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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지난 1월 열린 <조선일보> 민간법정 기사를 쓴 <한겨레> 기자들을 상대로 뒤늦게 총 4억 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은 당시 행사를 보도한 <한겨레> 3면 기사
<조선일보>가 지난 1월 열린 <조선일보> 민간법정 기사를 쓴 <한겨레> 기자들을 상대로 뒤늦게 총 4억 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은 당시 행사를 보도한 <한겨레> 3면 기사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은 비판언론 대응방안에 관한 한 쌍생아인가? <조선일보>가 올해 초에 열린 '<조선일보> 반민족·반통일 행위에 대한 민간법정(이하 민간법정)' 기사를 쓴 <한겨레> 기자들을 상대로 뒤늦게 총 4억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6개월 전에 쓴 기사를 문제삼아 신문의 편집인과 발행인을 제쳐놓고 기자들에게만 법적인 책임을 물으려는 <조선일보>의 대응은 지난 6월 역시 <한겨레>에 비판적인 칼럼을 쓴 원로 언론인을 상대로 억대 소송을 제기한 한나라당의 행보와 너무도 흡사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고 방응모씨 장남 방재선씨 증언장면/ 김정훈 기자

그러나 이 같은 <조선일보>의 대응은 언론간의 소송에 한 발짝 물러나 '언론 상호간의 비평'을 옹호한 사법부의 최근 결정과도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조선일보>는 "비방 목적으로 기사를 작성, <조선일보>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며 지난달 25일 <한겨레> 고명섭(여론매체부), 안수찬(정치부) 기자를 상대로 각각 3억원,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지방법원에 접수된 소장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지난 1월31일자 <한겨레>에 고 기자가 쓴 <"반민족적 언론 조선일보 유죄">(1면)와 <시효없는 시민의 '친일' 심판>(3면)이라는 제목의 기사, 안 기자가 쓴 행사 스케치 기사(3면)를 문제삼았다.

<클릭! <조선일보> 민간법정을 보도한 <한겨레> 기사 모음(1월31일)>

<조선일보>는 소장에서 "피고들은 시민단체의 1회성 이벤트 정도에 불과한 행사를 보도하면서 <"반민족적 언론 <조선일보> 유죄"> <시효없는 시민의 '친일' 심판> <군사독재 찬양-반통일 행각 도마에> <조선일보 반대 대중화 기폭제로> <방응모씨의 '천황주의자 편지' 공개> 등의 원색적인 제목을 붙이고, 기사 본문에서 <조선일보>를 비방하는 일부 시민단체 인사들의 격렬한 욕설을 여과없이 그대로 인용,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특히 <한겨레>가 민간법정 검사단의 논고와 한상범 민족문제연구소장(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강정구 교수(동국대)의 논평을 인용 보도한 데 대해서는 "거친 욕설을 그대로 인용하여 원고를 비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기사에는 사실 적시 부분도 있고, 의견표명 부분도 있으나 그 구별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중략)...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의 보장은 토론의 상대방을 존중한다거나 쌍방에 구속력을 지니는 규칙을 인정하는 등의 이성적인 토론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다. 피고들이 이 기사에서처럼 토론 상대방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욕설만 내뱉는 상황에서는 토론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또한 "기사 전체를 관통하는 심각한 '악의성'을 주목한다. 1회성 이벤트에 불과한 행사로서 아무런 권위도 부여할 수 없는 민간법정을 보도할 때는 타인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며 "그러나 피고들은 그러한 내용을 신문의 얼굴이랄 수 있는 1, 3면에 극단적인 표현으로 크게 다루어 보도했다. 명색이 중앙일간지 기자라는 피고들이 어떻게 이런 식의 보도를 할 수 있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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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자사와 관련된 '친일 논쟁'에 대해 "일제침탈기의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친일행위를 한 사람'으로 지목당하는 경우 일반인의 경우에도 반민족세력으로 낙인찍힐 수 있고, 사회적 저명인사의 경우 더 더욱 치명적인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며 "한 개인의 경우가 이럴진대 국내 제일의 언론사를 상대로 <"반민족적 언론 조선일보 유죄">라는 식의 보도를 한 것은 매우 심각한 가해행위"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소장에서 "일제 강점기에 가장 많은 압수와 정간을 당한 신문이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기사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일도 있었다. 전자와 후자 중 어느 것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역사적 평가는 다소간 달라질 수 있음을 원고도 인정한다"고 밝혀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또한 "<조선일보>가 민간법정의 심판대에 올라 역사적 단죄를 받았다"는 1면 기사 첫 문장과 관련, "역사적 단죄를 받았다는 말은 '실정법상의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말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명예훼손적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이번 소송을 위해 첨부 인지대 비용으로만 165만5000원을 들였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법정 공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언론사간 소송에서 신문사를 배제하고 기자들에게만 거액의 배상금을 청구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조선일보>는 <한겨레>가 자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작년 두 차례에 걸쳐 총 71억원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당시에는 취재기자는 물론, 발행인(최학래 사장)과 회사도 '피고소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일보, 지면으로 말하라"
언론노조, 성명 발표

전국언론노동조합도 1일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 <조선일보>에 '손배소가 아닌 지면을 통해 말하라"고 주문했다.

