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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에 걸쳐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에서 진중권과 유시민의 글을 읽었습니다. 두 명 모두 요즈음 민주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당론의 대두와 노무현 후보의 사퇴론에 대해 강렬하게 비판하였습니다.
많은 국민들의 열기 속에서 정정당당하게 경선을 통해 뽑힌 후보를 다같이 단합하여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뒤흔들어서 떨어뜨리려는 오늘날의 민주당의 모습은 올바른 정당의 태도가 아니라고 세차게 질타했습니다.
그 기사를 관심 있게 읽으면서 노무현 지지자의 한 사람인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노풍을 그렇게 좋아하고 기뻐했으면서도 요즈음 노풍이 점차 사라지자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아니, 무관심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나 자신이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늘 윗옷에 갖고 다니는 수첩 앞면에는 1번부터 16번까지 숫자와 도시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도시 이름 옆에 노무현과 이인제의 이름이 괄호와 함께 적혀있습니다. 바로 지난 3월과 4월에 있었던 민주당 대선 후보 국민 경선의 득표수를 적기 위해 미리 만들어놓았던 표입니다.
표를 다시 보니 1번부터 13번까지는 둘의 해당 시도 득표수와 누적득표수가 적혀있는데, 14번부터는 빈칸으로 되어있습니다. 이인제 후보의 중도 사퇴로 말미암아 사실상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어 그 부분을 적지 않은 것입니다.
두 달 동안 나도 다른 노무현 지지자들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선을 지켜보며 그의 승리를 기뻐했습니다. 그동안 매일같이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글을 읽었고, 그것으로 부족하여 각종 신문과 방송, 시사 주간지를 인터넷으로 열람했습니다. 그 때문에 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가 일쑤였지만 조금도 피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은 나에게 생의 활력소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민주당에서 만년 2등인 노무현이 강력한 후보인 이인제를 이길 줄이야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런 믿을 수 없는 일이 두 달 동안에 일어나 우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갔습니다. 정말이지 신바람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비록 직접 나서서 선거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두 달 동안은 나도 노무현 후보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의 기사를 하나하나 읽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동료와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자연스럽게 그의 이름을 많이 거론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40대인 우리들의 정치적 견해는 비슷했습니다. 그 정도로 노풍의 강도는 엄청났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서울 경선 날인 4월 27일, 난 그 날을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서울에 가서 경선 현장을 지켜보고, 최고의원 선거까지 보고, 나중엔 퇴장하는 노무현 후보와 악수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기쁨은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밤 10시 넘어 집으로 오면서도 그 벅찬 감격과 흥분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7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잠실 체육관에 앉아서 노무현과 정동영 후보, 그리고 20여 명의 최고의원 후보들의 연설과 당선 소감을 열심히 들은 그 날은 나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게 해 준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그런 나의 모습이 그 이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물론 그 원인은 노무현 후보에게도 많이 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듯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이후 그의 불안정한 행보는 그동안 노풍을 일으키며 적극적으로 지지를 보냈던 많은 국민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방문하여 부산시장 후보를 부탁한 일이나 당과 조율되지 않은 발언을 여러 번 하여 신뢰감을 상실한다든가 하는 등 적지 않은 일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일개 민주당의 지구당 위원장일 때의 자리와 당의 대선 후보의 자리는 하늘과 땅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문제들이 툭 하면 삐죽 튀어나와 그의 지지자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우리나라의 대형 언론과 방송이 편파적으로 노무현 후보를 깎아 내리기 위해 악의적으로 보도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후 치러진 6월의 지방선거는 그의 위치를 땅바닥에 곤두박질하게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그동안 물밑에서만 오고가던 신당 창당론이 고개를 들었고, 국민들이 참여하여 떳떳하게 뽑힌 정통 후보를 사퇴시켜 새로운 후보를 찾자는 견해들이 민주당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무관심은 5월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뻔질나게 봤던 그의 기사들을 거의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의 홈페이지 접속이 급속도로 줄어들었습니다. 가끔 그의 관한 글도 쓰면서 가까운 동료와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대신 정치에 관한 냉소 및 무관심과 대형 언론과 방송의 보도가 여과 없이 그 빈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힘이 없으니까 어쩔 수가 없는 거야. 후보 자리를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너무 부족해.'
'경남과 부산과 울산 등 3개 시도에서 한 개도 건지지 못했으니 약속대로 재신임을 당원들에게 묻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수밖에 없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신당이 창당되어 다시 대선 후보를 뽑는다면 이번엔 정몽준이나 이인제에 밀려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걸.'
'김대중의 공과를 모두 이어받아 공은 더욱 살려나가고 과는 과감하게 없애도록 한다고 했는데, 요즈음은 아예 끊어버리려고 하니 보기가 좋지 않군.'
