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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사건 이후 피해학생이 시달려야 했던 후유증. 당시 피해학생의 온몸에 이와같은 두드러기가 올랐다.
성희롱 사건 이후 피해학생이 시달려야 했던 후유증. 당시 피해학생의 온몸에 이와같은 두드러기가 올랐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던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들의 반응은 이와는 다르다. 과거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던 대학의 예를 살펴보면 성폭력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반감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다.

올해 초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벌어졌던 서울시립대의 경우 지난 5월 진행됐던 서명운동에서 전체 학생의 40%가 넘는 2700여명의 학생이 '가해교수 퇴진'에 서명했다. 또한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은 해당 교수의 수업에 출석하지 않고 수업 거부운동을 벌였다.

사건 해결에 참여했던 안효원(24·국어국문 3) 서울시립대 국문학과 긴급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역대 서명운동 중 가장 많은 수의 학생들이 참여했던 예"라며 "성폭력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반감이 아주 잘 드러났던 경우"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서강대도 마찬가지다. 서강대도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 여성위원회·총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대책위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김 교수 사건의 진상 조사 및 사퇴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2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이 서명용지에 사인했다. 서강대 개교 이래 이례적인 참여였다.

"우리도 할만큼 했다" - "성폭력 사건 다룰 자격없다"

이번 결정에 대해 여성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징계재심위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는 실정이다. 구관서 위원장은 "우리도 성추행·성폭행 사건의 경우에는 일반 사안보다 엄격하게 재심의 한다"며 "성추행 사건의 경우 재심의 신청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전체의 20% 정도로 다른 사안의 절반에 불과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 위원장은 징계재심위원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위원이 여성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현재 징계재심위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그리고 평위원 5명 등 7명으로 구성돼있다. 현재 평위원으로는 법학 교수, 중앙일간지 간부, 초등학교 교장, 고등학교 교장, 변호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구 위원장은 "현재 위원장을 포함해 7명의 위원 중 여성위원이 3명"이라며 "징계재심위가 성추행 사건에 대해 너그럽다는 평가는 지나친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징계재심위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이례적으로 (재심의) 청구인과 피청구인의 진술을 직접 듣고 재심의에 참고했다고 강조했다.

징계재심위의 한 관계자는 "지난 1일 약 1시간20분 동안 재심의를 청구한 김 교수와 그의 변호인, 그리고 피해학생과 학생의 변호인이 배석한 가운데 양측의 의견을 들었다"며 "보통 서류상으로만 재심의를 하는 관행에 비췄을 때 재심위로서는 최선을 다한 경우"라고 말했다.

올해 초 '교수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던 서울 시립대 국문과 학생회는 지난 5월 전 재학생을 대상으로 '성희롱 교수 퇴진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 서명운동에는 나흘 간 전체 학생중 약 40%가 참여, 높은 관심을 보였다.
올해 초 '교수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던 서울 시립대 국문과 학생회는 지난 5월 전 재학생을 대상으로 '성희롱 교수 퇴진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 서명운동에는 나흘 간 전체 학생중 약 40%가 참여, 높은 관심을 보였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하지만 이 역시 여성단체에서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얘기라고 비판했다. 정유석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장은 "단순한 성비의 문제로 설명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여성이라고 해서 다 성 인지적 관점에서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질"이라고 강조했다.

정 부장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배석한 가운데 양측의 진술을 들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정 부장은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와 연관된 물건만 봐도 신체·심리적인 반응을 일으킬 정도"라며 "그런데도 이러한 후유증을 무시한 채 두 사람이 배석한 상태에서 진술을 들었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혀를 내둘렀다.

"성폭력 저지르고도 교단에 설 수 있는 현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여성단체와 학생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현재의 상태로는 징계재심위가 교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재심의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유석 부장은 "이번 사안을 계기로 징계재심위가 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는 특별기구를 통해서 해결하거나 전문위원을 참여시키는 등 운영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와 관련해 교육부 장관의 면담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징계재심위의 잇따른 징계취소 결정이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학의 적극적인 대처를 누그러뜨릴 우려도 있다. 지난 2일 연세대에서 열린 '교수 성폭력 근절을 위한 결의대회'에서 교수성폭력근절을위한여성주의자연대회의는 다음과 같이 우려했다.

