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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못 먹으면 전라도 사람 아니랑께!"
2002년 11월 18자 이 기사는 전라도 촌놈인 내가 홍어와 다시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홍어 못 먹는 사람은 전라도 사람도 아니다"는 말이 있다. "전라도 사람이 홍어를 못 먹는 대서야 어디 험한 세상에 나가 사람 행세나 하겠어?"라는 어른들의 말씀도 간혹 듣는다. 홍어가 대체 뭐 길래 그럴까?
홍어를 보고 자라고 홍어를 먹고 자라고 홍어를 갖고 놀았다. 우린 어렸을 적 '방패연'과 '홍어연'을 만들었다. '가오리연'은 만들지 않았다.
전라도 사람들은 대사집에 가서 돼지 작은 것 잡았다고 수군대지 않는다. 음식 여러 가지 장만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법이 없다. '홍어채'를 얼마나 맛있게 했는가를 두고 수군대고 쑥덕이고 흉까지 본다. 심하면 대놓고 음식 날라 오는 사람들을 두고 핀잔까지 준다. 아무 말 없으면 대체로 그건 잘 만든 거다.
여기까지는 서두에 불과했다.
대선이 한창이던 12월 4일에 쓴 "홍어탕 그 독특한 맛에 흠뻑 빠졌다"는 순식간에 조회수 1만8천 회를 넘더니 하루새 2만737회를 조회하고 90개가 넘는 꼬리말이 붙었다. 독자들은 밤 11시가 넘은 시각 전화를 해와 "'번개'를 치라!"고 닦달이었다.
문제의 기사 일부분을 인용한다.
"아줌마, 어떻게 끓여야 맛있다요?"하고 다 알고 있으면서도 능청스럽게 물어보았다.
"조금 큰 양재기에다 쌀뜨물을 붓고 매운 고추 쫑쫑 썰어 넣고 고춧가루 풀면 되지라~"
"채소는 무하고 또 뭘 넣어야 되는데요?"
"당근 조금하고 미나리 듬뿍 넣으면 향이 그만이지라우."
그렇다. 분명 홍어탕은 여름철에도 감자보다는 무가 최고다. 미나리도 들이나 냇가에 가서 돌미나리 뿌리채 뽑아 숭숭 썰어 넣으면 그 맛 시쳇말로 죽인다.
이렇다고 다 끝난 게 아니다. 말로는 쉽지만 한 번 해 본 사람은 홍어탕이란 게 보통 솜씨 가지고는 해내지 못한다는 걸 안다. 홍어탕을 끓일 때부터 신출내기 주부는 고역이다. 내 두 형수들이 손들어 버린 게 홍어탕 아닌가?
먼저 손에 묻히는 것은 아무나 못한다. 냄새도 냄새지만 눈에 들어온 내장의 모습은 말 그대로 썩은 것, 또는 썩다만 것, 고름 같은 것, 감기 철 농 짙은 아이 코가 흐느적거리듯 볼썽사납다. 이걸 만질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몇 안될 정도로 괴상한 것이니 엄두가 날까?
널찍하고 조금 큼직한 양은 냄비를 준비하고 재료를 씻는 둥 마는 둥 하여 채소를 준비하면 대충 준비 완료다.
꼬리 부분과 뼈, 내장을 넣고 양념하여 끓이다가 무와 홍당무를 조금 도톰하게 네모로 썰어 넣고 마지막에 미나리와 파를 썰어 넣으면 되는데 이 놈의 홍어탕은 옆에서 지켜보며 끓이지 않으면 끓으면서 암모니아를 발산하므로 한 눈 판 잠깐 사이에 모두 넘쳐 버리고 만다.
미리 불은 중불로 맞춰 놓고 숟가락 하나를 손에 들고 끓는 정도에 따라 서서히 저어줘야 한다. 과장도 않고 홍어탕이 끓으면서 글쎄 개 대여섯 마리가 개 거품 흘린 침처럼 대단한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 고춧가루를 이만한 양이면 두 숟갈이면 충분하지만 이 놈은 고춧가루 다섯 숟갈까지 잡아먹는다.
