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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이인향, 이윤원, 이호찬, 오용석(오마이뉴스 기자만들기 16기)

<오마이뉴스>가 지난해 10월 <시사저널>이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언론매체 영향력 조사에서 2년 연속 언론 영향력 8위에 올랐다. 앞자리를 차지한 7개 매체는 방송3사와 '조중동', 그리고 한겨레신문이다. 또한 <미디어오늘>과 한길리서치가 국내 현직기자 3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향후 영향력이 커질 매체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의 영향력이 이처럼 급속히 성장한 데는 스스로 기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시민기자 혹은 잠재적 시민기자의 힘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를 두고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편집자인 김경년 기자는 "뉴스의 70%∼80% 이상을 생산해내는 시민기자가 <오마이뉴스>의 생명력"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정작 시민기자 자신들은 이와 같은 자신들의 힘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앙마사건'을 계기로 시민기자의 존재가 요란하게 종이신문 지면을 장식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자의로 혹은 타의로 의심받고 있다. 거기에는 그들의 실체가 명확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데도 한 원인이 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이고, 그들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ADTOP5@

시민기자도 기자냐?

필자는 지난 가을 처음으로 <오마이뉴스> 기자라는 타이틀을 붙였던 날을 기억한다. 내밀 명함 한 장 없이 용감무쌍하게 나섰던 그 날의 취재는 그런 대로 성공적이었다. 처음 송고한 기사가 메인면 서브에 오르는 안도감도 맛보았다. 그것이 안도감이었던 이유는 취재에 응해 주었던 취재원들에게 필자가 최소한 기자를 사칭하는 위인이 되지는 않았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에 다시 통화하게 된 한 취재원으로부터 "<오마이뉴스>에 상주하는 기자는 아니더군요"라는 말을 들으며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옥의 티로 남아 있다.

이 정도는 아주 사소한 일에 속한다. 취재를 거부당하거나 타 매체 주재기자에게 밀려나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기자인가 아닌가'를 반문해 보는 순간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마련이다. 명함도 없고, 배경이 되어줄 번듯한 회사도 없는 시민기자에게 정체성의 혼란은 곧 취재원에 대한 주눅으로 귀결된다. 이렇게 자신감을 잃게 되는 순간, 제대로 된 취재는 '물 건너간 일'이 되고 만다.

시민기자의 고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터넷기자협회에 등록된 기자들조차도 '우리를 기자취급이나 해주냐'며 냉소를 흘리는 마당에 시민기자의 위상을 거론하는 것은 '입만 아픈 일'이 아닌가 말이다.

무시할 테면 해라

▲ '사람냄새 나는 시민기자로 남고 싶다'는 남경국 기자
ⓒ 오용석
올해로 하니리포터 3년차에 접어든 남경국 기자(32·연세대 법대 대학원)는 취재원들의 냉소에는 어지간히 이력이 났다. 전치 3주의 폭행을 당하고도 오히려 상해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해 경찰서를 들락거렸던 일도 있었다.

"우습게 알면 우습게 아는 대로 기사로 보여주면 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인터넷 매체의 시민기자일지라도 옳은 일을 하면 누구도 무시할 수 없어요."

남 기자는 꼬박 1년을 '춘천S어학원 원장의 외국인 강사 불법 착취'에 매달렸다. 처음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남 기자의 지속적인 보도로 지역언론과 방송매체에 사건이 알려졌고 춘천S어학원 원장은 결국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제 2002년 올해를 빛낸 하니리포터로 선정된 남경국 기자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는 기사로써 말했고 유수한 언론매체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는 주목받는 시민기자가 되었다.

"취재를 다니면 '정식기자가 아니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직업기자가 아닐 뿐 나도 기자다'라고 당당히 말하죠."

'정식기자'라는 말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남 기자의 태도는 단호하다. 그는 직업기자들이 사무실 노트북 앞에서 보도자료나 뒤적일 때 발로 뛰어 만들어낸 생생한 기사를 전해줄 수 있는 시민기자의 가치를 역설했다.

"직접 부딪혀 보니 꿀릴 것도 없더군요. 아무리 부수가 많은 신문이면 뭐합니까. 오늘은 1면 톱기사더라도 내일이면 찾을 수가 없는데. 인터넷 기사는 세계가 다 보는 겁니다. 내 기사를 보고 캐나다에서, 일본에서, 애리조나에서까지 제보가 들어와요."

