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3색식의 개헌론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이인제 민주당 의원이 '연내개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의원은 5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과 대통령 임기말 레임덕 현상을 막기 위해 분권형 대통령제를 뼈대로 한 연내 개헌론"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무현 후보는 "연내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반대의 뜻을 명확히 했고, 민주당 내에서도 이 의원의 개헌론 주장을 정계개편 등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정치적 포석으로 보는 냉랭한 시각이 많아 현실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러나 이 의원의 개헌론 주장은, 한나라-민주당의 양당 구도의 틀에서 벗어난 제3후보군들을 향한 또 다른 정치적 메시지로 작용할 공산이 있어 개헌론의 현실성 여부를 떠나 파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 의원은 기자회견 전 김종필 총재, 박근혜 대표 등과 만나 개헌론을 계기로 정국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 '4자연대' 등을 위한 행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인제 의원은 5일 오전 10시 의원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통해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를 뼈대로 한 개헌론을 본격 제기했다. 이 의원이 제기한 연내개헌론은 노무현 후보와 한화갑 대표 등 당의 주류가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한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당 내분에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 의원은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한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 "외교·안보·국방·통일 등 외정에 관한 권한은 대통령에 일임하고 내정에 관한 행정권은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획득한 정당 등에 부여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개헌의 구체적인 추진을 위해 "'헌법개정추진기구'를 국회에 조속히 설치하고, 정부도 적극적인 자세로 협력해줄 것"을 촉구했다. 더불어 "선거를 4년에 단 한 번 치를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해야 하며 대통령의 임기도 4년 중임제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 등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집권 후 개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피력했다. 이 의원은 "전직 대통령들도 개헌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면서 "21세기 첫 대선을 새 틀에 따라 실시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개헌의 현실성에 대해서도 이 의원은 "한국축구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한 것을 누가 예상했는가"라고 되물으며 "87년 6월 29일에도 개헌을 추진해 대선을 훌륭히 마무리한 경험이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한 이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 이전에 김종필 자민련 총재,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 및 당 안팎의 인사들과 만나 개헌론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을 얻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김종필 총재와 박근혜 대표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면서 "김 총재는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반응했으나, 박근혜 대표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의원은 또 개헌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바 있는 정몽준 의원과도 만날 의향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만나야지"라고 답했다.
한편 이 의원은 '노무현 후보와 논의할 생각이 없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개헌은 후보가 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으며,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탈당설에 대해서도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다음은 이인제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 개헌 문제를 어떻게 구체화할 생각인가.
"논의를 구체화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고 청문회를 거쳐 구체적인 특별위원회 성격의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그것은 여야간 대화를 통해 풀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지금 꼭 개헌을 해야 할 정당성이 있는가.
"현행 헌법은 소기의 성과를 다 이뤄냈다. 15년 전 직접선거를 탄생시켰으며 장기집권의 폐단을 원천적으로 막아내는 등 잘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정쟁과 반목으로 인해 대통령 임기 말 부패와 리더십 붕괴가 나타나고 있다. 노태우, 김영삼 시대의 실패가 결국은 IMF가 국민의 끝없는 고통을 주지 않았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개헌을) 공론화하겠다고 얘기하지만 그건 아니다.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개헌을) 하는 게 좋겠다는 확고한 생각이다. 대통령이 되면 보통 개헌을 막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좌진들이 막고 나서기 때문이다. 정말 개헌할 의지가 있다면 올해 안에 틀을 만들고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87년에도 이맘 때 하지 않았나."
- 개헌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다른 의원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우리 당에서 정개특위를 통해 얘기하고 있다. 국회의원 2/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실제로는 의원 모두의 공감대가 필요하며, 국민투표 통해지지 얻어야 가능하다. 즉 국민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기자회견문의 제목도 '국민들께'라고 정리하고 있지 않은가. 미력이지만 많은 국회의원들과 접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집권 후에 개헌해도 되지 않는가.
"전직 대통령들도 개헌을 약속하지 않았나. 하지만 아무도 지키지 않았다. 과연 대통령이 집권하면 권력 분점시키는 개헌 추진에 나서겠는가. 그래서 믿을 수 없다. 우리 국민들도 이같은 본질적 문제에 대한 의견을 모아 주실 것이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 민주당과 결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민주당은 국민의 정당이다. 나는 창당 주역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4·13 총선 당시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많은 당선자를 내기도 했다. 당과 결별한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새로운 권력구조를 만드는 일, 나라, 국민을 위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능하면 새로운 대통령은 새로운 틀을 통해 탄생해 희망의 꽃을 피워야 한다는 의미다."
- 노무현 후보를 만나서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지 않나.
"대통령 후보는 후보대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열심히 하면 된다. 개헌은 후보가 하는 것이 아니라 2/3 이상의 국회 동의와 국민들이 하는 것이다."
- 개헌의 실현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 축구가 처음에 16강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가. 하지만 4강 진출하지 않았나. 불가능이란 없다. 15년 전에도 하지 않았나. 제왕적 권력구조 개편해 권력을 분점하고 부패의 근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국민통합으로 가는 헌정의 틀을 만들어 내는 것은 국가적 과제다. 시간상에도 아무 무리가 없다."
- 한화갑 대표가 개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좀 전에 얘기한 그대로다. (개헌 문제는) 이 시대의 가장 시급한 과제다."
- 한나라당 의원들의 동의도 필요하지 않나.
"이회창 후보도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지 않나. 다만 집권 후 한나라당을 위해서 새 틀을 만들고 집권하는 것이 그들을 위해 이로운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되면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 이미 대선이라는 경기는 시작됐다. 그런데 룰을 바꾸자는 얘기인가.
"새로운 틀이지 룰이 아니다."
- 어떤 의원들을 주로 만날 생각인가.
"개헌을 하려면 국회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사실상 대부분이 공감대를 가져야 한다. 정치가 잘못 됐을 경우 그 피해는 모든 국민이 입게 되는 것이다. 이 틀을 바꾸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여러분들(기자)이 의견 모아주시면 감사하겠다."
- 박상천·정균환 최고위원들과 생각이 비슷한 것 같다.
"박 최고위원은 정개특위를 통해 당내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고, 정균환 최고위원은 평소 지론이 분권형 대통령제 실시인 것으로 안다. 대립과 갈등 요인을 원천적으로 끊고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 아직 두 분과 만나 깊이 있게 상의하지는 못했다."
- 정몽준 의원은 개헌에 부정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만날 의향이 있는가.
"만나야지."
- 김종필 총재나 박근혜 대표와는 생각이 어떠한가.
"김종필 총재는 순수 내각제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제안한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반응하셨다. 박근혜 의원은 사전에 깊이 있게 연구하지 않았지만 좋게 생각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