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조선일보>는 1면 우측 머리에 '노 대통령 방식 정치·언론개혁 따르는 후보 내년 총선서 지지키로'라는 제목의 박스기사를 실었다. 새로운 시민운동을 추진 중인 '생활정치 네트워크 국민의 힘'에 대한 음해기사였다.
조선은 이 기사에서 "국민의 힘이란 단체는 조선일보 절독운동과 국회의원 개인비리 조사 등을 통한 낙천·낙선·당선 운동을 펼칠 것 등의 사업계획을 확정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기사의 첫머리는 "내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하는 정치·언론개혁을 따르는 후보를 지지하기로 해 정치·언론계에 상당한 파문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로 이어진다.
이 기사는 리드부터가 날조다. 기사의 기본인 팩트가 틀렸다. 그러나 단순한 오보가 아니라는 것이 더 문제다. 오보는 존재하는 사실을 틀리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오지도 않은 말을 마치 있었던 것처럼 보도하면서 자기 입장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은 그냥 오보가 아니다.
그것은 불순한 저의가 작용한 여론조작용 왜곡보도다. 조선으로서는 자기들을 견제해온 '조아세'(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가 합류한 국민의 힘이 커지기 전에 짓밟아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시민단체가 영향력을 확보하기 전에 얼마나 재뿌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을지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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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민단체를 노무현 정부의 홍위병에 불과하다고 국민에게 널리 전파하기 위해 안달이 난 꼴이다. 조선은 그런 충동에 사로잡혀 허위사실의 날조와 함께 취재 과정의 비윤리성마저 드러냈다. 오늘날 수구언론이 날조할 수 있는 문제기사의 전형을 만들었다.
'국민의 힘'의 그날 행사는 외부 연사의 발표를 듣고 회원들과 토론하는 워크숍이지 어떤 사업계획을 논의하거나 확정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 그런 외부 연사들까지 아무 사전협의 없이 얼굴사진을 쓰면서 친노무현 세력으로 편집했다. 명백한 초상권 침해이고 명예훼손이다.
나는 그날 '21세기 한국의 시대과제로서 정치개혁과 언론개혁'이라는 제목으로 기조 발제를 했다. 이어 정치인 팬 클럽에 의해 초대받은 민주당의 이재정 의원이 회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후 회원들은 정치개혁분과와 언론개혁분과로 나뉘어 각기 외부 연사의 발제를 듣고 토론했다.
정치개혁분과에서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박원순 변호사가 '낙천낙선운동의 방향'에 대해 발제했다. 그날 전체회의나 정치개혁분과 어디에서도 노무현식 개혁에 따르는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말이 나온 적 없다. 낙천낙선 운동의 자료로 국회의원의 개인 비리를 조사하자는 조선일보의 보도내용도 금시초문이다.
다만 "낙천낙선 운동의 기준을 정할 때 근거를 다양하게 준비하기 위해 의정활동 등 자료축적이 필요하다"는 언급이 있었다. 그것을 시민단체가 의원들의 개인비리를 조사하려고 한다는 식으로 고발하기 위해 왜곡한 것이다. 우선 많은 의원들에게 '국민의 힘'에 반발감을 불러일으키고 일반국민에게도 거부감을 던져주기 위한 저의였을 것이다.
이날 낙천낙선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선별기준을 둘러싸고 의미있는 토론도 벌어졌다. 2000년 총선 당시 낙천낙선 운동의 주요 기준을 부패와 비리 행위자, 쿠데타와 헌정유린 행위자, 반민주 행위와 인권탄압자 등으로 정했는데 이번에는 정책에 대한 찬반을 그 기준에 포함시킬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예컨대 이라크전 파병안 지지자나 또는 언론개혁을 위한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의 반대자를 내년 총선거에서 낙선운동 대상자로 공표하는 것이 타당한지의 문제다. 이에 대해 다수가 좀더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나는 3040 주축의 시민운동이 크게 신중하고 성숙해졌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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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보도한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 등의 선거법 개정'에 관한 얘기도 그날 들어본 적이 없다. 대통령 임기에 관한 것을 선거법 개정으로 연결지은 조선의 기사는 상식도 못 가진 지적 수준이어서 웃음조차 참기 어려울 지경이다. 또 요즘 시민단체는 헌법상의 권력구조나 대통령 임기문제를 정치개혁 의제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시민운동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는 기사작성임을 드러낸 데 불과하다.
