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기자회견은 007 작전을 연상케 했다. 적지 않은 대선 캠프 사람들이 기자회견이 시작될 때에서야 그 내용을 알았다. 기자회견 직후 일부 최고위원과 의원들은 절차와 내용에 문제를 삼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탈DJ'에 대한 결심이 노 후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쉽지 않으며, 노 후보의 당내 입지가 생각 외로 좁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 후보는 5일 오전 10시50분께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40여 분 동안 전날 기자회견에 대한 파장과 나름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노 후보는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개헌론에 대해 "다양한 의미의 개헌론이 있는 가운데 미뤄 짐작해 호불호를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이인제 의원이 주장한) 연내개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사실상 반대의 뜻을 명확히 했다.
노 후보는 '어제(4일) 기자회견 내용과 관련해 청와대와 사전조율이나 교감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기자회견 1시간 전에 청와대에 기자회견문을 전달했을 뿐 아무런 사전 사후 접촉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한 '기자회견 내용이 청와대에 요구한 것이냐, 건의한 것이냐'는 물음에 "대국민 제안"이라고 밝혀, 후보로서의 독자적인 행보였음을 강조했다.
'DJ의 그림자를 걷어내려는 노력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노 후보는 "그런 식으로 한다고 DJ의 그림자가 걷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DJ와 노무현을 하나로 묶으려는 사람들이 많아 부담인데, (DJ와) 묶여진 끈을 끊고 싶은 게 사실"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노 후보는 '개혁결집이냐, 외연확대냐'는 질문에 "민주당이 빨리 변화하게 하려면 당내 갈등이 커져 당이 쪼개지고 분열될 가능성이 높고, 당의 단결을 강화하려고 하면 변화속도가 느려지는 게 딜레마"라며 "아직까지는 어느 쪽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고, 두 마리의 토끼를 함께 좇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노 후보는 또한 "서해교전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한나라당의 태도에 걱정을 금치 못하겠다"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끝까지 문제제기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 노무현, iTV의 '봉두완의 진단 2002' 출연 | | | | 5일 오후 8시30분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iTV(경인방송) '봉두완의 진단 2002'에 출연해 중립내각 구성, DJ와의 차별화, 서해교전 사태에 대한 여·야 공방 등 최근 핫이슈로 떠오른 정치 쟁점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제휴사인 iTV의 협조를 받아 노 후보의 주요 발언 내용에 대한 동영상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정쟁 시비를 줄이기 위해 '중립내각' 건의했다
월드컵 후에도 정치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정쟁을 하고 있다. 정치하는 사람이 정쟁을 그만하고 한국의 업그레이드를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비리게이트 등 때문에 한나라당이 공정선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시비를 걸고 있다. 국회가 싸움판이 되고 있는데, 국회는 앞으로 한국이 잘 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수사는 검찰에 맡기자는 차원에서 한나라당이 추천을 받아 법무부장관을 임명하자는 건의를 한 것이다.
재보선 결과가 좋아도 도전자 있다면 받아주겠다
8·8 재보선은 몇 사람이 이기고 지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재보선 결과에 책임을 질 것이다. 결과가 좋아도 (후보 재경선) 도전자가 있다면 받아주겠다. 이미 약속한 대로 도전자를 기다리고 있다. (만약 도전자가) 없다면 가는 것이다. 'DJ와의 차별화' 문제를 제기하는데 차별화라는 용어를 잘 알아야 한다. 내가 'DJ와 차별화 않겠다는 것은 97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가 YS에게 했듯이 모욕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서해교전과 햇볕정책과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서해교전을 정쟁의 대상으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발의 의도가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도발의 의도에 따라 우리의 대응이 달라져야 한다. 저도 (대통령 후보로서 서해교전 사태에 대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사태 파악을 정확히 한 뒤에 하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서해도발 사태하고 햇볕정책하고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오히려 햇볕정책은 장기적으로 이런 도발을 줄일 수 있다.
정비기간 지났으니 이제 돛을 올리고 항해를 하게 될 것이다
(지지율 하락에 대해 묻자) 후보 때는 후보로서는 제법 근사하게 보였을 것이다. 손해를 보더라도 할 일은 하고. 그런데 막상 당의 지도자가 됐는데, 큰배를 맡았으면 스마트하게 돛도 올리고, 그런데 그게 생각대로 잘 안된다. 그래서 국민들이 저 사람이 과연 선장감인가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후보를 맡자마자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뭔가 조율이 필요하다. 돛도 손질하고, 갑판도 손질하는 정비기간이라고 보면 된다. 이제 돛을 올리고 항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지지율이) 회복될 것이다.