남경국 기자의 1년치 기사는 그의 말마따나 하니리포터에 얌전히 링크되어 있었다. 누구든 남 기자의 춘천S어학원 연재기사 중 하나만 접할 기회가 있었다면 관련 기사를 한자리에서 온전히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같은 인터넷 매체의 풍부함이 오늘날 춘천S어학원 사건의 해결을 가져왔다고 믿고 있다.

미사여구만이 좋은 기사는 아니다

"제 기사는 결코 잘 쓴 글은 아닙니다. 시민기자의 글이 직업기자처럼 유려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저 읽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실자체, 느낀 바를 보여주면 되는 것 아닐까요?"

3년 전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던 남경국 기자의 첫 기사는 육하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게재조차 되지 못했다. 그는 훌륭한 시민기자로 성장한 지금도 자신의 글쓰기가 특별히 더 나아졌다고 느끼지는 않는단다.

"시민기자는 글자만 쓰고 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취재원들과 고락을 함께 할 수 있고, 그들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또한 직업기자가 가질 수 없는 시민기자만의 장점일 겁니다. 시민기자들은 마음이 있는 기사를 썼으면 좋겠어요."

남경국 기자는 시민기자 기사의 한 조건으로 유독 '사람 냄새'를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그의 기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강화군의 한 농장에서 일어난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체불을 다룬 것도 그 예로 꼽을 수 있다.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자기 것인 냥 매달렸던 남 기자의 노력으로 첫 기사가 보도된 후 20일만에 5000만원에 달하는 체불임금이 지급되는 결과를 도출했다.

그러나 남 기자의 취재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남 기자는 그들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함박웃음을 머금고 귀향 항공편에 오르는 순간까지를 빠짐없이 기사화함으로써 자신이 생각하는 시민기자의 책임을 다했다. 남 기자는 논리적으로 완벽하지 못해도 감동이 있다면 충분히 훌륭한 기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오늘도 실천에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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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기자 뺨치는 시민기자

"내 기사에는 어려운 말이 없고, 어려운 말은 몰라서도 못 쓴다"는 윤근혁 기자(34·전교조 '교육희망' 기자)도 '기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의 몫'이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윤 기자는 "어렵게 써야만 좋은 글인 듯 느끼도록 하는 학교 글쓰기 교육이 문제"라는 선생님다운 진단을 내놓았다.

남경국 기자가 일반적 시민기자의 대표적인 경우라면 윤근혁 기자는 전문성을 가진 시민기자라고 할 수 있다. 윤 기자는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교육희망'의 전신인 전교조 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98년 임용고사를 거쳐 초등학교 교사가 된 윤 기자는 2002년 3월 전교조로 파견될 때까지 4년간 서울 신목초등학교에서 근무했다.

초등학교 교사이던 2000년부터 <오마이뉴스>에 꾸준히 교육관련 기사를 기고해온 윤 기자는 '소년신문의 폐해 고발', '보수언론의 교육관련 보도태도 및 칼럼 비판', '전교조 활동 제대로 알리기', '학교 관리자 비리 고발' 등 교육계 밖에서는 감지하기 어려운 사실들을 일반에 알려냈다.

가장 반향이 컸던 '소년신문 관련 기사'가 한겨레 1면 톱으로 실리고, MBC 등 방송매체에 보도되면서 서울에서만 소년신문을 구독하는 초등학교가 1년 새 99%에서 91%로 낮아졌다. 지난 대선 직전에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하는 특정 교원단체에서 대선 후보 공개선언을 준비하는 것을 포착해 보도함으로써 불발에 그치게 하기도 했다.

시민기자 중에는 윤근혁 기자처럼 직업기자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전문성을 담보로 활동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직업기자의 취재원 역할로 만족해야 했던 이들이 직접 일선으로 나선 것이다. 밖으로 드러난 현상을 보고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 직업기자들에 비해 사안의 내면을 이해하고 있는 이들의 기사가 비록 직업기자의 그것에 양적으로나 기사형식에 있어 미흡할지는 모르겠으나 질적인 면에서 우위를 점할 것임은 새삼 논할 필요가 없다.

