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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숯불 같은 땡볕이 살갗을 태우다 못해 뾰쪽한 바늘이 되어 콕콕 찌른다. 땡볕이 기울고 숱한 별들이 총총 빛나기 시작하는 밤이 와도 실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잠 못 이루고 밤새 이리저리 뒤챈 나날도 제법 되었다. 그나마 모기라도 없다면 어떻게 견뎌볼 만도 할 텐데.

그래. 이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바닷가나 계곡을 찾는가 보다.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작정 그렇게 떠날 수만은 없다. 여름 휴가지에 가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낼 것인가를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년에 꼭 한 번 있는 여름휴가를 물놀이만 하면서 보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럴 때 파도소리 들리는 바닷가나, 새소리 물소리 들리는 깊은 계곡에 드러누워 큰 부담 없이 읽을 만한 책 세 권이 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좁쌀 한 알>(도솔)과 시인 박상건의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당그레), 그리고 오지여행전문가 도용복의 <신비한 나라>(선)가 그것이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삶 조명한 <좁쌀 한 알>

▲ 최성현 <좁쌀 한 알>
ⓒ 도솔
"자네 집에 밥 잡수시러 오시는 분들이 자네의 하느님이여. 그런 줄 알고 진짜 하느님이 오신 것처럼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해야 혀. 장사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은 일절 할 필요 없어. 하느님처럼 섬기면 하느님들이 알아서 다 먹여주신다 이 말이야."

학교 선생님에게는 누가 하느님인가? 그렇다. 학생이다. 공무원에게는 누가 하느님인가? 지역주민이다. 대통령에게는 국민이 하느님이고, 신부나 목사에게는 신도가 하느님이다. -46쪽, <좁쌀 한 알> '너나 나나 거지' 몇 토막


<좁쌀 한 알>은 우리나라 생명운동의 대부이자 '원주의 예수'라 불리는 무위당 장일순(1928-1994) 선생의 글씨와 그림, 일화가 소롯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장일순 선생의 서거 10주기를 맞아 <숲속생활체험학교>를 열고 있는 최성현씨가 지난 2002년 겨울부터 1년 6개월간에 걸쳐 리영희, 김지하, 이창복, 김민기 등을 만나 장일순 선생의 살아 생전의 의연한 모습을 재조명했다. 그리고 재야 서화가이기도 했던 장일순 선생의 글씨와 그림까지 모았다.

장일순 선생은 시인 김지하의 스승이다. 그리고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이 단 한 번 보고 반했으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이 어디를 가더라도 같이 가고 싶어했다는 분이다. 또한 <만다라>의 소설가 김성동과 <아침이슬>의 김민기가 아버지로 여겼으며, 판화가 김철수가 이 시대 단 한 분의 스승으로 모셨던 분이기도 하다.

장일순은 20대 초반에 아인슈타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세계를 하나의 연립정부로 만드는 '원 월드 운동'에 참여했다. 20대 중반에는 원주에 대성중학교를 세웠으며, 30대 중반에는 미국이나 소련의 간섭을 받지 않고 통일을 해야 한다는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주창하다가 정치범으로 3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어째서 '조 한 알'이라는, 그처럼 가벼운 호를 쓰십니까?"

장일순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나도 인간이라 누가 뭐라 추어주면 어깨가 으쓱할 때가 있잖아. 그럴 때 내 마음을 지긋이 눌러주는 화두 같은 거야. 세상에 제일 하잘것 없는 게 좁쌀 아닌가. '내가 조 한 알이다.' 하면서 내 마음을 추스르는 거지."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열일곱 시인의 창작 무대

▲ 박상건 <빈 손으로 돌아와 웃다>
ⓒ 당그레
시인이자 섬여행전문가인 박상건(43)이 펴낸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는 고은, 신경림, 송수권, 도종환, 나태주, 나희덕, 안도현 등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열일곱 시인의 창작실과 창작무대를 둘러보고 느낀 이야기다.

글쓴이는 이를 위해 2년 동안 바람처럼 떠돌며 바람처럼 일생을 살아가는 시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그리하여 깨달은 것은 "저마다 집필 방법과 창작의 특징, 생활의 방식은 달라도 바람처럼 걷는 기항지"는 "세상을 감싸 안으려는 삶과 문학의 일치점을 향하는 열정적 삶의 감동"이었다고 결론 짓는다.