"이번 재심위의 결정은 교수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대학 내의 노력에 역행한다. 재심위의 결정은 절대적이므로 학교는 그 결정에 따라야 한다. 재심위의 결정 이후 (성폭력) 사건 처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각 학교의 태도에서 재심위의 역할과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재심위의 이번 결정은 결국 가해교수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교단에 서게 하는 기가 막힌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미 징계재심위는 김 교수의 해임을 취소했다. 몇 달에 걸친 조사와 회의 끝에 해임 징계를 내렸던 서강대는 징계재심위의 결정에 따라 징계수위를 낮춰야 한다. 김 교수에 대한 정당한 징계를 위해 3년을 싸웠던 서강대 학생들과 피해자의 노력도 결국 물거품이 됐다.

교원징계위는 '징계 등의 불리한 처분에 대해 법령을 근거로 공정한 재심을 하여 교원의 신분을 보장하고 교권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성폭력 교수의 교원과 교권이 어디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인지, 또 성폭력 사건에 대해 교원징계위가 적절한 재심의를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2년 여 노력 결국 물거품"
서강대 김 교수 사건 전말

서강대(총장 류장선)는 지난 8월 18일 교원징계위원회를 열어 제자를 성추행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한 영상대학원 김아무개 교수를 해임했다. 김 교수는 이미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법원으로부터 700만원의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였다. 또한 같은 해 학교 측으로부터 3개월 정직이라는 징계를 받은 후 올해 복직했으나, 피해학생을 또다시 괴롭혀 이같은 처분을 받았다.

김 교수는 2년 전인 2001년 10월 31일 대학원생들과 가진 회식자리에서 제자 최김희정(가명, 32. 서강대 영상대학원)씨를 희롱했다. 다른 남학생 등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김 교수는 최김씨에게 "이리 와 봐라", "너를 여인으로 만들고 싶다, 무슨 소리인지 아느냐, 네가 결혼하면 네 남편 사이에서 잠을 자고 싶다, 너와 키스를 하고 싶다"라면서 그의 손과 뺨 등을 만졌다. 희롱은 '말'로 그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최김씨의 몸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그의 뺨에 입을 갖다 댔다.

이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학부 여성위원회는 총학생회, 다함께 서강대 모임 등과 함께 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를 꾸렸다. 공대위는 김 교수의 사퇴 및 사과를 요구하는 대자보를 붙이는 등 학내 선전활동을 펼쳤다.

대학 측은 해를 넘기고 나서야 응답했다. 서강대는 2002년 1월 김 교수의 징계를 위한 교원징계위원회를 소집했다. 두 달간의 조사와 회의 끝에 같은 해 3월 서강대는 김 교수에게 정직 3개월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솜방망이' 징계였다. 그 이전에 김 교수는 이미 1년간 안식년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김 교수가 학교를 떠나 있으면서 파장도 잠잠해지는 듯 했다. 하지만 1년 뒤 '사건'은 계속됐다. 1년간의 휴식 후 다시 대학에 돌아온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이 아닌 최김씨가 있는 대학원실에 머무를 뜻을 밝혔다.

공대위는 다시 소집됐다. 학생들은 학교측에 '2차 가해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김 교수 수업에는 수업거부로 대응했다. 결국 대학 당국은 다시 징계위를 소집했고 지난 8월 김 교수에 대한 해임을 결정했다.

'김 교수 사건' 이후 서강대는 학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대학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올 2월에는 '반성폭력 학칙'(성폭력·성희롱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고, 학생생활상담연구소 산하에 '양성평등 성 상담실'(이하 성 상담실)을 개소했다.

이런 진통 끝에 올해 서강대는 지난 5월 국문과에서 벌어진 한아무개 교수 성희롱 사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피해자의 신고를 받은 성 상담실은 사건을 접수하고, 대학 측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교수-교직원'으로 구성된 대책위를 꾸렸다.

대책위의 진상 조사 후 징계위가 소집됐고 혐의사실이 확인된 한 교수는 7월 말 파면됐다. 중징계였다.

하지만 교원징계재심위는 올해 한 교수와 김 교수가 신청한 징계 재심의를 받아들여 한 교수 사건에 대해서는 절차상의 문제를 이유로 '파면취소' 결정을 내려 서강대에 재징계를 지시했고, 김 교수 사건에 대해서는 해임을 취소하고 '정직 3개월'로 징계 수위를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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