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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소재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관 전경
서울 여의도 소재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관 전경 ⓒ 전경련 홈페이지
그리스 신화에 레테의 강(망각의 강)을 건너며 망각의 물을 마시면 이승에 대한 기억을 전부 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레테의 강을 우리의 재벌들은 너무나 쉽게 넘나드는 것은 아닐까?

IMF라는 터널을 빠져 나온 후 보여준 재벌들의 행태에서 이들이 얼마나 자주 이 강을 넘나드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시절 국민들이 내놓은 금반지 한 돈이 IMF 터널을 빠져나오는 '빛'이 되었고, 구조조정 속에서 흘린 실업자들의 눈물은 '생명수'였음을 필자는 잘 기억하고 있다.

당시 어느 재벌 총수는 자신의 재산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그 후 제대로 처리되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으며, 지금 전경련이 현 정부의 잘못이라고 강력히 비판하는 '빅딜 정책'은 당시 전경련 회장이 맨 처음 주장하였던 것임을 그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ADTOP5@
재벌은 얼마나 자주 망각의 강을 넘나드는가

97년 정권인수인계시 IMF 사태로 치솟은 환율과 금리, 그리고 기업연쇄도산으로 무려 2만4000여 개의 기업이 쓰러지고, 10만 영세 소상공인이 가사 상태에 빠져 가혹한 구조조정이 어쩔 수 없이 진행되었다. 중소기업들은 IMF때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여 피나는 구조조정을 자연스레 거쳤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는 재벌들은 구조조정을 회피했다.

생산설비 과잉, 문어발식 경영, 과다차입의 문제를 앓고 있던 재벌들은 용어 해석도 분분한 '빅딜'이라는 신조어를 들고 나오면서 구조조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재벌의 구조조정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상위 3개 재벌의 핵심업종에 대한 투자는 고작 총 투자의 17%에 불과했고, 나머지 8할은 여전히 무분별한 사업확장이나 부실계열사에 쏟아부었다. 이 결과 재벌기업의 수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었다. 현재 상위 3대 재벌의 계열사 수는 98년 158개였다가, 2001년에는 161개사, 2002년에는 176개사로 늘어났다.

재벌이 구조조정을 확실히 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부실 대기업을 지원해주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하라고 해놓고 푸짐한 밥상을 가져다주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완화해준 공정거래법 개정이 단적인 예이다. 재벌의 내부지분율은 여전히 적은 상태에서, 총수가 주식을 하나도 갖지 않고 있는 회사들에 대해서 경영을 총괄하는 전횡이 벌어지고 있다.

@ADTOP6@
올 초 기업의 가치 분석과 이에 따른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여전히 미흡하며, 재벌일가 등 대주주에 의한 독단적 경영과 경영성과에 대해 책임 부과가 이뤄지지 않는 문제점' 등 비판적 의견이 절대 다수였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렇듯 재벌의 구태가 여전한데, 정부의 재벌 개혁은 일관성을 잃었다.

거시경제 지표가 악화되고, 경기전망이 밝지 않다는 전망이라도 나오면, 재벌들은 앞다투어 규제완화를 요구했고, 정부는 추가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활성화 대책 마련으로 화답했다. 경기부양책이 구조조정보다 우선한 것이다.

전경련은 재계를 대변하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의 "재벌개혁을 완성한 대통령으로 남겠다"는 약속은 '재벌개혁을 시작한 대통령'으로서의 의미만을 남긴 채, 신임 당선자에게 과제를 넘겨주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평소 재벌개혁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중소기업정책이라고 강조해온 필자로서 전경련에게 애정을 담아 충고를 하고자 한다.

최근 '기업구조조정본부 해체' 발언과 '사회주의' 파문때문에 전경련과 인수위가 크게 대립하는 모양새인데, 이 문제를 들고 나온 전경련이야말로 스스로 해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전경련은 재계를 위해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전경련 조직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제 5단체 중 중소기업 중앙회를 제외한 4개 단체의 대표는 전부 전경련 소속 기업 총수이고, 이들의 목소리는 궁극적으로 전경련의 목소리와 일맥상통하다. 전경련은 그 산하에 광고주협회, 자유기업센터 등을 거느리며, 몇몇 재벌의 이익과 전경련 목소리를 키우는 데 열중하고 있다.

지금의 전경련을 단순한 사단법인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경유착의 핵심고리이자 사령탑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점에서 경쟁력 강화에 애쓰고 있는 대기업들이 전경련 때문에 오히려 한꺼번에 매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니, 스스로 제 갈 길을 적극 모색해봄직하다.

한편으로, 인수위 정책담당자들은 거대 재벌의 연합군인 전경련과 상대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보다는, 대기업들을 직접 상대하여 각 대기업에 맞는 '맞춤형 기업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문민정부 시절이거나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재벌 정책은 있었다. 이제 국민이 대통령인 시대에 '국민 대통령들'은 일관성 있는 재벌 정책을 기대하고 있다.

취업 시즌에 취업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희망하는 기업과 존경받는 CEO가 시민단체들로부터 재벌개혁 대상으로 손꼽히는 역설적인 상황이 이제 바뀌어야 할 때이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지낸 정치권 '경제통'
민주당 박상희 의원은 누구?

초선의원인 민주당 박상희 의원(비례대표)은 95년 2월부터 2000년 9월까지 약 6년간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지냈다.

97년 은탑산업훈장(대통령)과 98년 한국경영자대상(한국경영학회)을 수상한 박 의원은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에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과 당 중소기업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경제통·중소기업통'으로 통한다. 2002년 초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 '영남 몫'과 '중소기업 대표'이라는 두가지 키워드를 내세우며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1월 초에는 후단협에 속해 있으면서 비례대표 최명헌·장태완 의원과 함께 '자진탈당'이 아닌 '제명'을 요구해 비난이 인 바 있다. (오후 4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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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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