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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국빈 방문한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
한국을 국빈 방문한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
그는 8일부터 11일까지 우리나라를 국빈방문 하고 있는 알제리 대통령이다. 청와대는 알제리 대통령 방한에 대해 '마그레브 지역(북서 아프리카의 아랍지역) 국가원수 최초의 국빈방한'이라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외교가에서는 '한국 = 아시아의 대표적 친미국가'라는 등식이 아랍권에서 익숙한 상황에서 이라크 사태 이후 아랍국가의 정상이 방한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노 대통령도 이를 감안해 부테플리카 대통령에게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고 보니 95년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이후 아프리카 국가원수가 한국에 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국빈을 맞기 위해 여느 때처럼 청와대 앞길에는 방한원수국의 국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렸다. 9일 오전 10시 공식환영식을 시작으로 단독정상회담, 확대정상회담, 공식 만찬 및 공연 등 노무현 대통령의 하루 일정도 알제리 대통령에 대한 각별한 예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큰 소문 없이 찾아온 것처럼 알제리 대통령의 이름도 우리의 뇌리에서 금세 잊혀질 것 같다. 언론에서 그의 방한 기사를 크게 다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부장을 알제리로 보내 부테플리카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한 기사를 한 면 할애한 동아일보(9일자 12면)가 오버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청와대의 한 출입기자는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방한했을 때 언론이 보인 관심에 비하면 푸대접이 아니라 무대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제리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2단 기사로 송고했지만, 그 마저도 (신문에)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썰렁한 분위기 탓인지 정상회담을 다룬 보도자료에는 반기문 외교보좌관의 주문사항이 이례적으로 덧붙여졌다. 알제리 대통령이 먼 곳에서 우리나라를 방문하기 위해 전세기 내서 왔는데, 우리 언론은 외국정상의 방한에 너무 인색하다는 게 골자다.

그는 "미국도 우리나라 대통령이 찾아오면 상당히 다뤄주지 않냐?"고 반문했다. 미국 언론이 우리나라 대통령의 방문을 비중 있게 보도하는 것을 알제리 대통령의 경우와 곧바로 대입시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미국에게 한국은 3만7천여 미군이 주둔해있는 전략적 요충지의 성격이 강하다. 자국의 안보와 연관이 깊은 국가이니 외교관계를 조율할 파트너가 미국 대통령을 만나서 나눌 대화에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미국에 인접한 캐나다에서도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레어 영국 총리의 방문을 제외하고는 외국 국가원수의 방문이 큰 뉴스거리가 되지 않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후 한국을 찾은 외국원수들

6월3일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7월18일 존 하워드 호주 총리
7월20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7월25일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
8월25일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
11월6일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
11월13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12월9일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
그럼에도 우리 언론의 외교현안 보도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에게 편중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노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을 찾은 외국의 국가원수는 모두 8명. 그러나 블레어 영국 총리를 제외하고는 국내외의 주목을 끄는 데는 실패했다. (도표 참고)

권위주의 정권 시절 아시아, 아프리카의 국가원수 방한때의 극진한 환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1975년 7월 5일 박정희 대통령과 가봉의 봉고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주요신문들의 1면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82년 5월 도우 라이베리아 국가원수가 김포공항에 도착하는 장면은 전국의 TV로 생중계되기도 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대에 남발된 '외국 대통령 방한 기념우표'는 6공화국에 들어서야 없어지게 됐다.

모두가 우리나라와 북한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들의 지지를 얻어내고자 치열한 국제외교전을 경쟁을 벌였던 냉전시대의 산물이었다. 언론이 권력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사회적 의제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시대에 이르러서는 외국원수의 방한은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됐다.

그럼에도 언론이 공익을 위해 올바른 의제 설정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이르러서는 자신감을 잃게 된다. 반 보좌관은 대통령 특사로 알제리를 방문한 인연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알제리 대통령의 방한 기사를 잘 써달라"는 그의 주문을 알제리와의 친분으로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얘기를 전화로 들어보니 더더욱 그런 느낌이다.

"청와대 입장에서 그냥 섭섭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와 별로 상관없는 나라에서도 남북정상회담은 큰 뉴스로 다뤄졌다. 반면, 아랍권에서 중요한 정상회담이 있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뉴스 가치에 맞게 대접을 받지 못한다.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려면 유럽연합(EU)이나 아랍권 사태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는데, 우리 언론들은 너무 우리 중심으로 국제뉴스를 다루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제뉴스는 간단히 처리하면서도 이라크에서 근로자가 피살되자 대여섯 꼭지씩 내보내고 그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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