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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땡추 일당이 투전으로 밤을 세울 때, 백위길은 새벽부터 일어나 장작거리가 잔뜩 실린 지게를 지고 애향이의 집으로 향했다.

'이왕 가져다 주려고 한 것, 몰래 가져다 놓고 모른 척 하면 될 것 아닌가.'

백위길은 속으로 자신이 어리석다고 비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설레었다 느닷없이 마당에 쌓여있는 장작거리를 보며 애향이는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 백위길은 부엌에 들려 쌀독을 살펴보았다.

'허! 쌀이 없지 않은가?'

그제 애향이가 기방에서 가져왔다는 쌀은 얼마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백위길은 잠시 망설이다가 소매 속에 넣어두고만 있었던 엽전꾸러미를 독 안에 살짝 놓아두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애향이의 집을 빠져나왔다.

'내가 미친 건가? 저 돈은 내 돈이 아니야...... 돌려줘야 할 돈일 뿐인데......"

백위길은 속으로 후회를 하며 계속 포도청으로 한참을 내달렸다.

'아니야, 어차피 저들이 바라는 대가라는 건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마라는 것 아닌가. 저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도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하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될 일......'

"백포교!"

백위길이 깜짝 놀라 뒤를 보니 이순보였다.

"아니 그렇게 불렀는데도 어찌 대답이 없는가? 아직 잠이라도 덜 깬 건가?"

"아...... 죄송합니다."

"잠깐 나 좀 봅세."

백위길은 이순보가 또 무슨 일로 야단이라도 칠까 답답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우포도청 뒤편의 으슥한 곳으로까지 간 이순보는 백위길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 요사이 김포교와 함께 기방에 자주 드나든다지?"

'이런! 그 일로 오해를 하는 건가?'

백위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박포교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란 말로 얼버무렸다.

"그래? 그 '지시'란 게 기생들 치맛자락 사이를 엿보라는 것은 아닐 진데 좀 더 자세히 말 좀 하게나."

'포장께서 이 일에 대해서 발설하지 말라하지 않았는가? 차라리 기생들 보러 갔다고 하고 몇 마디 잔소리나 들으면 될까?'

백위길은 난감했다. 뒤쫓던 자들의 돈까지 받은 자신으로서는 앞뒤를 맞춰 거짓말을 하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백위길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이순보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말하기 어렵다 이거군...... 자네 이필호란 사람을 아나?"

"모르옵니다."

"이필호란 이름을 가진 한량을 보면 내게 말해준다고 약조하게."

백위길로서는 밑도 끝도 없는 소리였지만 일단 불편한 자리를 빠져나갈 요량으로 대답만 하고서는 아침조례가 있다는 연유로 빠져 나가려했다. 이순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백포교! 그 자의 인상착의 정도는 들어야하지 않나?"

"예......"

"물색도포를 즐겨 입으며 이마에는 혹이 있는 자가 이필호일세. 전에 한양을 떠났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요사이 나타날 듯 해서 말이네."

"그런데 그 자는 왜......"

"포교가 그런 사람을 찾는 이유가 뭐겠나! 토 달지 말고 내 말이나 잘 듣게!"

'이런 난장맞을! 부탁을 해도 모자랄 판에 야단을 쳐?'

백위길은 굳은 표정으로 욕을 억누르며 이순보에게 인사를 한 뒤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갔다.

'가만있자...... 전에 머리 민 한량 중 하나가 이마에 혹이 있었는데? 설마?'

백위길은 혹시 그 자가 이순보가 말하는 자가 아닐까 싶었지만 아무려면 어떻겠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포교 같은 이에게는 앞에서만 굽실거리고 뒤로 무시하는 게 최고지 뭐! 얼어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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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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