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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7월 1일 철거될 청계고가도로와 복개도로
ⓒ 권기봉
'한강의 기적’과 ‘빨리빨리’. 88서울올림픽 당시 외국인들이 한국을 떠올리는 두 단어였다고 한다. 서로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이 말들은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과 연관이 있다.

한 예로 땡전 한푼 없는 밑바닥에서 시작해 1988년 말 종합주가지수 907을 기록하는 등 1985년 말부터 주가지수가 3년간 5.5배나 상승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바 있으며, 국제적인 위상도 덩달아 높아지던 시대가 80년대 말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우울한 표정도 있다. 특히 ‘빨리빨리’는 병으로까지 불리며 사회 전반에 걸쳐 적잖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94년에는 멀쩡하던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사고가 있었고, 채 1년도 안된 95년에는 쇼핑객들로 북적이던 삼풍백화점이 갑자기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를 두고 ‘빨리빨리병’이 초래한 사고라고 분석하는 이들이 다수였다.

대형 참사를 겪으면서 빨리빨리병을 극복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지만 아직은 아닌가 보다. 오는 7월1 청계고가도로 철거를 시작으로 시작될 청계천 복원 공사가 적합한 과정은 무시한 채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 복개공사와 함께 사라진 목조 가옥들과 생활 유품.
ⓒ 서울시
서울시는 당초 7월 1일 복원 공사 시작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고고학계를 중심으로 복원 공사 착공에 앞서 청계천 발굴조사를 먼저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23일, 서울시는 명지대 부설 한국건축문화연구소에 지표조사를 의뢰, 그 결과를 발표했다.

청계천 복개 도로 바닥 모래 속에서 동대문 남쪽 성벽 밑으로 청계천 물이 빠져나가도록 하기 위해 만든 5개의 아치형 수문, 이른바 오간수문(五間水門)과 돌다리의 일부로 추정되는 잔해 등 여러 개의 큰 석재들이 이번 조사에서 밝혀졌다.

이와 함께 그릇 아래에 묵서(墨書)가 적힌 분청사기 등 조선 후기 도자기 일부와 기왓장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청계천 바닥에 남아 있는 생활 문화재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 학계의 지적이다.

청계천은 조선 태종 6년인 1406년에 인공 하천으로 만들어진 후 몇 차례의 준설 공사가 있었지만 대부분 바닥에 쌓인 모래를 걷어내는 수준이어서 발굴 조사만 하면 일반인들의 생활사적인 풍경을 되짚어 볼 수 있는 물품을 다수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즉 조선 시대 이래 근 6백 년 동안 하층민의 생활 본거지 역할을 했던 청계천은 당시의 섭생과 질병까지도 알아볼 수 있는 생활 유물의 보고(寶庫)라는 것이다.

▲ 복개 도로 아래 뻘흙에는 조선 이래 생활 유품이 잠들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 권기봉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개발 독재 시대에 그저 낡은 것이라고 폄하하고 내다버렸던 싸리비나 요강 등의 생활 유물을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직원들이 서울 봉천동 판자촌과 마산 촌락가 등을 일일이 돌며 수거해 갔다는 일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시(市)의 경우 1900년대 초 지진으로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하천과 하수도를 발굴, 2백만 점에 이르는 유물을 버클리대 인류학박물관에 보관하며 근대 생활사에 대한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는 여유를 찾을 때가 아닌가 싶다. 과연 청계천 복원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서울시는 홈페이지(www.metro.seoul.kr/kor2000/chungaehome/seoul/main.htm)를 통해 광교와 수표교 등 청계천의 문화 유적지를 복원해 “600년 고도 서울의 역사성과 문화성을 회복”하는 데에도 그 목표가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 공사 시행에 앞서 발굴조사를 먼저 실시하자는 주장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현 태도와는 영 딴판이다.

서울시장의 공약 이행도 좋겠지만 서울 시민을 비롯 대승적인 차원에서는 사업 자체를 여유를 갖고 진행할 필요가 있으리라 본다. 서울시는 이번 서울시장 임기 안에는 설계만 완성해도 청계천 복원은 성공이라는 세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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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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