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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진닷컴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미노스의 미궁'이 버티고 있다. 그는 "신화는 미궁과 같다"는 말로, 신화 읽기의 제1관문으로 미노스의 미궁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한다. 한번 들어가면 그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그 미노스의 미궁 속에서 테세우스가 식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다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열쇠는 아리아드네가 준 실타래였다.

그렇다면, 신화가 암시하고 있는 그 깊은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우리 삶과 관련지어 해석하려는 독자들이 신화라는 미궁 속으로 들어갈 때 지녀야 할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무엇인가? 그건 바로 '상상력'이라고 이윤기는 말한다. 따라서 각기 다른 상상력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같은 신화라도 각기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소설가 이승우의 단편소설 <미궁에 관한 추측>을 읽어보면, 이윤기의 이러한 관점이 훨씬 잘 이해된다. 이 소설에서 이승우는 '장 델릭'이라는 프랑스 소설가(아마도 가공의 인물임이 틀림없는)의 알려지지 않은, 같은 제목의 소설에 기대어 미노스의 미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법률가의 시각으로는 미노스의 미궁은 중형을 선고 받은 죄수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기 위한 '감옥'이다. 종교학자는 미노스의 미궁이 당시 신적 숭배의 대상이었던 미노타우로스를 더욱 신비화하고 성스럽게 하기 위해 고안된 특별한 양식의 '신전'이라고 말한다.

건축가는 미궁을 설계하고 지은 다이달로스에 주목하여, 미노스의 미궁은 다이달로스의 예술가적 야심에 의해 축조된 하나의 '예술작품'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연극 배우는 미노스의 미궁은 사랑에 빠진 왕비 파시파에와 다이달로스가 미노스 왕 몰래 사련(邪戀)을 나누기 위한 '밀회의 공간'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렇듯 신화 읽기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그 다양한 해석은 각기 진실의 한 부분을 이룬다. 신화가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도 빛이 바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풍성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신화가 예나 지금이나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읽히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터이다.

이와 더불어 신화는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 잊혀진 고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결정적 단서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의 대상이 된다. 실제로 미노스의 미궁은 영국의 고고학자인 아서 에반스가 1900년 크레타섬에서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소설가 이승우의 말처럼 신화 읽기는 '신화와 역사의 수렁을 메우는 벽돌 조각 하나를 찾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신화 읽기에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는 신화란 본질적으로 상상력(허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상력은 땅(역사)의 견고함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이야기(신화) 속에 묻어 있는 상상력의 층을 구별해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이야기를 붙들고 있는 본래의 역사적 사실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화 속에 부장한 역사적 사실은 상상력이 풍부한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발굴되어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다이달로스가 그의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만들어 달고 미궁을 빠져나왔다고 하는 그 밀랍의 날개와 같은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면, 미궁, 즉 신화의 전모를 저 상공 위에서 내려다보며 온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날아오르려다가 오히려 태양신 아폴론의 뜨거운 빛살에 날개의 밀랍이 녹아 추락한 이카로스의 운명이 보여주듯이, 그것은 신이 용납하지 않는 일이다. 신화는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 신(神)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에 기대어 신화라는 미궁을 한 발 한 발 더듬어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미궁 속의 미노타우로스(신화가 지니고 있는 의미 또는 역사와 관련된 결정적 단서)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당황하지 말고 우리의 유일한 무기이자 최후의 무기이기도 한 상상력의 검을 꺼내들어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내리쳐야 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경험 많은 미궁 탐험 전문가가 그려 놓은 상세 지도가 있으며 그 지도의 곳곳에 그가 메모해 둔 우리식의 익숙한 상상력이 있다. 이제 그 지도책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갖고 미궁(신화)으로 뛰어들어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는 순전히 우리 독자들에게 달려있다.

아서 에반스처럼 신화 속에서 역사를 발견할 것인가? 아니면 신화의 숨겨진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titan’, ‘ocean’, ‘museum’, ‘giant’, ‘fortune’, ‘chronicle’, ‘psychology’, ‘panic’ 등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 단어들의 어원이 어디에 뿌리를 대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데 그칠 것인가?

미궁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대여, 지금 미궁의 입구에 서 있는 이여, 부디 상상력이 그대와 함께 하기를, 그리고 꼭 살아 돌아오기를……!

덧붙이는 글 |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웅진닷컴 펴냄, 2000년 6월

이 기사는 인터넷서점 YES24의 독자리뷰에도 기고했습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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