기획 및 제작-iTV(경인방송) / 동영상 편집-디지털 미동 | | | | |
다음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이다.
- 어제(4일)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공식 반응은 부정적이라 하더라도 (청와대가) 우회적으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일 것이다. 한나라당도 수용할 수 있는 후속조처가 있을 수 있다. 한나라당도 국회에서 정쟁을 일삼을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 이인제 의원이 오늘(5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연내개헌을 제안했다.
"몇몇 분들이 개헌론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취지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닌 듯하다. 개헌론에 대해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한다. 대통령 중심제의 권한을 분산해야 하는 게 민주주의 취지에 맞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있었다. 그런 취지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민주당의 단합을 강화하기 위해 개헌론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다른 취지로 개헌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개헌론에 대해) 미뤄 짐작해서 호 불호를 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있는 그대로 지켜보면서 냉정하게 현실적인 방안 생각하고, (개헌론이) 미칠 영향에 대해 차분히 대응해야 한다. 연내개헌은 가능하지 않다. 그럴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 개헌이 된다고 추진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개헌론 환기 차원의) 문제제기는 의미있을 수 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개헌론 주장 논리를 따져보면 대통령제에 대한 권력분산이다. 이원집정부제 등도 지금의 헌법정신을 그대로 (적용)하면 많은 부분 포괄된다. 정치적인 의지를 실어서 뚜렷한 방향으로 운용하려고 한다면 법은 마련돼 있다는 셈이다. (이런 취지를 잘 살린다면) 개헌 필요성에 대한 의미가 상당 부분 약해질 수 있다. 어쨌든 폭넓은 논의가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지나친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달리면 되지도 않을 일이고, 국민들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 아태재단과 김홍일 의원 문제를 한화갑 대표에게 일임해놓고, 노 후보가 (기자회견에서) 직접 거론한 것에 대해 일부 최고위원들의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데.
"같은 사물을 놓고도 해석이 많이 다를 수 있다. 대표에게 맡긴다는 당의 결정을 훼손한 것이 아니다. 기왕 내려진 결정을 전제로 해서 대표도 노력하고 있지만, 후보가 절차만 따를 수는 없다. 지켜보겠다. 대표(의 힘을) 무력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표에게 그 문제를 일임했다는 것이 누구도 그 문제를 거론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후보가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정국해법의 입장을 종합해서 발표한 것이다. (대표에게 일임한다는 것이 그 사안을) 메뉴에 올리지도 말라는 뜻은 아닌 것으로 안다."
- 청와대에 기자회견문을 보낸 것으로 안다. 사전조율이 있었나.
"기자회견 1시간 전에 정동채 (노무현 후보) 비서실장이 청와대 박지원 비서실장에게 회견문을 전달했다. 그리고 취지를 설명했을 뿐이다. 사전조율한 것은 없다. (정동채 실장이 부연설명 함.) 박지원 실장에게 기자회견문을 주자, 대통령에게 보고드리겠다고만 이야기했다. 그밖의 사전조율이나 전화접촉은 일체 없었다."
- 기자회견 내용이 (김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이냐, 건의한 것이냐.
"기자회견 문안에는 건의라고 돼 있다. 그것을 엄밀히 구분할 필요가 있나? 대국민제안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게 따지면 복잡해진다. 간단하게 보자. 대통령이 과거 당 총재였으니까, 지금은 탈당을 했지만 아직도 청와대의 문제가 민주당에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 아니냐."
- DJ의 그림자를 걷어내려는 노력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에 동의하는가.
"그런 주제로 (DJ의) 그림자가 걷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DJ와 노무현을 하나로 묶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게 무척 부담이다. (DJ와) 묶여진 끈을 끊고 싶은 게 사실이다.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다. 무리하게 그림자를 지우려는 정치 행위를 할 생각은 없다. (어제 기자회견 내용은) 옛날 한나라당이 주장했던 것을 청와대가 받아들이라고 건의한 것이다."
- 박지원 실장 등 청와대 인적쇄신을 해야 한다는 쇄신파 등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문제가 본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편이다."