"<조선일보>가 정말 심각히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판단한다면 민간법정 참여자 전체를 상대로 손배소를 내야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조선일보가 한겨레신문이 아닌 기사를 쓴 기자를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한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월 한나라당이 정경희 씨의 칼럼을 문제삼아 5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거니와 우리는 이번 조선일보의 소송도 그 연장선상의 사안으로 판단한다. 돈 없으면 글쓰는데 조심하라, 까불지마, 이게 아니고 무엇인가. 금권(金權)으로 언로(言路)를 가로막겠다는 게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조선일보 민간법정의 문제가 한겨레신문의 기사가 정말 잘못 됐다면 손배소가 아닌 지면으로 말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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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민간법정' 소장에서 "피고들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원고를 비방하는 기사를 작성, 게재한 바 있으며, 이 사건에서 문제되고 있는 각 기사도 이러한 일련의 비방행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밝혀 자사 비판 기사를 써온 <한겨레> 기자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소송 제기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음을 암시했다.

그러나 하루 200만 부 이상의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거대 신문사가 지면을 통해 자사에 비판적인 보도를 반박하지 않고 법정으로 직행한 것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다.

지난달 29일 MBC가 월간조선을 상대로 낸 판금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서울지법이 "상당한 여론형성능력이 있는 MBC는 자사 프로그램을 통해 충분한 반론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언론매체 상호간에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는 경우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받아야 한다"고 결정사유를 밝혔는데, <조선일보>가 기자들을 겨냥, 소송을 건 것은 법조계의 이같은 흐름에도 상치되는 면이 없지 않다.

민간법정 기사를 쓴 <한겨레> 고명섭 기자는 1일 "당시 <조선일보>에 소송을 제기한다는 기사가 나가기도 했지만, 이렇게 뒤늦게 소송을 제기할 줄은 몰랐다"며 "<조선일보>가 소송이라는 합법적인 무기로 자신의 치부를 들춰내는 기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한다"면서 <조선일보>를 공박했다.

1일 배달된 소장을 훑어본 고 기자는 "객관성이 담보된 주관으로 기사를 썼지만,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것처럼 명백한 허위사실이나 왜곡은 없었다"고 전제하고 다음과 같이 <조선일보>를 비판했다.

"<조선일보> 민간법정은 시민사회단체가 수개월을 준비하고 1200여명이 참여한 행사다. 보도내용에 대한 시시비비를 떠나서 행사를 보도한 매체의 기자들만을 겨냥한 소송 의도가 의심스럽다. 또한 기사라는 게 부장, 국장으로 이어지는 편집라인의 검토를 거쳐 나가는 것이 상식인데, 왜 기자들에게만 책임을 묻는가? <조선일보>의 소송 제기는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에 대해 해당 신문의 사주나 편집국장을 제쳐놓고 기자만을 들볶았던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을 연상시킨다"

손석춘 <한겨레> 논설위원은 "<조선일보>가 <한겨레>를 고소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회사 차원에서 대응할 것이다. 이번 소송은 고 기자, 안 기자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마이뉴스>와 통화한 <조선일보> 사장실의 관계자는 "소송을 제기한 특별한 배경이라는 게 없다. <한겨레>가 악의적인 의도로 안티조선이라는 운동적 방향에서 그 동안 계속 보도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 아니냐? 언론중재위를 거쳐서 반론권을 보장받아 끝없는 공방을 벌이느니 명예훼손적 보도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 <조선일보>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와 관련된 소송이 워낙 산적해 있어서 지금에서야 접수됐지만, <조선일보> 관련 보도의 명예훼손적 성격에 대한 법률 검토는 변호인단에서 충분히 이뤄진 것으로 안다. MBC의 월간조선 소송에 대한 법원 결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면서도 기자들만 제소된 것에 대해서는 "정말 기자들에게만 소송이 제기됐냐?"며 오히려 의아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마이뉴스>는 <조선일보>의 소송대리인 동양합동법률사무소에도 연락을 취했으나 담당변호사들이 마침 휴가중이어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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