언론개혁분과에서 김삼웅 전 대한매일 주필이 '조선일보 친일 윤전기 철거조치후 처리방안'에 대해 발제했다. 조선의 기사는 그를 '전 평민당 당보주간'이라고 칭했다. 그래도 수년간 중앙일간지의 최고 논객인 주필을 지낸 인물로 소개하는 것보다는 정파적 인물로 격하시키는 것이 그가 한 발제의 권위를 격하시킬 것이라는 얄팍한 꾀가 발동한 것이다.
그것도 사실상 왜곡보도의 한 유형일 뿐이다. 김삼웅씨가 평민당 당보주간을 지낸 것은 십수년 전 일이지만 불과 1년여 전까지도 대한매일의 주필이었고 현재는 성균관대 겸임교수로 언론학 강의를 맡고 있다. 그럴 경우 최근의 전직으로 호칭하는 것이 모든 정론지의 기사 양식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이어 최민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조선, 동아 민족신문으로 기재한 역사교과서 개정과 불채택 운동'을 발표했다. 조선의 보도는 이 언론개혁 분과에서 '조선일보 보는 사람과는 결혼 안하기 운동 벌이자'고 했다는 식으로 제목을 뽑았다.
이는 마치 천둥번개가 심했던 날씨를 보도하면서 잠깐 반짝했던 햇볕을 들어 '하루 종일 맑음'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장시간의 워크숍에서 오는 피로를 달래기 위한 유모어를 그 모임의 알맹이인 것처럼 전파한 왜곡보도의 전형이다.
이날 행사의 참석회원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생활인들이었다. 조선일보가 착안한 '노사모'나 '조아세' 출신도 물론 있었고 그들은 서로 아는 경우가 많아 보였다. 그러나 다수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였다. 온라인상에서 아이디로만 신원을 알던 이들은 오프라인 워크숍에서 만나 상호 인사를 하고 보니 다양한 시민층이었다. 지방대학의 교수, 초중교의 교사, 회사원, 공무원도 있었고 자그만 점포나 공장을 가진 자영업자가 많았다.
나는 이들이 평범한 삶의 정치를 주제로 삼으면서도 정부와 국회와 정당에 대해, 또 수구언론을 개혁하고 국민여론 형성과정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시대과제에 대해 열정적인 관심을 보이는 데 놀랐다. 정치학자로서 우리의 정치문화가 바뀌어가는 현장학습에 참가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함께 밤을 지새며 얘기 나누는 뒤풀이까지 행사의 전과정을 지켜보았다.
'국민의 힘'은 아직 정식으로 출범하지도 않은 이제 겨우 준비모임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공공단체도 아니고 더구나 불법적이거나 비도덕적 행위로 지탄받는 반사회적 집단도 아니다. 공공의 영역이 결코 아닌 사적 모임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모임에 조선일보 같은 거대 신문사가 몰래 잠입해서 취재하거나 참석자들을 염탐해서 은밀하게 제보받을 만한 공익성이 과연 무엇인가. 언론이 공공성이 없는 대상을 취재하려면 그 주최측과 사전협의하고 안내 받는 게 도리다. 그것이 건전한 시민사회의 도덕이고 공익을 추구하는 정상적인 언론의 자세다.
조선일보는 그런 점에서 거대 언론권력의 횡포를 재확인시켰다. 비윤리적 취재행태와 자기를 지키기 위한 과잉방어로 공기(公器)인 신문지면을 더럽혔다. 이번의 왜곡 보도로 다시 한번 언론개혁의 시급성을 알린 셈이 됐고 그 첫 대상이 조선임을 스스로 재확인시켰다.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안티조선운동의 정당성과 공익성을 십분 인정하게 됐다.
'선출되지 않았고 교체되지도 않는 영구권력'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언론을 지칭하는 것임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학계와 시민운동계에서 흔히 써온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청와대 비서실 워크숍에서 그런 언론관을 밝히고 거기엔 견제세력도 없다고 개탄했다.