또한 홍어탕은 절대 오래 끓이는 음식이 아니다. 보통 무나 홍당무가 들어간 찌개나 탕은 20분 가량을 끓여야 하는데 홍어탕은 화학반응 탓인지 그 두툼한 재료가 2∼3분이면 물렁물렁해지고 조금 더 끓였다가는 흐물흐물해져 형제마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빨리 익는다.
드디어 홍어탕을 끓였다. 밥 한 그릇 푸고 소주 한잔 있으면 된다. 소주 안주로 토하탕과 쌍벽을 이룰 만하다.
아이들과 별미를 즐기지 않는 분들은 멀찌감치 물러나야 한다. 한 숟갈 떠 입에 넣기가 무섭게 코와 목구멍이 독가스에 콱 막히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렇게 두어 숟가락 떠먹으면 이내 목에서부터 막창까지 확 뚫리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먹는 암모니아 가스라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여름철 공중 화장실에 들렀다가 빠져 나올 때 느끼는 숨막힐 듯한 짜릿함!
이걸 보고 환장하지 않을 사람 있을까?
지금이야 새벽 3시에도 깨어있으면 나갈 수 있었지만 어떤 사람이 나올지 몰라 다음날로 미루자고 달래기 바빴다. 생판 처음으로 다음에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홍좋사모) 카페를 만들어 12월 6일 신당동에서 13명이 모임을 가졌다.
12월 11일에는 모임 발족 소식이 올라간다. 그러자 또 번개가 떴다. 대선 당일인 12월 17일에는 사람이 더 늘어나 20여 명에 가까웠다. 1차를 먹고 2차는 광화문으로 향했다. 가던 중 일행 한 사람이 <오마이뉴스>를 찾아가 술 한잔해야 한다고 우긴다.
사무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길라잡이가 되어 인솔해 가는 동안 사람들은 맥주를 열댓 병이나 사서 뒤따랐다. 마침 호외를 발간하던 편집 기자들은 난데없이 몰려드는 취객들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리 이겼기도 했으니 여기서 술 한잔하려고 몇 병 사왔습니다."
"……."
"오연호 대표님 있죠?"
최고 연장자께서 나서서 말을 하니 속수무책이다.
"어디 좀 앉을 데 없을까요?"
"저기 회의실로 오시죠."
일단 맥주를 종이컵에 따라 한잔씩 마시고 있는 사이 오연호 대표가 나타났다.
"자, 대표님도 한 잔 하시죠."
"저, 지금 신문 찍어야 되는데요."
"그래도 한 잔만 드시면 되잖아요. 자 받으세요."
엉겁결에 침입자들에게 당한 상황이었다. 나도 말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사온 것 중 1/3을 남기고는 예닐곱 잔씩을 마시고 빠져 나와 불꽃잔치를 보고 헤어졌다.
그 뒤로 회원들 간의 만남은 일주일이 멀다고 이어졌다. 어떤 주(週)는 일주일에 여덟 번이나 먹는 경우도 있었고 하루 동시에 두 곳을 옮겨 다니며 먹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2002년 며칠은 지났고 새해가 밝았다.
방송사에서 인터뷰도 이어졌다. 홍어집으로 불러서는 홍어를 먹으라는 게 주였는데 텔레비전에 5~6회, 라디오에 세 번 출연했다. 그 때마다 홍어에 관한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메뉴였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홍어 가게가 급속도로 늘어갔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이 때 홍어집 숫자는 1년새 세배 가량 늘었고 차차 매장 규모도 커져갔다. 이러니 술 한잔 생각날 때면 회원들이 부르고 매장에서 불러주니 술값보다 교통비가 더 들어가는 불상사까지 초래되었다.
3월초에는 방송사와 동행 취재로 목포에서 이틀이나 기다린 끝에 홍어의 고장 신안군 흑산도를 회원들의 도움을 얻어 방문했다. 그 때 나온 기사가 3월 14일자로 "끈덕지고 차진 인절미 씹는 맛, 흑산 홍어"이며 다음날 "중국 '쌍끌이' 철수로 홍어 풍성"과 연이어 "엇야~ 1번선 한 마리! 16번 58만원"을 썼다. 이를 계기로 간만에 오리지날 흑산 홍어를 밥 먹는 횟수보다 더 먹는 행운을 누렸다.
