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문예사상가 롤랑 바르트는 그의 대표적 저서 중의 하나인 <신화론>에서 부르주아 신화의 대표적인 수사법 중의 하나로 ‘예방접종(vaccine)’을 들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예방접종은 근본적인 악을 더 잘 숨기기 위해서 계급 제도의 부수적인 악을 인정하는 것”이며, “잘 알려진 악에 대한 약간의 예방접종을 통해서 집단적인 상상을 면역”시킴으로써 “보편화된 전복의 위협으로부터 집단적인 상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시대의 신화학자 이윤기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2>에서 풀어놓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 역시 금기(禁忌)에 대한 일종의 예방접종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것은 ‘근본적인 악을 더 잘 숨기기 위한’ 은폐의 수단이 아니라 ‘신과는 다른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기 위한’ 계몽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롤랑 바르트의 ‘예방접종’과는 구별된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2>에서 이윤기가 예방접종의 대상으로 손꼽는 금기로서의 사랑의 형태는 수간(獸姦), 근친상간(近親相姦), 동성애(同性愛), 자기애(自己愛) 등이다.
미노스왕의 왕비 파시파에와 포세이돈의 황소 사이에 태어난 반인반우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는 수간이 금기임을 보여준다. 남편의 전처 아들을 사랑한 파이드라, 쌍둥이 오빠를 사랑한 뷔블리스, 아버지를 사랑한 스뮈르나 등 근친상간을 꿈꾼 주인공들은 모두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근친상간하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이 그의 아버지인 라이오스가 젊었을 때 자신의 동성애를 거부한 피사의 왕자를 은밀히 죽임으로써 헤라 여신의 노여움을 산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동성애 또한 금기임을 암시한다. 이와 함께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한없이 바라다보다 죽은 나르키쏘스의 이야기는 지나친 자기애 역시 금기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불륜(不倫)은 금기의 목록에서 빠져 있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를 살해한 동기를 깊이 추적해 들어가면, 어머니의 불륜이나 남편 살해라는 표면적인 살해 동기 밑에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한 딸 엘렉트라의 빗나간 애정이 깊게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자신의 불륜이 아니라 딸의 근친상간의 욕망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광범위하게 불륜이 유포되고 또 조장되기까지 하는 것은 이처럼 고대로부터 불륜은 금기가 아니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금기로서의 사랑은 그 행위의 주인공들이 인간일 경우에 문제가 되지, 신일 경우에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
헤르메스 신이 암염소를 건드려 낳은 염소 닮은 괴물 판은 미궁에 갇히기는커녕 양치기들의 신으로 떠받들여졌다. 제우스신과 헤라 여신이 남매지간이라는 사실은 근친상간이 신들에게는 금기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태양신 아폴론의 동성애 대상이었던 미소년들(인간들)은 하나 같이 요절하였지만 아폴론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는다. 그리고 어떠한 신이든 주관하는 분야가 뚜렷이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은 신들의 존재가 자기애에 기반함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통하여 금기는 곧 신들과 인간의 영역을 나누는 경계가 됨을 바로 눈치챈다. 즉, 인간은 금기의 내부에 있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그 금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에 신은 금기의 외부에 있어서 모든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2>에서 펼쳐 보이는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들이 신들의 이야기보다는 이 금기에 도전한 인간들의 실패담과 파멸의 드라마에 더 많이 기울어져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즉, 수간과 근친상간과 동성애와 자기애와 같은 사랑의 형태는 인간에게는 금기이며 신에게는 금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려줌으로써, 신화를 통한 금기에 대한 예방접종을 시도하고 있으며 우리 시대의 올바른 사랑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져 있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금기에 도전하는 우리 인간에게 신이 띄우는 경고의 메시지인 동시에, 신화학자 이윤기가 신화를 통하여 우리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최후의 전언이기도 한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2>
이윤기 지음, 웅진닷컴 펴냄, 2002년 2월
이 기사는 인터넷 서점 YES24의 독자리뷰에도 기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