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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쓸 것 없다니요?"

"오늘 포장께서 그렇게 일렀네. 요즘 시전에서 물건을 훔쳐 가는 좀도둑들이 날뛴다니 이에 신경 쓰게나."

백위길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강석배와 만나기 위해 몇 일간을 기방 근처에서 서성거릴 정도로 신경 쓴 일이 아니었던가. 백위길은 박춘호를 찾아가 따지듯이 물었다.

"어찌 된 일인지 좀 더 상세히 얘기해줄 수 있사옵니까?"

박춘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일은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게!"

화를 내며 돌아서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박춘호를 보며 백위길은 소매 속에 넣어둔 엽전 꾸러미의 무게를 느꼈다.

'결국 포도청이란 데가 이런 곳인가?'

이유도 말하지 않는다는 건 박춘호도 강석배나 한량일행과 모종의 접촉이 있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기에 충분했다. 백위길은 시전에서 일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퇴청할 무렵이 되어 곧장 기방으로 행했다. 강석배를 통해 돈을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아니 오늘도 여기 오셨수? 애향이는 오늘 없는데?"

행수기생 윤옥이 무슨 일이냐는 듯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백위길을 맞이했다.

"애향이를 찾아온게 아니라… 강별감을 찾아온 거요."

"강별감? 어제 그 난리를 치더니 강별감은 또 왜 찾수? 강별감이야 딴 날은 몰라도 오늘은 분명히 안 올거요."

윤옥은 담뱃대와 부싯돌을 꺼내더니 백위길에게 불을 붙여달라고 요청했다. 양 볼이 쏙 닿도록 담배를 깊게 들어 마신 윤옥은 아직도 안가고 뭐하냐는 듯한 눈빛으로 백위길을 쳐다보았다. 백위길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윤옥을 바라볼 뿐이었다.

"애향이 고년이 안 오면 강별감은 여기 올 일이 없다우! 알았으면 가보슈."

"아… 예."

허탕을 치고 돌아온 백위길은 소매속에 넣어둔 엽전 꾸려미를 만지작거리며 애향이를 떠올렸다. 강석배가 애향이에게 관심이 있다고 여겨지자 백위길은 왠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거 어젯밤에 신세도 졌으니 집으로 가서 인사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지라 찾아가기도 어려울 때였고 백위길로서는 괜히 자기 속만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 뭐 장작거리라도 좀 해 가지고 놔두고 가면… 어차피 여자들만 있는 집에 그런 식으로 도움을 줬다 한들 흉이나 되겠는가?'

그렇다고 당장 장작거리를 구하러 갈 수는 없는 지라 백위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지게에 장작거리를 한 가득 지고 가는 이가 눈에 백위길의 띠였다.

"이보시게. 거 부탁하나만 함세."

"무슨 일이시오?"

"거 지게 채로 장작을 내게 좀 파세나."

"이건 파는 것이 아니오."

"두 냥 주겠네."

두 냥을 주겠다는 말에 지게를 지고 가던 사람은 아예 자기가 실어놓을 곳까지 짊어지고 옮겨주겠노라고 했고 백위길은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리며 나중에 채워 넣을 양으로 옴 한량에게서 받은 엽전 꾸러미에서 두 냥을 빼서 건네어 주었다. 지게를 짊어지고 애향의 집으로 향하며 백위길은 속으로 되뇌였다.

'난 그냥 어려운 이를 도와주는 것 뿐이야. 난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게 아니라구.'

백이길이 애향이 집으로 가는 산길에 다다를 때쯤 백위길을 알아보고선 불러 세우는 이가 있었다.

"이보게나! 백포교! 지게까지 지고 어딜 그리 바삐 가는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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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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