- (노 후보가) 중립내각, 총리교체를 청와대에서 우회적으로 받아들을 것으로 본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전교감이 있었나.
"(청와대도 기자회견 내용을 보고) 자존심과 체면이 상했을 수도 있다. 내 말이 옳고 유효하기 때문에 수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청와대가 내) 제안을 제대로 받아들이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으나 검토대상이 될 것이라고 본다는 뜻이다."
- 노 후보가 기로에 서 있다. 개혁결집이냐, 외연확대냐 고민이 될 것이다. 개혁결집으로 가닥을 잡은 것인가.
"어떤 당내 세력과 손을 잡고 떼는 계획은 없다. 고민되는 건 사실이다. 민주당이 빨리 변해야 한다. 빨리 변화하게 하려면 당내 갈등이 커져 당이 쪼개지고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당의 단결을 강화하려고 하면 변화속도가 느려진다. 딜레마다. 아직까지는 어느 쪽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두 마리의 토끼를 함께 좇는 입장이다."
- 당내 갈등에 대한 해결책은.
"현재 후보는 (당 문제에 대해) 어떤 결의권도 없다. 의결권 행사가 제도화되지 않았다. 그 동안 사실상 양해하며 조율해 온 것이다. 지금까지 당은 합의제로 진행돼 왔다. (그래서 어제 기자회견이) 후보 혼자서 결정한 듯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에 대해 갈등과 불평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내 해법이 유효한지, 민주당에 유리한지 알 것이다. 절차를 생략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생각이 모아질 것이다."
- 어느 여론조사에서는 정몽준 후보보다 지지율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조금 두고 보자."
- 8·8 재보선 결과가 어느 정도로 나와야 승리한 것이라고 보는가.
"몇 곳을 이기면 승리고, 아니면 패배라는 셈을 할 생각이 없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나의 지지와 바람으로 수렁에 빠진 민주당을 건져내고 싶지만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결과와 관계없이 최선을 다할 것이다."
- 당 결속 차원에서 이인제 의원 등 충청권 포용 계획은.
"승자와 패자가 손을 잡고 협력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다. 경쟁으로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생각이 달라도 같은 링에서 경쟁하고 포용하고 승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한 척 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척이라도 하라고 조언하는데, 하는 척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겠다."
- 97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가 YS를 비판한 것을 비판했는데, 어제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 DJ를 비판한 것이 아닌가.
"나는 DJ를 모욕한 적이 없다. DJ의 업적을 폄하한 적도 없다. DJ의 공은 당당히 얘기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아무리 모시고 있었던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비판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비방이나 모욕 등 작위적인 비판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 노무현 후보를 비판해왔던 장기표씨가 입당을 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재보선에 공천을 할 것인가.
"(잠시 침묵한 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 당에 히딩크 감독이 있었다면 그 분은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시고. 공천 문제는 재보선특위에서 잘 판단할 것이라고 본다."
(기자간담회 끝 무렵에 '왜 서해교전에 대해서는 질문이 없느냐'며)
"서해교전에 대한 한나라당의 태도를 보고 정말 걱정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인가. 두고두고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논쟁할 문제다. 과연 적절한 태도였는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회창 후보 말 대로라면 한국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검증을 통해 한나라당의 입장을 철저히 분석하고, 문책해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계속 (한나라당 태도에 대해) 문제 제기할 생각이다."
- 서해교전 사태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모른 채 경협을 중단할 수 없다고 한다면, 반대로 정확한 원인을 모른 채 경협을 유지해선 안된다고 할 수도 있지 않느냐.
"(남한이 북한에 제시할 수 있는) 많은 카드가 있다. 함장이 문제인지, 군부 아니면 그 위의 정치지도자 문제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그에 따라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 많은 카드가 있다고 카드를 함부로 쓰는 게 아니다. 금강산 관광사업 하나가 중요한 게 아니다. 국가중대사를 정략적 이해 속에서 판단해서는 안된다.
국민과 정부 간을 이간질시킨다면, 정말 위기일 때 누가 국가를 맡더라도 책임있게 이끌어 갈 수 있겠는가. 사실이 다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능한 군당국이라고 몰아붙이는 게 무슨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안보를 정략적 도구로 삼으면 안된다. 정치적 목적으로 우리의 자식들을 위험 상황에 몰아넣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