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나에게 정말로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그동안 방송과 신문, 인터넷으로만 만났던 민주당 국민 경선을 직접 잠실 체육관에 가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전에 학생들을 데리고 국악원을 갔기 때문에 오후에 그런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전철을 타고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에는 선거인단의 투표가 끝나고 개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만 봤던 두 후보를 멀리에서나마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거의 두 달 동안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현장을 마지막 날에 직접 와서 보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 투표 상황과 결과를 발표한 다음에 이어서 서울 경선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예상대로 노무현 후보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결정되었습니다. '노사모'를 비롯하여 참석한 선거인단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도 손뼉을 치며 기뻐했습니다.
두 후보의 감사의 연설을 들으면서 문득 일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만약에 어머니가 건강한 몸으로 살아 계시다면 틀림없이 이 자리에 어머니를 모시고 왔을 것입니다. 정치인이 연설하는 자리라고 말씀드리면 어머니는 즐거운 마음으로 큰아들을 따라나섰을 것입니다.
학교 근처에는 한번도 가보지 못하고 야학 한 달이 배움의 전부였던 어머니는 유난히 텔레비전 보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도 정치인들이 나와서 연설하는 것을 즐겨보셨습니다. 아니 큰아들이 관심을 갖고 보기 때문에 덩달아 보셨는지도 모릅니다.
1987년으로 기억됩니다. 12월의 대선을 앞두고 여러 후보들이 나와서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쳤습니다. 그들만 나온 것이 아니라 그 후보들을 따르는 유명인들이 나와 찬조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바야흐로 정치의 꽃이 활짝 핀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여러 후보들 가운데 모습과 억양이 특이한 백기완 후보를 좋아하셨습니다. 두루마기 차림에다 자연스런 머리 모양, 그리고 연설할 때의 표정이 다른 후보들과는 판이했습니다. 그 후보가 어머니 가슴에 깊게 새겨졌던 것 같습니다.
그 때의 어머니는 61세, 난 29세였습니다. 솜을 틀며 살림을 해야 하는 바쁜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난 그 후보의 옥외 연설 장소와 시간을 알아내고 어머니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럼 한번 가서 얼굴도 보고 말도 직접 들어봐야겠구나"하고 좋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집이 있는 천호동에서 시내버스와 전철을 이용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백기완 후보 연설을 듣기 위해 대학로에 도착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사람들 물결 속에 어머니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간신히 자리를 잡고 후보의 연설을 들었습니다. 망대 같이 높다랗게 만든 것 위에서 백기완 후보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정열적인 연설을 하였습니다.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그 후보를 바라봤습니다. 무척 신기한 모양입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고 듣고 했는데 직접 현장에 와서 보고 듣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옆에서 그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큰아들의 마음은 아주 흐뭇했습니다. 어머니는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손뼉도 여러 번 세게 쳤습니다.
그 이후에 어머니는 몇 번 나와 같이 정치 연설 현장을 찾았습니다. 물론 내가 어머니께 정보를 알려드린 결과입니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무슨 잔칫집에 가는 것처럼 신바람이 났습니다. 옷도 깨끗하게 입고 큰아들을 따라 나섰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 국회의원 합동 유세가 있을 때에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가서 후보들의 연설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한번은 집 가까이에 있는 예비군 교육장에서 어느 당의 지구당 개편대회가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연세가 일흔이 넘으셨을 때의 일입니다. 벽에 붙여있는 안내문을 보고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 또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옷을 차려 입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가서 어머니는 텔레비전에서만 봤던 여러 유명한 정치인들의 얼굴을 보고 연설을 듣기도 했습니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어머니는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리면서 신기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젊은 나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니 신기한 느낌이 들었는데 늙으신 어머니야 오죽했겠습니까. 두 눈이 뚫어질세라 앞 단상을 쳐다보며 경청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습니다.
나오면서 난 한 가지 꾀를 냈습니다. 나가는 문 앞에서 케이크를 하나씩 나누어주는데 우리는 한 가족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만 가져와야 하는데 마치 따로따로 온 것처럼 하여 둘을 받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어머니는 나와서 큰아들을 보고 눈을 흘겼지만 악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집으로 오면서 어머니랑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정치인의 얼굴과 말이 아니라 종교인입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여의도에서 미사를 집전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다니는 성당에서도 버스가 여러 대 갔습니다. 물론 독실한 어머니도 같이 가셨습니다.
미사가 끝난 다음에 교황이 투명한 방탄유리 차를 타고 한 바퀴를 돌 때입니다. 우리들이 서있는 곳에 왔을 때에 난 어머니 손을 꽉 잡고 자리에서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차를 따라갔습니다. 어디서 힘이 솟아났는지 어머니도 상기된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 뛰었습니다. 어머니와 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수많은 신자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교황의 온화한 얼굴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뛰었는지 모릅니다. 왜 그렇게 어머니 손을 꽉 잡고 교황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려고 대열에서 뛰쳐나와 미친 듯이 따라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하여 어머니와 큰아들은 교황의 얼굴을 누구보다도 많이 아주 가까이에서 뵙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어제 잠실 체육관에서 경선이 끝난 다음에 감사의 인사를 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정동영 후보와 악수를 하였습니다. 밤 10시 가까이 되어 대의원대회가 다 끝난 다음에는 퇴장하는 노무현 후보와도 단상 아래에서 기적적으로(?) 악수를 하였습니다. 어머니랑 같이 왔더라면 이번에도 틀림없이 어머니 손을 굳게 잡고 그들 뒤를 따라가며 어머니께 그들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게 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아서 내가 정치 연설 듣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 때문에 배움이 전혀 없는 어머니가 정치 연설에 관심을 갖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생전에 어머니랑 같이 다녔던 정치인들의 연설 현장이 어제 많이 생각났습니다. 이제는 내 마음 속에서나 남아있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같이 정치인들의 연설을 들으러 다녔던 그 시절이 몹시 그리워집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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