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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이한 우리 집 인효 인상이가 며칠 전에 집을 나갔습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1, 2학년생인 놈들이 집을 나가 들어올 생각도 안 합니다. 전주에 있는 둘째 큰아버지네로 '가출'한 지가 벌써 나흘째랍니다.
집을 나갈 당시만 해도 갈까 말까 머뭇거리던 놈들이었는데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 부부 딴에는 먹이고 입히고 아침마다 차 태워 학교 보내고 부모로서 할 것 다 했는데 말입니다. 또 엄마는 물론이고 아빠가 돈을 적게 버는 대신 늘 곁에 있으면서 함께 해줬는데 말입니다. 아, 컴퓨터 오락, 텔레비전 보는 것은 좀 선을 그어 놓고 보도록 하긴 했습니다.
자기들도 이제 다 컸다고 늘 함께 있는 부모들이 '지겨운' 것일까요? 부부 사이처럼 권태기 같은 것이라도 온 걸까요? 아니면 텔레비전을 실컷 보고 컴퓨터를 죽어라 할 수 있어서 일까요? 사실 텔레비전과 컴퓨터 사용은 우리 집이나 둘째 큰아버지네 집이나 별 차이 없을 것입니다. 둘째 큰엄마가 중학교 선생님이신데, 그런 꼴 그냥 보고 넘길 분이 아니거든요.
전화로 확인 결과, 오히려 집에서보다 더 잘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놈들이 집에서 보다 숙제도 더 잘하고 또 거기다가 국어, 수학에 동화책 읽기 등 '과외' 공부까지 하고 있답니다. 배신감도 이런 배신감이 없습니다.
사촌형은 키가 180센티미터를 바라보고 있는 고등학교 1학년 꺽다리고 또 그 밑에는 말수가 별로 없는 중학교 1학년짜리 누나가 전부여서 놀아줄 또래도 없는데 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둘째 큰아버지네 식구들 손에 쥐어 보낼 당시 우리 부부는 '이 놈들이 하루 이틀 밤 지내고 나서 새벽녘에 자다가 벌떡 일어서 엄마보고 싶다고 울고불고 집에 데려다 달라고 떼쓰면 어쩌지'하는 걱정까지 했답니다. 이제까지 살면서 엄마랑 하루 밤 이상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첫 날 밤을 지내고 나서 '엄마 나 잘 있어' 식으로 전화 한 통 걸려오더니 그 다음부터는 '땡'이었습니다. 아마 처음에 했던 전화도 둘째 큰아버지네 식구들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 다음부터는 우리 부부가 번갈아가며 확인 전화를 했지요.
"엄마 보고 싶지 않아?"
"아니?"
"너 저번에 아파트 닭장 같아서 싫다고 했잖아, 안 답답해…? 시원한 개울가에서 가재하고 놀고 싶지 않니?"
"아니, 엄마 우리 여기 계~속 있어도 돼지? 그럼 끊어…."
하루 밤을 지나고 이틀 밤을 지나도 대답은 대충 이런 식이었답니다. '이 놈들 어디 두고 보자 니들이 며칠이나 더 버티는지…' 벼르며 사흘째 밤을 지냈지만 갈수록 태산이었습니다.
"아빠, 나 어제는 동물원에 가서 기린, 호랑이, 원숭이, 낙타, 또 뭐더라…. 암튼 엄청 많이 봤는데, 오늘은 덕진 공원에 가서 보트 탔다."
"아빠 안 보고 싶어?"
"응, 그만 끊을게. 형아랑 놀다 왔거든…."
나흘째, 전주에서 가 볼만 한 곳 다 가봤으니 이제 좀 집 생각이 나겠지 싶었는데 전화 받는 억양과 태도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달라진 것은 우리 부부였습니다.
"집에 오고 싶지 않니?"
"아~아니."
"니들 거기 오래 있으면 둘째 아빠 엄마 힘들어 이제 와야지."
"조금 더 놀다 가면 안 돼?"
"안 돼. 내일은 와야 해. 알았지?"
"에이 더 있고 싶은데."
엄마 아빠 보고싶어 금세 달려올 것이라던 처음 생각하고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제는 엄마 아빠가 얼른 오라 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완전히 역전극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인효 녀석이야 몇 차례 '가출'한 경험이 더러 있고 또 눈치가 빨라 별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엄마 품에서 거의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인상이 녀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에는 어딜 가겠다고 해도 절대로 거기서 잠을 자고 오지 않았던 인상이었습니다. "잠자고 가야 돼? 그럼 안 가"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러던 인상이었는데 자기 형보다 한술 더 뜹니다. 이제 전화를 받으라 해도 받을 생각도 안하고 놀기 바쁘답니다. 때로는 공부하기 바쁘다며 전화도 안 받습니다. 억지 전화를 받고서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우리 여기서 오래 오래 있으면 안 돼? 아니, 하나도 안 보고 싶어, 그럼 끊을게."
정말로 정 떨어지는 소립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 때문인지 마음이 편했습니다. 솔직히 아이들이 보고 싶기는 했지만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는 녀석들이 고마웠습니다.
주변 사람들 중에는 더러 우리 집 아이들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모하고 늘 붙어 있으면 자립심도 없어지고 또 마마 보이처럼 될 수 있다는 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 두 녀석들은 부모와 늘 붙어 있었지만 분명 자립심이 강했습니다. 부모가 곁에 없어도 끄덕 없이 잘 놀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닷새째가 다 되도록 왜 부모를 그리워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둘째 큰아버지와 큰엄마가 동물원이며 공원 등 여기저기 데려가 신기한 것들 보여주며 잘 돌봐 주었고 또 사촌 형아와 누나들이 잘 놀아 준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촌놈들이다 보니 도시에서 제대로 살아보지 않았기에 낯설음에서 오는 어떤 신비로움, 뭐 이런 것에 매료된 것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 집 아이들이 부모에게 정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모가 곁에 없어도 찾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부모의 정을 많이 받고 자랐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런 이유가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집 촌놈들이 부모와 떨어져 당당하게 가출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것은 늘 자연과 함께 살아온 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는 녀석들과 늘 함께 하고 있지만 자연 속에 방목하듯 했었거든요.
녀석들이 늘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곤충들이며 꽃이며 나무며 개울과 가재, 하물며 흙과 돌멩이 잡풀 하나까지 온갖 자연물들이 녀석들에게 알게 모르게 힘을 길러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자연물들은 녀석들의 생명을 키워주는 또 다른 부모나 마찬가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