한때는 그 누구보다도 열렬한 노무현의 지지자였던 난 어느새 이렇게 많이 변했습니다. 민주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힘이 전혀 없는 그로선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일이 아니냐고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나에게 그는 이젠 불쌍한 정치인으로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어려운 대선 후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약한 정치인으로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진중권과 유시민의 글은 그런 태도를 보인 나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같은 당이 아니면서도 정도를 벗어난 민주당의 행보를 비판하고, 시사평론가의 자리를 박차고 예전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시절로 되돌아가 원칙이 살아 움직이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글 하나 하나가 나의 폐부에 와 닿았습니다.
왜 나는 요즈음 돌아가는 민주당의 행태에 대해 그런 비판의 눈을 갖지 못했을까요? 지나친 패배주의와 대세론에 짓눌려 국민 경선의 참뜻을 내팽개치는 견해에 동조하는 태도를 취했을까요? 노 후보의 원칙을 준수하는 정신과 서민을 사랑하는 마음에 반해 좋아했던 내가 어떻게 원칙을 깨뜨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별로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을까요?
난 깨달았습니다. 노풍이 잠잠해진 것은 노 후보 자신에게도 큰 문제가 있지만 나처럼 열렬한 지지자였다가 나중에 무관심으로 태도를 바꾼 사람들에게도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당선을 위해 노 후보를 다른 후보로 바꾸어도 된다는 언론과 방송 보도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진중권과 유시민은 '반칙'이란 낱말을 기사에서 썼습니다. 국민들이 참여하여 축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 국민 경선이 물거품이 된다면 이는 엄연히 '반칙'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 경선을 통해 선출된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누가 보더라도 정통성이 있는 명실상부한 후보이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정당이라면 그 후보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단결하여 대선에서 승리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주당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경선에서 떨어진 후보들이 여러 명 딴 소리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고위원 선출 때에 이구동성으로 대선 후보로 확정된 노무현을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한 표를 호소했던 일부 최고위원들도 신당 창당이니, 노 후보 불가론이니 하는 말을 마구 해댔습니다. 투표 현장에 가서 직접 그들의 연설을 들었던 나에게 그들의 이런 이중적인 언행은 불쾌하기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난 이런 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단지 안타깝게만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노무현 후보가 남보란 듯이 강한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아 실망만 하였을 뿐입니다. 원칙이 지켜지는 정치, 반칙 혹은 변칙이 사라지는 정치를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있었음에도 어느새 그 문제에 대해 무감각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적인 태도를 난 몇 달간 지녀왔습니다. 난 참된 노무현 후보의 지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뜰 때에 동참하여 그 분위기에 취했다가, 그가 질 때에 물러나서 모르는 척 했습니다. 그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에 난 그의 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난 진중권과 유시민의 글을 읽으면서 왜 내가 노무현을 좋아하게 되었나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그는 늘 정의의 편에 서서 정치적 명분을 생명같이 여기며 외롭게 살아왔습니다. 그는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언제나 진솔한 면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 땅의 고질적인 지역감정의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며,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적임자입니다. 그는 남북 문제에 대해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장점을 난 몇 달 간 잊어버렸습니다. 혹은 억지로라도 잊으려고 애썼는지도 모릅니다. 200년 4월 총선 때에 부산에서 그가 떨어진 뒤에 전국의 뜻 있는 국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애석해하고 그로 인해 <노사모>가 결성되었다는 것을 잠시 망각했었습니다.
난 다시 관심을 갖기로 했습니다. 아주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몇 달 전 국민 경선 때에 보였던 열정을 다시 보이기로 했습니다. 지금 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에, 정신적으로 신당이니 후보 사퇴니 하는 발언들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고 있을 이 때에 조그마한 힘이라도 돼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 관한 기사도 많이 보고 비판도 해보고 글도 써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나도 다른 노무현 후보의 지지자들처럼 노풍이 다시 불기를 바랍니다. 세차게 불어서 어둡고 추악한 정치 풍토에 새 바람을 일으키기를 바랍0니다. 그러기 위해선 뜻 있는 국민들이 많이 나서야 합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땅의 정치가 굴러가는 모습이 보기 싫어 무관심과 냉소로 일관한다면 우리의 정치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이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이번에 내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얻은 귀중한 교훈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정치인 노무현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큰 축복입니다. 양지만을 좇아 보신에 급급한 이 땅의 정치 풍토에 그는 바른 길을 가기 위해 그늘진 가시밭길을 택했습니다. 낙선 후에 더 인기가 높아진 전무후무한 정치인 노무현이 그만의 독특한 색깔을 보이면서 의연하게 정정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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