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작년 여름에 갔었던 아비뇽 페스티벌이 떠올랐다. 칸이 세계적 영화제로 유명하다면 아비뇽은 세계적 연극제로 유명한 도시다.
매해 7월이면 수십만의 인파가 프로방스의 역사도시 아비뇽으로 모여든다. 아스팔트위로 피어오르는 몽롱한 아지랑이와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태양이 남 프랑스의 7월 더위를 실감나게 하지만, 해변도시 대신 이 곳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은 호기심과 설렘에 눈을 초롱거린다. 연극, 뮤지컬, 무용 등의 새로운 작품들이 이 곳을 통해 배출되기 때문이다. 창조적 문화행사에 목말라 하던 이들에게 더 없이 좋은 갈증해소의 기회가 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작년 '아비뇽 페스티벌'은 개최되지 못 하였다. 프랑스 정부가 재정적자를 이유로 문화예술계 연금 삭감정책을 내놓자, 이에 항의하여 예술인 노조가 파업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일의 특성상 문화예술 활동인력 대부분은 불규칙 임시고용 형태로 되어있다. 그래서 최소한의 노동시간을 전제로 실업수당이 주어지는 사회보장 제도는 이런 예술 창작인력들에게 중요하다. 창작활동의 자율성과 계속성을 보장받기 위한 안전망인 셈이다. 아비뇽 페스티벌 역시 이런 비정규직 인력들에 의해 움직여지는데, 이들의 참여거부로 행사는 결국 무산되었다.
나 역시 TV를 통해 시위장면을 보았지만, 관례로 봤을 때 5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갖는 국제행사가 그렇게 쉽게 무산될까하는 생각에 아비뇽행 TGV에 망설임 없이 몸을 실었다.
파리에서 3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도시 아비뇽은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엄청난 사람들과 수많은 축제포스터로 활기가 가득 차 있었다. 숙소마다 내붙은 '빈방 없음'이란 표식이 싫지 않았다. "역시, 극적 타협은 이루어지고, 축제는 개최되는 거였어!"라는 혼자만의 공상에 마냥 즐거웠다.
저녁이 되자,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었다. 고풍스런 고성마다 조명이 비춰졌고, 그 아래에서 다양한 공연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수많은 인파들은 여름밤의 더위도 잊은 채 이를 즐기고 있었다. 유럽에 온 후 10시 이후의 음주가무와 고성방가를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이들의 즐거운 일상탈출은 친근하게 여겨졌다. 자정까지 이어지던 이 흥겨움은 대로의 차량통행이 재개되며 서서히 마무리되었다. 각자의 얼굴마다 아쉬움이 잔뜩 묻어 났지만, 내일을 위한 여운을 남겨야 하는데 공감하는 듯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전날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돌아보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거리공연의 내용들이며 나눠주는 홍보물을 아무리 보아도 눈길을 끄는 작품이 없었다. 세계적 공연예술제라는 명성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일까. 그때까지 나는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행사가 무산되었음을 모르고 있던 것이다. 57회 행사는 자율적 참가자들에 의해 진행되는 오프행사가 대신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깨달음을 느끼자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스스로의 자생력을 키워낸 행사의 주체성과 결국 이런 큰 규모의 행사까지 저지시킬 수 있는 비정규직 노조의 당당함은 옳고 그름을 떠나 부러운 모습이었다. 예술분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실업수당은커녕 시간 내·외 임금조차 제대로 책정되지 않는 게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해외시찰을 나서는 많은 분들에게 다른 나라의 발달한 문화산업에 찬사를 보내기에 앞서 그들의 문화정책을 들여다보길 요구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부탁일까. 지금 이 시각에도 무명의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예술과 생활고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 결국 예술을 포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