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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진
고고학적 발굴 작업을 통해 감추인 과거를 캐내는 일은 아무래도 흥미로운 일에 속한다. 특히 성서와 관련된 세계 3대 종교 뿐만 아니라, 인류문화 전반에 아직까지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성서에 기록된 역사적 내용의 사실여부를 밝히는 작업은 오랫동안 대단히 큰 관심거리가 되어왔다.

과연 노아 대홍수나 이집트 탈출 사건(출애굽)은 정말로 일어났나? 아브라함이나 야곱 같은 이스라엘 족장들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이스라엘인들의 가나안 정복이나 다윗-솔로몬으로 이어진 광대한 통일왕국의 황금시대는 실재했을까? 고고학자들은 힘겨운 발굴과 연구 작업들을 진행하면서 까마득히 잊혀진 성서의 역사를 땅 속에서 새롭게 밝혀 내고 있다.

성서고고학을 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그들의 고고학적 발굴 작업이 성서에 기록된 내용을 증명하고 보충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고학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현재까지 드러난 결과들을 살펴보면, 오히려 전통적인 성서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뒤집고 있어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예컨대, 성서의 맨 앞 책으로 배치되어있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브라함 같은 족장들의 이야기나 모세가 받았다고 전해지는 율법들은 사실은 서기전 7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기록되었다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의견이다. 이에 따르면 율법들은 일순간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불러 주고 그것을 적게 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발전해 왔다는 말이 된다.

지금까지 족장들의 이야기나 이집트 탈출 사건의 석연치 않음, 가나안 정복과 정착 과정 등에 대하여 학계의 많은 연구와 논란이 있었다. 그래서 최소한 성서가 현재 묶여진 순서대로 쓰여진 것이 아니며,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여러 보도들도 생각보다 상당히 후대에 편집되었다는 사실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출애굽 사건이 어떤 형태로든 있었고, 이스라엘인은 이민족으로 가나안에 들어왔으며,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왕국 시대는 이스라엘의 최대 황금기였다는 사실 등은 대체적으로 널리 인정되어 왔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저자들은 최신 고고학적 연구 결과들을 종합검토 하여 출애굽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이 아닌 창작이며, 이스라엘인들은 외부에서 가나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본래 가나안 원주민이었고, 다윗-솔로몬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영토의 제국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고 딱 잘라 말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윗과 솔로몬이 다스린 통일왕국의 황금기에 들어와서야 그 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광범위한 문서활동이 가능했으리라고 학자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솔로몬 시대에 예루살렘이 대도시였다는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 또한 다윗과 솔로몬의 실존 여부는 부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턱없이 작은 산간의 군벌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자들은 추측한다.

성서는 북왕국 이스라엘 보다 남왕국 유다의 왕들이 더욱 선하고 넓은 영토를 다스렸다고 보도한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남왕국 유다는 북왕국이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국제적인 외교문서에 언급된 것마저도 찾아보기 힘들만큼 그 규모가 초라했다는 것이 발굴을 통해서 드러났다. 북왕국은 남왕국 보다 훨씬 화려한 고고학적 유적을 남겼고, 과연 앗시리아가 군침을 흘릴만한 비옥한 땅과 왕궁을 소유한 왕국이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남유다 왕국은 주로 산간 지역에 위치한 나머지 인구밀도도 북왕국에 비해 훨씬 적었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구차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저자 소개

이스라엘 핑컬스타인

텔 아비브 대학교의 소니아 및 마르코 내들러 고고학 연구소 소장이다. 현재 이 대학교의 므깃도 발굴원정의 공동 단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고대 도시 아마겟돈의 유적지인 텔 므깃도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성서 고고학 유적지 가운데 속한다. <이스라엘 변방 정착과 생활 고고학>의 저자이다.

닐 애셔 실버먼

벨기에 소재 에나메 공공 고고학 및 유산 기증 연구소의 역사해석 책임자이다. 그는 <고고학>지의 객원 기고가이며 <숨겨진 두루말이> <가르침과 왕국><하나님과 나라의 발굴>의 저자이며 기타 여러권의 책을 집필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하고 나자 남 유다 왕국은 예루살렘이 종교 중심지가 되고 인구가 급증하는 등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 시기에 히스기야를 비롯한 남 유다 왕들은 국민 통합 차원에서 전통적인 다신숭배를 금하고 "여호와 유일신 운동"을 벌이면서 대대적인 개혁 운동을 펴기 시작했다. 이것이 요시야 왕 때 이르러서 정점에 달하게 되는데, 바로 그 당시에 승리자 유다의 시각에서 성서 집필이 본격화되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통일제국 건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요시야가 이집트 왕 느고(네코2세)와의 므깃도 싸움에서 전사하고 나서, 얼마 뒤에 유다 왕국도 바벨론 제국에 멸망을 고하고 말았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의 지식인들은 여호와 유일신 운동의 실패에 대한 원인분석을 하면서 불가피하게 성서의 전면적인 재수정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2차 성서 편집과 집필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성서가 본래 어떤 역사적인 사실을 증명할 목적으로 쓰여지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실제로 그것은 과학을 숭상하고 합리주의적 세계관을 갖게된 현대인의 시각임을 고려해야 한다. 즉 성서는 "사실"의 기록으로서 오늘날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담은 책으로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성서 서사시의 위력은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벽이 나팔소리에 무너지고 소년 다윗이 팔매 돌로 거인 골리앗을 죽인 것 같은 사건이나 인물의 실존을 뒷받침하는 증거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보다 성서 서사시의 진정한 위력은 "인간의 해방, 압제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 사회적 평등의 추구 등 시공을 초월한 여러 가지 주제들이 설득력이 강하고 명확하게 표현된 데서 우러나온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동안 일부 학자들 간에나 논의되던 최신 성서 고고학의 연구 결과들을 이렇게 알기 쉽게 정리해서 내놓은 저자들의 수고에 갈채를 보낸다. 그들은 중견 고고학자들로 학문적인 치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 분야에 문외한일지라도 접근이 가능하도록 쉽게 쓰려고 배려한 노력이 엿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이 책을 읽으려면 적어도 구약성서 자체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은 일정부분 필요할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책이 고고학적 발굴 결과물들에 무게 중심을 두고 이스라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과장되게 보이는 측면이 없지 않다. 예컨대 요시야 왕의 시대를 기점으로 최초 성서집필 시기를 맞추려다 보니 요시야 왕에 대해 과도하게 확대 해석을 가한 듯 싶다. 저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왜 정작 성서 자체는 요시야에 대해 북왕국의 폭군 아합 왕보다도 그토록 짧게 서술하고 있는지도 말해야 할 것이다. 요시야가 맞이한 뜻밖의 죽음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선뜻 납득하기는 어렵다.

사실 역사적 사건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고학적 발굴자료에 의존하여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든 것이고 또 그러한 자료들을 누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어떻게 해석하는가하는 것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을 도출하게 만들지 않던가.

성경 :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이스라엘 핑컬스타인 & 닐 애셔 실버먼 지음, 오성환 옮김, 까치(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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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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