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부터 시작된 <중앙일보>의 시리즈 물인 '세계는 교육혁명 중'이란 기사를 필두로 보수언론은 때를 만난 듯 다시 '평준화 해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 해 학비가 1천만원을 넘는 중국의 사립학교와 영국의 이튼스쿨과 같은 '귀족학교'가 마치 국가경쟁력 강화와 교육혁명의 표상인 듯한 보도가 흘러나왔다.
경기도, 이쯤 되면 '평준화 깬다'는 얘기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경기도는 11일 '특목고 벨트'까지 만들겠다고 나섰다. 이미 지난해 초 발표한 대책을 재탕한 것이긴 하지만 '경기도에 2010년까지 특목고를 26개인 상태와 자립형 사립고를 1개 이상 만들겠다'는 계획은 교육계를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이쯤 되면 고교입시를 부활해 '평준화 깬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 <동아>는 13일치 사설에서 경기도 구상, 정확히 말해 '지난해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나라당 손학규 지사'의 교육구상을 칭찬하고 나섰다. 전국 학원에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특목고 진학반'이 생길 정도로 사교육 열풍의 진원지이며, 과학·외국어에 대한 조기 교육이라는 특수목적보다는 입시명문이라는 특수목적에 충실한 뒤집힌 특목고의 현실엔 애써 눈을 감았다.
이처럼 공교육 체제를 뒤흔들고 있는 이상한 태풍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교육계 안팎에서는 바로 참여정부의 두 번째 교육부총리를 맡은 안병영 장관을 지목하고 있다.
안병영 부총리와 이상주 부총리의 '코드 정치'
취임 전 학술대회에서 "아마추어리즘의 전형, 코드 정치"라고 현 정권을 몰아붙이던 그가 "나는 국민 코드"라고 말할 때부터 이런 사태는 예감됐다는 것이다. 이제 그의 취임 일성인 '엘리트 교육'과 '특목고·영재고 확대' 방안이 과연 국민코드와 부합되는지 따져볼 때가 된 것 같다.
2002년 초에 취임한 이상주 전 부총리도 입각 전 '전교조 합법화·평준화 정책 등 김대중 정부의 교육정책'을 거세게 비난하다 취임 일성으로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 확대' 방안을 들고 나온 사실은 안 부총리의 행보와 견줘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목고 확대 반대를 지론으로 갖고 있던 윤덕홍 전 부총리는 취임 초 '수능 자격고사화' 발언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조중동 등 3개 언론은 평준화 정책을 통한 공교육 강화 방안을 내세운 윤 전 부총리를 과녁 삼아 잇따라 화살을 쏘았다.
반면 취임 초 '엘리트 교육 강화', '특수목적고 확대' 등의 발언을 쏟아 낸 안 부총리에겐 그 태도가 정 반대다. 사사건건 벌인 시비 대신 오히려 그를 거들고 나선 것이다. 반면 <한겨레> 등 중도개혁 성향의 신문들은 안 부총리를 쏘아붙였다. 왜 그랬을까. 안 부총리의 최근 발언들은 보수언론이 사시처럼 내세우는 '평준화 해체'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안 부총리 거들고 나선 조중동
13일 현재 교육부에서 낸
이란 인터넷 신문 사이트의 머릿기사는 <조선>이 안 장관을 인터뷰한 내용을 전재하고 있다. 안 부총리는 여기서 "(평준화 틀을 깨려는 것이 아니라) 평준화를 보완하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다음과 같은 약속도 빼놓지 않았다.
"공교육의 유형과 경로를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목고·특성화고·영재고·국제고 등을 통해 다양화되고 경쟁력 갖춘 교육을 이뤄야 한다."
참여정부 초기 인수위원회는 보고서에서 '특목고에 대한 실사 작업을 통해 그 역할을 재검토하겠다'고 사실상 특목고 축소·조정을 선언한 바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안 부총리의 '엘리트 교육강화와 특목고 확대론'은 시장주의자 코드, 보수언론 코드, 한나라당 코드로 비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2002년 말 대선을 앞두고 교육계에서 펼쳐진 평준화 논쟁과 한나라당·민주당의 교육공약을 떠올려 보면 이런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이 당시 한나라당 교육공약을 직접 만든 김정숙 의원은 교육전문지 기자들을 초청해 연 '교육공약 설명회'에서 다음처럼 말한 바 있다.
"우리가 사실 국민여론 때문에 고교 평준화 해체를 공약으로 넣지 못한 것이다. 특목고 확대 등 고교체제 다양화가 바로 평준화 해체하자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우리 후보(이회창 총재)는 참 조심스런 성격을 갖고 있는 분이다."
초중고에서 인성교육이 시험훈련으로 바뀐다면…
'옷에 묻은 때가 옷이 아니듯 시장경쟁 논리는 교육이 아니다'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낸 바 있는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교육행정학)는 최근 펴낸 <속설과 진실>(교육비평)이란 책에서 "시장주의에 바탕한 논리는 비교육적이며 교육에 반하는 모습을 연출할 뿐"이라면서 "학습과 비판적 사고를 촉진시켜야 할 교육이 오로지 비용을 최저로 유지하면서 시험을 준비시키는 훈련으로 뒤바뀌어서야 되겠냐"고 최근의 교육논란에 대해 한탄했다.
국민 관심사인 사교육대책 발표를 앞둔 안 부총리는 또 다른 사교육 열풍을 부추길 '특목고 확대'와 고교 입시 부활 우려에 대해 어떻게 답할 것인가. 1월 중순께 들어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듯한 그의 발언이 진심이라면 당장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월권행위'에 대해 교육수장으로서 한마디해야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