조선일보의 예처럼 갓 움트려는 시민단체도 자기에게 비판하는 싹이 보이면 허위 날조를 해서라도 매도해버리는 현실을 겨냥한 것이다. 그런데도 측근 중 일부가 보수 언론과 접촉하면서 인사정보마저 새나가는 것을 본 그가 배신감을 안 느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청와대 비서진에게 언론과 유착하지 말라는 강한 경고 메시지를 띄운 이유다. 그 직후 일차 언론의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4월2일 국회에서 행한 국정연설에서도 다시 한번 정식으로 자신의 언론관을 공개 언급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보수 신문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사건이 터진 것처럼 들끓고 있다. 신문지면은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과대 동원돼 이미 공기가 아니다. 2001년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때와 똑같은 광경이다. 물론 노 대통령의 어법과 표현은 직설적이고 공격적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다수 유권자가 그를 선택한 큰 이유가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 그의 언론관과 진솔한 어법에 갈채가 쏟아졌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내부적으로 논조와 편집권이 1인 사주나 소수 고위간부에 독과점된 신문사가 또 그 판매시장까지 독과점하고 있어서 우리는 중층적 여론독과점 체제에 사로잡힌 포로다. 보수이념에 지배된 조선, 중앙, 동아 세 신문의 시장 점유율이 74.5%에 이른다. 그래서 세 신문의 사주 3인이, 그리고 보수이념이 국민여론을 독과점하고 있다. 여기에 무슨 다양성이 있으며, 어떻게 민주주의가 자랄 수 있겠는가.
그것이 독자들의 선택에 의한 자연스런 결과라고 우긴다면 어둡고 길었던 군사독재의 터널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신문의 사주가 내란과정의 정권찬탈 기구에 참여했고, 권력과 손잡기 위해 언론자유를 외치는 많은 기자들을 강제해직시키지 않았던가.
실제 1980년 조선일보의 사주는 전두환 노태우 내란집단이 초헌법적으로 조직한 국가보위 입법회의에 참여했다. 지난해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사건에 조선은 일주일 이상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자 촛불시위대는 조선일보에 달걀을 던지며 규탄했다.
그것은 1960년 4.19혁명 당시 시위군중이 관영 서울신문을 습격하고 19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왜곡보도한 방송사들에 불지른 사건과 맞먹는 의미가 있다. 국민의 편에 서기보다 권언유착으로 성장해온 부도덕한 언론에 대한 응징이었다. 오늘의 언론구조가 그런 권력 빌붙기의 결과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는가. 그러고도 탈세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언론자유를 들먹이는 그들이 종교의 자유를 방패막이로 삼는 사교의 교주와 다를 게 무언가.
나는 '국민의 힘'에서 발제한 언론개혁 부분을 모든 네티즌들에게 공개하고자 한다. 보통 말하는 언론 개혁은 본령에 관한 것과, 언론환경의 개선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언론사의 경영, 상속과 증여 과정, 세금문제, 이권청탁과 개입의 비행, 과당 경쟁에 대한 공정거래 규제 등은 언론 환경의 문제다. 기자실 개방과 브리핑제 같은 것이 정부가 주도할 수 있는 언론환경의 개선조치다.
국회의 개혁입법을 거치지 않고 정부 결정만으로 할 수 있는 언론환경을 개선하는 과제는 이밖에도 많다. 국민의 언론선택권과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신문공동배달제 지원, 인터넷 언론기능의 활성화, 신문고시제 엄정시행 등이 그것이다.
시민운동과 언론계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언론 본령의 개혁과제로 우선 언론사 소유지분의 제한을 들 수 있다. 소유지분 제한에 대해 일부 언론학자들 사이에 재산권에 관한 위헌소지가 있다는 반대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그런 반대의견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모든 자유시장경제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시장 독과점방지법'을 도외시하고 있다.
자유주의 국가들의 반독과점 법제는 언론에도 예외가 아니다. 특정 언론이 여론 시장을 독과점적으로 지배할 때는 더 이상 확대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은 물론, 그 언론사를 1인 족벌이 소유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시장 독과점과 소유제한을 연계시키는 것이다. 거기다 편집권 독립과 그 행사방식의 민주화, 언론사 공정보도위의 법정기구화를 추진해야 한다. 언론 본령의 개혁을 위해서는 정기간행물법에 그런 과제들을 규정하는 입법청원 운동이 요구된다.
정부의 언론정책에 비판받을 소지가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것보다는 공정치 못한 언론의 보도행태가 더 문제다. 노 대통령의 목소리엔 오랫동안 적대적인 언론에 부대껴온 정치인의 회한이 담겨 있다. 그래서 개인적 감정의 표출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최고지도자일수록 주관적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지 말고 공적 가치관으로 전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실세계의 관행들이 자신의 철학과 다르다고 격분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차분하게 개혁방안을 기획하고 설득을 통해 국민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 그런 역량을 갖춘 인재들을 발굴해 옆에 두고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새 시대의 리더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