몇 번의 방송과 내 기사를 통해 회원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정기 모임에 번개 모임 참석하느라 수많은 밤과 시간을 투자했다.
홍어와 막걸리의 만남에 절었고 두툼한 홍어에 3년 묵은 김치, 돼지고기를 싸서 입안 가득 넣어 오물오물 했고, 톡 쏘는 홍어찜에 중독 되어 갔다. 홍어탕을 찾아 입천장 벗겨지는 줄 모르고 헤맸다. 소금에 찍고 간장에 찍어 내 몸에 쌓인 노폐물을 버렸다.
몇몇 회원과는 홍어 삭힌 정도보다는 씹히는 맛을 알아 가는 경지에 이르기도 했다. '절대미각'의 경지 도달할 수 있겠다는 자부심을 얻는 더없는 한 해였고 '한국의 맛 지도'를 완성하고픈 욕심까지 생기기도 했다.
이렇게 먹은 횟수가 100회가 넘는다. 사흘이 멀다고 먹은 홍어 요리. 어떤 이는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김치와 '거시기'라는 말과 홍어를 꼽는다. 발효 음식의 결정판 홍어. 분명 잘 삭힌 홍어는 두 번째 입에 대는 순간 빨려들고 만다. 중독된다. 마니아가 되고 만다.
5월 2일 "'홍어'가 뭐 길래, 환장한 사람들이 그리 많을까?"와 7월 15일 "홍어 먹다 입안이 확 벗겨진 분과 야밤 통화"를 써서 독자에게 보고한 바 있다.
현재 회원은 1000명을 바라보고 있는데 연령은 60대 몇 분, 50대 조금이고 3, 40대가 주다. 20대는 조금 있을 뿐이다. 이 사람들이 모여 이제는 단지 홍어뿐만 아니라 어릴 적 먹었던 어머니 맛을 찾아가는 전통음식 애호가의 모임으로 거듭나고 있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미국여자프로골프대회가 열렸을 때 천재골프소녀 위성미라는 미셸 위는 모국에 돌아온 날 첫마디가 "홍어를 실컷 먹고 싶다"고 했다. 결국 만나지는 못했지만 홍어는 이제 단지 전라도 음식이 아닌 음식 대가, 미식가를 사로잡아 대중화 일로에 있고 우리 맛의 세계화에 한 걸음 바짝 다가섰다. "미셸위와 홍어찜, 홍어회를 같이 먹고 싶다"고 한 내 주장은 머잖아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
결국 우리는 11월 정기모임을 홍어 도시 목포로 원정 가서 치러냈다. 다시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간직하고 돌아온 다섯 시간이나 걸린 먼 곳에서 만난 김국과 꼬막과 전어회와 세발낙지, 인동주 그리고 삼학도(三鶴島)와 유달산….
지난 1년은 내게 소중한 시간이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고향 사람들과 만나고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났다. 홍어와 막걸리로 내 몸을 축였다. 어렵던 한 해를 뭇 사람들과 같이 지낼 수 있어 행복했다. 몇 년간 사람을 만나지 않았던 침침한 터널을 벗어나 어울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 2003년을 며칠 남기지 않은 오늘 홍어와 나 그리고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과 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로 발전했다. 며칠 전 12월 6일이 1주년이었지만 송년회와 함께 오는 19일 흑산도 홍어와 참꼬막, 막걸리를 놓고 우린 첫 돌잔치를 조촐하게 연다. 자축하는 셈이다.
음식도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대사 치르는 어릴 때 남다른 추억을 갖고 있는 분과 이 자리를 빌어 애독자와 나를 아끼는 모든 분들을 초대한다.
덧붙여 김규환의 <잃어버린 고향풍경>과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를 1000회까지 지속하여 독자들의 허기진 우리 맛에 대한 향수를 자극할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