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에 30분 이상 일찍 도착했다고 보고서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최재원 용산구 보건소장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최 소장은 마지막까지 유가족들에게 별도의 사과를 하지 않은 채 혐의를 부인했다. 최 소장 측 변호인은 "본건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건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최 소장은 지난해 3월 불구속 기소된 뒤 1년 8개월간 재판을 받아왔다. 최 소장에 대한 1심 선고는 오는 1월 8일로 예정됐다.
검찰은 13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1단독 마은혁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최 소장의 공전자기록위작·행사 사건 결심 공판에서 이같이 선고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최 소장은 이태원을 관할하는 용산구의 보건소장으로서 재난 현장에서 현장응급의료소의 장이 되어 응급의료자원의 관리 등 현장응급의료소의 운영 전반을 지휘 감독할 책임을 부담함에도, 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50분경 사고 발생 사실을 알게 된 후 30분 이상이 지나서야 집에서 출발했고, 1시간 이상이 경과한 2022년 10월 30일 오전 0시 6분경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라며 "최 소장은 자신의 현장 도착 시간이 늦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부하 직원들로 하여금 보건소에서 작성하는 전자 공문서에 자신의 현장 도착 시간을 2022년 10월 29일 오후 11시 30분으로 기재하도록 했다"고 했다.
최 소장의 현장 도착 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참사 당시 재난응급의료 '지휘관'이었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는 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16분에 발생했다. 이태원 참사 사망자 중에는 당일 오후 11시 1분에 전화로 119 신고를 한 경우도 있었다. 적어도 그날 오후 11시 1분까지는 살릴 수 있는 희생자가 있었다는 얘기다. 조기에 응급의료 조치를 했다면 사망자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최 소장은 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55분경 모바일 상황실 카톡 메시지를 통해 참사를 최초 인지한 후, 오후 11시 25분에야 자택을 나섰다. 그 뒤 오후 11시 46분에 녹사평역에 하차, 오후 11시 54분에 용산구청 당직실에 도착해 민방위복을 입은 뒤 신속대응반 부하 직원들과 구급차를 타고 2022년 10월 30일 오전 0시 6분에야 참사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후 용산구 보건소가 작성한 5건의 보고서에는 최 소장의 현장 도착 시각이 2022년 10월 29일 오후 11시 30분으로 허위 기재됐다. 최 소장의 한 부하 직원은 재판에 나와 최 소장이 자신의 현장 도착 시간을 종이에 써서 보여줬었다고 진술했다.
검찰, 징역 2년 구형… "최 소장, 현장 도착 늦은 것 숨기려 해"
최 소장은 마지막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그간 최 소장은 자신의 현장 도착 시각이 2022년 10월 29일 오후 11시 30분이 아니라 이보다 36분 늦은 2022년 10월 30일 오전 0시 6분이라는 사실 자체는 인정해 왔다. 하지만 부하 직원에게 자신의 도착 시각을 앞당긴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고, 이후 보고서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최 소장 측 변호인은 "무엇보다 피고인(최 소장)은 당시 2022년 10월 29일 오후 11시 30분경 보건소장 최재원 개별적으로 현장 도착'이라는 문구가 허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라며 "즉 피고인(최 소장)은 위 문구가 당시 사상자 수습이 이뤄지던 '이태원 일대'를 '현장'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태원 일대에 있었으므로 '현장 도착'이 틀린 건 아니라고 여겼다는 논리다.
앞서 참사 직후 최 소장은 오후 11시 30분에 현장에 도착했다는 보고서 문건이 거짓인 것으로 드러나자, 경찰에 의해 접근이 제지돼 현장에 도착하고도 용산구청으로 되돌아갔다는 식의 해명을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거짓이었던 것으로 정리됐다. 검찰은 "피고인은 자신이 오후 11시 30분에 사고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오후 11시 30분에 사고 현장에 도착했으나 경찰 통제에 의해 현장에서 근무하지 못했고 용산구청으로 돌아와 보건소 앰뷸런스에 합류해 현장에 복귀했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에 최 소장 측 변호인은 "피고인(최 소장)이 (2022년 10월 29일 오후 11시 30분에) 사고 현장에 도착했으나 들어가지 못하고 용산구청으로 되돌아왔다는 부분은 언론 보도까지 맞물리면서 와전된 측면이 있다"면서 "피고인은 오후 11시 54분경 용산구청 당직실에 도착해 민방위복을 갖춰 입은 뒤, 오후 11시 57분경 용산구청 외부로 나가 바로 도보로 사고 장소로 출발했다. 한 50~200미터 정도 가다가, 용산구청 공무원들을 만나 '사고 현장에 사람들이 너무 많고 경찰들이 통제해서 구급차에 탑승하지 않고 걸어서는 사고 현장에 진입할 수 없다'고 하여 다시 용산구청 주차장으로 가서 마침 출동 준비를 마친 신속대응반원들과 함께 구급차를 타고 사고 현장에 가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오후 11시 30분에 현장에 갔다가 경찰에 의해 제지됐다는 기존 해명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인정한 것이다.
"응급의료 컨트롤타워가 '참사 책임' 없다니"
최 소장은 이날 최후 변론에서 "공무원으로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매우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다"라는 짧은 한마디만 남긴 채 법정을 떠났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최 소장 측 변호인은 "본건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건이 아니다"라고까지 말했다.
유가족들이 참사 직후 응급의료 처치가 제대로 됐다면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다며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난응급의료 책임자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 TF의 강솔지 변호사는 이날 재판 직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참사 책임과 무관한 사건이 전혀 아님에도 마지막까지 최 소장 측이 '참사 책임자가 아니다', '참사 책임을 묻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한 것은 매우 문제가 있다"라며 "재판부가 마지막 발언 기회를 줬음에도 최 소장은 정작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그 어떤 유감이나 사죄 표현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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