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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구요~ 저는 학교에서 제발 바쁜 애들 머리 가지고 좀 안 괴롭혔으면 좋겠어요. 아니 세상에 살다 살다 머리 짧다고 공부한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봐요 선생님은 들어 보셨어요?"

월요일 구술연습시간. 기습적인 질문에 아이들은 와락 웃었고 선생님은 순간 당황했다. 그날은 휴대폰을 학교에 가져오는 문제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은근슬쩍 두발이야기를 꺼냈다.

"니가 정말 바쁘니?"

발표가 끝난 직후 선생님이 물었다.

"예~ 제가 보기에는 한가해 보여도 사실은 이래저래 바쁘지요."
"니가 뭘 하는데?"
"뭐! 그냥 이래저래…."

선생님은 의외로 졸업할 때까지 머리를 길러도 좋다고 허락해 주셨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뜻밖의 수확(?)에 기분은 좋았지만 나 혼자서만 운 좋게 빠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렇게 쉬운 거라면 그냥 다 같이 기르면 좋을 텐데…."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두발규제는 교육하고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인권침해"라고 말하고 싶었다. 또한 아이들도 원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사실 '인권' 이라는 단어는 학교에서 꺼내기 쉬운 말이 아닐 정도로 낯설다. 또한 선생님이 '네가 정말 바쁘냐?'는 식으로 물어보시니 어영부영 얼버무린 점도 없지 않아 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두발규제를 당했다. 그때는 인권이니 뭐니 하는 걸 알 나이가 아니었지만 중학교에 입학한다는 이유만으로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머리를 잘라야했다. 그때 나는 죄수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알 수 없는 수치심에 미용실에서 울어버렸고, 당황한 미용실 누나는 발을 동동 굴렀던 것으로 기억난다.

▲ 여전히 학교내에서의 두발규제는 존재하고 있다. (아이두 두발제한 토론방에 올라온 게시물)
ⓒ Leon
그후 2000년 노컷운동이 한창일 때 나는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학교 홈페이지에 두발자유화에 대한 이야기 글도 여러 편 올렸지만 잠깐 이야기거리가 됐을 뿐 끝내 아무런 답도 얻지 못했다.

노컷운동이 한창 진행되자 교육부에서는 "두발문제를 학교 자율에 맡기겠다"며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라"고 했다. 몇몇 학교에서는 전면적으로 두발자유화를 시행하겠다고 나섰으며, 언론에서도 노컷운동에 대한 뉴스를 전했다. 그리고 노컷운동은 서서히 잊혀져 갔다.

단순히 잊혀졌다고 해서 노컷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예전같이 극단적인 규제만 사라졌을 뿐, 지금도 많은 학교에서 두발규제를 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교육부는 두발문제를 학교의 자율로 떠넘겨 버림으로써 두발규제에 대한 원성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학생이 두발문제로 교육청에 항의해봤자 교육청에서는 학교의 자율이라며 학교로 책임을 떠넘겨 버리고, 사실상 이름뿐인 학생회는 학생들의 의견을 전혀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예 징계를 각오하고 조직적으로 투쟁한다면 모를까 이 문제에 대해 학생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사실상 완전히 막혀버렸다.

게다가 이미 철지난 뉴스 노컷에 대해 관심 가져주는 곳도 없기에 학생들로서는 어디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다. 두발자유화 문제에 대해서는 순전히 학교측의 자비(?)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물론 기대하는 학생도 없겠지만).

▲ 두발규제에 대해 성토하는 글들..(아이두 두발규제 토론방)
ⓒ 아이두
"야! 접때 우리 학생회장이 두발자유화 한다고 한적 없었어?"
"아니, 우리학교에서 그게 가능할 거 같아?"
"그럼 뭐였지. 두발 뭐라뭐라 누가 그랬던 거 같은데…."
"뭐! 저는 두발자유화니 이런 불가능한 약속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랬을껄?"
"아! 그랬나?"
"그럼, 넌 두발자유화 했으면 좋겠어?"
"당연하지"

자율학습시간에 친구와 나눈 이야기다. 두발자유화를 원하고는 있지만 학교와의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학생들 스스로 "말해봤자, 그게 되겠냐"며 체념하고는 그저 두발 단속하는 선생님이나 원망할 수밖에….

아이들이 가정 다음으로 가장 처음 접한다는 작은 사회 학교. 그곳에서 우리 학생들은 자신의 권리에 대해 스스로 포기하고 체념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노컷운동 4년 후…. 우리네 학교에서는 여전히 '잘 컷'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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