 만하다.
집을 수리하면서, 미국에서 생활하는 아들이 현장을 찾아왔던 것도 작은 추억거리다. 아이는 집수리를 반겨하면서 새 집에 필요한 인테리어를 추천하는 한편, 주방에 어울리는 편리한 '쓰레기통'을 우리 대신 구입해 보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동네 집수리 공사업체 김 사장의 수고를 빼놓을 수 없다. 앞으로도 자주 봐야 할 사람이다. 공사 중이라 그렇긴 했지만, 그에게 본의 아니게 이래라저래라 많은 잔소리를 해야 했기에 미안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속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도 나도 부모님 고향이 같은 이북이었다. 김 사장이 홀로 사는 어머니와 정기적으로 함께 식사를 한다는 말에 나는 그의 진정성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이번 리모델링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건, 노후에 살 만한 행복한 집은 어떤 곳이며 어떤 게 특히 편하고 안전한 집인가에 대해 내 나름의 안목이 생겼다는 점이다.
집이란 무엇인가. 나는 사람이 태어나는 곳, 또 생을 마감하는 곳이라 정의한다. 우리 가족들이 마지막을 함께 할 곳이 이 집이다. 46년 된 집을 고치면서 '안식처'는 어떤 곳인지, 어때야 하는지 그 의미도 여러 번 마음으로 곱씹고 생각했다.
최근 고령사회를 맞아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는 '재가 임종' 제도 논의가 시작됐다는데, 나는 이제서야 집이 본연의 역할을 찾아가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연재를 통해 백세 노후에 대비한 집수리를 하면서 가족 구성들원 간의 소통과 결속이 보다 강화된 것 또한 큰 수확이다. 이제는 다 밖에서 가정을 꾸리며 사는 아이들이지만, 앞으로 애들도 이 새 집을 자주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
노후에 사는 집은, 결코 돈으로 그냥 사기만 하는 집과는 개념이 다르다. 내가 그간 써내려온
연재 기사(링크)가 최근 은퇴를 했거나 그를 앞두고 있는 베이비부머의 노후설계에 다소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