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힘없는 개인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언론이나 기업체, 기관에 의해 개인의 명예가 짓밟히는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이 이런 힘있는 조직에 대항하여 자신의 피해를 구제 받고 배상을 받는 것은 참으로 험난한 길이었다.
가진 돈도 없고 도움 받을 데도 마땅치가 않으니 산처럼 거대하기만 보이는 권력화된 조직에 대항한다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참으로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거대한 권력조직들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개인을 향해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떠나서 개인의 경제적 파탄을 암시하는 이러한 거액의 배상 소송은 힘의 남용이란 측면에서 가장 비겁한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발전 노조원들에 대한 사측에 의한 손해배상 소송과 월급 가압류, 한나라당에 의한 정경희씨에 대한 소송, 조선일보에 의한 한겨레 기자에 대한 소송 등이 그러한 것이다.
발전 노조원들에게는 사측이야말로 개인적으로 봐서 가장 큰 권력집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실질적 여당인 한나라당과 최다 판매부수의 <조선일보>는 말할 나위 없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권력화된 집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그 자체가 집단에 의한 한 개인에 대한 '몰매주기'라 볼 수밖에 없지만, 특히 <조선일보>의 이번 <한겨레> 기자 소송건은 상식의 범주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언론의 역할을 포기한 것인가?
언론은 여론 형성에 가장 큰 기능이 있다. 사실에 대한 보도나 논평도 국민들에게 바람직한 여론을 형성시키기 위한 하나의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민감한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치열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사와 관련한 민감한 사안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일보> 장재국 전회장의 원정도박 의혹에 대한 당시 <한국일보>의 태도나 끊임없이 제기되는 친일 시비를 대하는 <조선일보>의 태도나 떳떳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는 것이 우리 주류 언론의 슬픈 모습이다.
사주나 자사의 과거 잘못된 모습이라도 사실대로 보도하고, 떳떳이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바람직한 언론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 멍에가 억울하다면 스스로 제기된 문제에 대해 반론을 펴고, 적극적으로 상호 토론에 임해서 자신의 주장을 제기하는 것이 언론사의 상식적인 모습이라 할 것이다.
더구나 <조선일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신문이 아닌가? 가장 영향력 있는 지면에 가장 영향력 있는 논객들을 보유한 언론사가 무엇이 부족해서 개인에게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는 것인가?
되돌아보면 <조선일보>는 이제껏 양지 바른 토론의 장에 거의 나선 적이 없었다. 딱 한번 있긴 했다. 라디오에 <조선일보>의 진성호 기자가 <경향신문>의 박인규 기자와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과거에 한 번 있었다. <조선일보>에게 익숙한 것은 독자들에 대한 일방적인 훈시와 자신의 주장에 대한 주입식 전달이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민간 법정에도 정작 당사자인 자신은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자신의 지면에서 철저히 무시했다. <한겨레>의 보도가 문제가 있으면 <한겨레>보다 몇 배 더 많이 읽히는 자신의 지면에 조목조목 반박을 하면 될 일이다. <조선일보>가 자랑하는 수많은 내부, 외부의 논객들은 둬서 뭘 하는 것인가?
이제는 상식적인 대응이 아니라 단순히 개인에게 겁을 주고 위축을 줘서 자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억압하겠다는 의도로 읽히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 기자가 보도한 기사가 자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그 행사를 주관하고 참석하여 <조선일보>에게 '욕설을 내뱉고, 비방한' 사람들 모두가 심각한 명예훼손을 자행한 것이다.
기자보다 그들에게 먼저 소송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 동안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친일지였던 <조선일보>를 보지 말자고 일인 시위를 했던 수많은 사람들, 원색적으로 '욕설을 퍼붓고 비방했던' 가수 디지에게도 소송을 걸어야 할 것이다.
아니 그보다 옥천에서 <조선일보>의 친일 행각을 까발리며 안티 조선 운동을 했던 사람들, 안티 조선의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모두 소송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는 정녕 이런 식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입만 열면 언론 자유를 외치면서 자신을 비판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입을 거액의 소송이라는 치사한 방법으로 막으려고 하는가? 정 그 보도가 억울하다면 기자 개인이 아닌 한겨레신문사에게 소송을 제기한다면 비겁하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 것이다.
소송 맛들인 권력
<조선일보>에 의해 제기된 <한겨레> 기자에 대한 소송은 <조선일보>에게 또 하나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무관심과 무시로 전략을 정했다면 그것으로 일관한 것이지 거대 언론에 의한 기자 개인에 대한 소송이라는 평지 풍파를 일으키는 전술은 아무리 봐도 유리한 작전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건을 접하니 얼마 전 <소송 맛들인 '권력'>이라는 김대중 칼럼이 문득 떠오른다. 이제 <조선일보>에게 편집인으로 계신 김대중씨의 글을 돌려주고 싶다.
검찰은 분명 '언론 겁주기' 전략에서 성공하고 있다. 기자들은 검사들의 빈번한 언론사 제소(提訴)에 짓눌려 검찰관련 기사를 애써 기피하거나 부득이한 경우라도 머뭇거리고 있다. 검사들이 언론사를 상대로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99년을 시작으로 그해에 5건, 작년 1건 그리고 올 들어 6건 모두 12건에 총 손해배상 청구액은 무려 127억 여원에 달한다. 현재 패소한 일부 언론사들이 기자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경우 해당기자들은 '쪽박'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법조출입기자들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고 빨리 법조출입을 그만 두고 다른 곳으로 가기를 희망한다.
검찰이나 국정홍보처는 자신들에 대한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을 수 있는 여러 통로와 수단을 갖고 있다. 기자회견도 있고 언론중재절차도 있고 또 언론당사자와 협의를 통한 정정의 길이 얼마든지 있다. 법률전문가들 중에는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의 구제는 그 기본정신이 언론에 대항하기 어려운 개인 또는 단체피해자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그런 구제의 길을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국가기관이 올라타서 막대한 금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무더기로 제기하는 것은 언론피해구제의 근본정신을 망각한 것이라는 것이다. (2001년 11월17일자 김대중 칼럼 <소송 맛들인 '권력'>)
김 편집인의 말에 따르면 개인이 아닌 언론사에 대한 소송에도 기자들이 '쪽박' 신세를 면치 못할 가능성이 있으며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한 검찰이나 국정 홍보처가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을 수 있는 통로와 수단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거대 언론사에 의한 기자 개인에 대한 소송은 어떠한 효과를 과연 가져올까? 또 1등 신문사가 검찰이나 국정 홍보처에 비해 거액의 소송을 통하지 않고도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을 수 있는 통로와 수단이 많을까, 적을까? 진정 김대중 편집인에게 되물어보고 싶은 말이다.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