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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소산 중턱. 구불구불한 산길을 버스로 조심 조심 넘어가는데 갑자기 발랄한 분위기의 휴대폰 벨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소리가 잘 안 들려 전화통화는 실패로 끝났다.

"너무 산이 높아서 휴대폰이 안 터지네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가이드는 애꿎은 휴대폰을 탓한다.

"이 휴대폰이 일본 안에서 있을 때 사용하는 일본산 휴대폰인데, 여기 일본은 기지국을 많이 설치하지 않아서 그런지 이런 높은 산 중턱이나 지하 1층만 되도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아요. 한국은 그런대로 잘 터지잖아요."

나름대로 어색함을 농담으로 마무리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낯선 휴대폰 벨소리가 허공을 가르는 것이 아닌가?

산악 지형에 강한 한국 휴대폰

깜짝 놀라 뒤를 바라보니 일행중 거의 60세 정도 되어보이는 아저씨가 여유있게 휴대폰을 꺼내고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한국 이동통신사에서 주장하던 해외 로밍서비스의 성능을 외국에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던 것.

그러나 "하필이면 모든 구속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보내는 여행길에 굳이 로밍 서비스까지 받아서 벨소리 소음을 유발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불만이 잠시 들었다. 그러나 그 부부의 통화내용을 듣고나서 나의 불만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 나다. 여기 일본에 잘 도착했다. 지금 아소산 구경하러 가고 있다. 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들 말고… 엄마 바꿔줄게."

부인에게까지 전화를 건네며 서울에 있는 자녀와 정겹게 휴대폰 통화를 나누는 부부의 정겨운 모습이란…. 알고보니, 서울에 있는 자녀가 부모님들만 보낸 게 걱정스러워 수시로 안부를 물으려고 해외 로밍서비스를 신청한 것이었다.

이쯤 되면 한국 이동통신사의 해외 로밍서비스는 부모님의 안부를 걱정하는 자녀의 마음을 듬뿍 담아 낯선 이국에 도착한 부모님에게 직접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사랑의 가교 역할을 하는 셈 아닐까.

부모님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자녀의 정 때문인가? 아니면 한국 휴대폰의 성능이 좋아서일까? 벨소리만 울리고 통화가 잘 안 됐던 일본산 휴대폰과는 달리, 산악지형에서 잘 터지고 잘 들린다는 모 휴대폰 제조사 광고처럼 일본의 산악지형에서까지 한국 휴대폰은 잘 터졌다. 한국 휴대폰 만세!

휴대용 디지털기기는 속박과 구속(?)

디지털 기기가 우리의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인간의 생활이 더욱 편리해지고 각종 스트레스가 줄어들거라 생각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기기로 인해 스트레스가 더욱 가중되는 기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여행지까지 따라오는 휴대폰과 노트북 컴퓨터 때문인데 이 두 기기 때문에 기껏 휴가를 받아서 휴양하러 온 휴양지에서까지 메일을 수시로 확인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업무로 전화통화를 해야 하는 등 제대로 쉬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스트레스도 결국 굳이 사무실이나 서재 같은 정해진 공간이 아닌 자유로운 공간에서 사용하고자 휴대가 간편한 디지털 기기를 만든 인간이 자초한 것이라고 체념하자니,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처치해야 할 지 고민이 많다.

그뿐인가? 이제 웬만한 국가에는 휴대폰 로밍서비스가 가능해졌으니, 로밍서비스가 전세계적으로 확대될수록 아무도 모르게 며칠간 숨어있을 곳을 찾는다는 것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디지털 기기를 아예 휴대하지 않거나 꺼놓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소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아소산 중턱에서 가장 한국적인 정이 흐르는 디지털 기기 사용을 목격하면서 '휴대용 디지털 기기는 바로 속박과 구속'이라는 나의 부정적인 인식이 어느 정도 완화됐다.

결국 디지털 기기를 인간처럼 따스한 피가 흐르는 기기로 사용하느냐 차갑고 냉정한 철덩어리로 만드느냐도 또한 인간 스스로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이왕 사용해야 하는 디지털 기기들이라면 보다 차가운 이성보다는 따스한 감성을 지닌 채 사용해보자. 그러면 디지털 기기들도 따스한 마음으로 보답하지 않을까? 아소산에서 목격한 한국과 일본 사이에 떨어져 있는 부자지간을 이어주는 가교가 되는 휴대폰 해외 로밍서비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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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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