시민기자로 살아남기

윤근혁 기자가 말하는 <기사쓰기 노하우>

1. 충분한 구상 후에 글을 시작하되 시작했으면 1시간 안에 모두 써라
- 퇴고는 시간이 흐른 후에 하라

2. 취재원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켜라
- 믿음이 있을 때 정보를 공유하고 싶은 법

3. 핵심만 쓰되 취재의 핵심은 취재과정에서 순각적으로 포착해라

4. 기성언론의 기사를 읽을 때 내용과 형식을 함께 보라

5. 쓸 수 있는 예쁘고 좋은 말 노트를 만들어라
- 익숙한 단어만 쓰게 된다. 노트정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억된다

6. 편집자와 메일과 전화로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해라

7. 적을 상정한 글쓰기를 경계하라
- 감정이 글 속에 묻어나고 설득력이 없어진다

8. 너그러운 자세로 글쓰기에 임하라

9. 자신감을 가지고 취재에 임하라
"이제는 어느 신문에도 관공서 출입기자의 기사가 사회면 톱을 차지하는 것은 볼 수 없어요. 살면서 정치 생각을 하는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최소한 일과의 80%는 자기 주변의 고민들을 생각하고 삽니다. 그래서 기성 언론조차 우리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실으면서 독자의 욕구를 채워주는 척하고 있죠."

윤근혁 기자는 시민기자의 특종은 기자 자신의 생활 주변에 있다고 강조한다. 기성언론 기자 흉내를 내어서는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 윤 기자의 생각이다.

"흔히 말하는 특종, 엄청난 문서의 폭로라든지 그런 것만 반응이 있을 줄 알았는데 따뜻한 글에 의외로 반향이 컸어요. 그것도 특종이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과 함께 윤 기자가 소개한 것은 '소년신문 기사'를 연재하던 중 알게 된 한 교장선생님의 정년퇴임식 기사였다. 올곧은 교육자의 길을 걷고도 '참회의 글'로 퇴임식을 대신한 교장선생님의 일화는 기사를 접하는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직업기자들이 하고 있는 단순 사건 보도가 경쟁력이 없다는 데는 남경국 기자도 동의한다. 남 기자는 오프라인 매체에서 등한시하는 사건들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직업기자들은 짜여진 틀에 맞추느라 단발성 보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는 "그런 기사들의 후속보도를 해주는 것도 시민기자가 할 수 있는 많은 역할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앞서 언급한 남경국 기자의 '강화도 외국인 노동자 임금 체불 기사'도 한국일보의 1단 기사에서 비롯됐다. 기사를 접한 남 기자는 피해자들을 도와줄 수 있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구정 전날 무작정 강화도의 농장으로 내려갔다. 일개 시민기자가 피해자들에게 체불임금 5000만원을 받을 수 있게 했던 '미션 임파서블'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름다운 청년, 남경국의 희망에 동의하다

남경국 기자가 춘천S어학원 취재를 위해 춘천을 오가며 들인 돈은 기차삯만 3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아직 학생인 그에게는 한 학기 등록금과 맞먹는 거금이다. 때로는 취재를 위해 수업을 포기해야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하니리포터에서 지원된 것은 특별취재비 15만원이 전부였다. 피해자들을 수소문하기 위해 들인 국제전화비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사회가 바뀌는 데 일조하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한다"는 남 기자는 "이 일로 돈을 벌 생각이었으면 직업기자를 해야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아직은 직업기자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하루에 2∼3개씩의 기사를 보내야 하는 직업기자가 되면 지금과 같은 활동은 불가능할 겁니다. 앞으로 학위해서 학교에 남을 생각이고, 인권관련 시민기자 활동도 계속 하고 싶습니다."

남경국 기자는 시민기자를 고집하는 자신의 마음을 한마디로 '사회에 대한 식지 않는 애정'이라고 표현했다.

인터뷰를 위해 들어간 찻집에서 남경국 기자는 종업원을 붙잡고 이것저것 질문이 길었다. 필자는 기자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되는 순간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인터뷰 요청에 대해 한사코 사양하던 그가 입을 연 이유는 다음과 같은 그의 독백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희망에 기꺼이 동의하게 되었다.

"저처럼 평범하다 못해 '어리버리'한 사람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렸으면 좋겠어요. 이제 시민기자의 글도 기사로써 가치만 있으면 파괴력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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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와 편집자는 ' 동지 ' 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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