"어느 시인은 남도의 후미진 섬과 산골에서 평생 치렁치렁한 남도의 한을 시로 지으며 살았고, 어느 시인은 어두운 시대일수록 이녁의 시를 불씨로 지피며 시대의 등불을 켜왔다. 어느 후배 시인은 그런 선배의 길 따라 길거리 교사생활을 하였고 시를 통해 시대의 종소리를 울리려고 몸부림치기도 했다."-<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책 머리말' 몇 토막

박상건은 시인 신경림의 시세계에 대해서 "그이의 시에는 굴절의 한국사가 배여 있다. 그래서 그이의 시는 민중의 역사이자 우리네 슬픈 역사이기도 하다"며 "아득하고 버거운 우리네 농촌 현실을 극명하게 그리기도 하고 고향의 정겨운 얼굴과 인정이 출렁인다"고 말했다.

<백제행>의 시인 이성부에 대해서는 "그이가 '5월 광주' 그 현장에 없었다는 이유로 10여 년간 시를 쓰지 않았다"며 <유배시집·5>에 실린 시 "나는 싸우지도 않았고 피 흘리지도 않았다./ 죽음을 그토록 노래했음에도 죽지 않았다./ 나는 그것들을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었다"를 인용하면서 이성부 "스스로의 자책이자 가슴 뭉클한 사내의 솔직한 속내"라고 강조했다.

"고은 시인은 눈물이 많은 편이다. 젊은 날 친구 하숙집에 찾아갔다가 등꽃이 흐드러지게 핀 마당에 달빛이 확 쏟아지는 것을 보고 새벽 3시까지 운 적이 있었다. 다 울고 나니 울음이 말라버릴 정도였다. 친구는 '우리 방에 귀신이 들어서 안 된다'며 그이를 쫓아내 10년 동안 절교하기도 했다.

'미당 담론'의 당사자였던 그이는 미당 빈소를 찾아가 천장만 올려보다 끝내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눈물의 화해라고 말해도 무방하리라. / 최근 그이는 '요즈음 시인들이 너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아쉬움을 토로한 적도 있다. 물론 작금의 시들이 가슴에서 터져 나오지 않고 머리로 짠 문학행위에 대한 질책이다."-140쪽,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술 먹지 않는 젊은 시인들을 질책하는 눈물 많은 시인' 몇 토막


입품 발품 팔아 쓴 투르크메니스탄 여행기, <신비한 나라>

▲ 도용복 <신비한 나라>
ⓒ 선
오지여행전문가 도용복이 입품 발품을 팔아 쓴 <신비한 나라>는 중앙아시아의 보물창고라 불리는 투르크메니스탄에 대한 국내 유일한 여행기이다. 특히 투르크메니스탄은 그동안 이방인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오지여서, 글쓴이조차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간신히 둘러본 곳이다.

"해마다 거르지 않고 두 달 가량의 여행일정을 잡아 주로 문명의 피안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의 오지를 둘러본 지가 어느덧 십 년에 이른다./ 중앙아시아 몇 나라도 생소하지는 않으나, 입국허가가 불가능하다시피 하는 관계로 여행자의 발길이 거의 닿지 못했던 투르크메니스탄을 우여곡절 끝에 탐방할 수 있게 되었다." -<신비한 나라> '책 머리말' 몇 토막

중앙아시아의 오지 투르크메니스탄은 소련이 무너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비에트연방공화국에 포함되어 있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지난 1991년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과 함께 독립한 중앙아시아 5개국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는 1992년도에 투르크메니스탄과 국교를 맺고 연간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활발한 교역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투르트메니스탄이란 이름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주 낯설기만 하다. 게다가 한번 입국을 하려면 무작정 기다려야만 비자를 겨우 받을 수 있고, 공식 가이드가 없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다소 폐쇄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투르크메니스탄은 우리에게 그리 낯선 나라가 아니다. 왜냐하면 '투르크'를 중국식으로 표기하면 돌궐족이란 뜻이 되기 때문이다. 돌궐족이 누구였던가. 한때 중앙아시아를 호령하던 공포의 기마군단을 갖추고 있었던 나라가 아니던가. 우리의 역사서에도 종종 등장했던 그 유목 민족 말이다.

글쓴이에게 투르크메니스탄은 두 가지 얼굴로 다가선다. 하나는 무한한 자원으로 철저하게 계획된 현란한 미래 도시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어느날 갑자기 헌법을 제멋대로 뜯어고쳐 종신대통령, 즉 '살아있는 신'이 되는 정치적 후진성이다.

"투르크멘의 유적들은 투르쿠 선조의 창조적 문화유산이기보다는 거의가 이웃 민족에게서 받은 피지배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이는 투르쿠들이 강력한 통일국가를 건설하지 못한 까닭이라 하겠다. 선사시대부터 투르쿠들은 중앙아시아를 발판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누비고 다니면서 지축을 뒤흔드는 용맹함을 떨치기는 하였으나 척박하기만 한 이 땅에 응집된 힘의 나라를 세우지는 못했다." -<신비한 나라> '황량한 유적지 니사' 몇 토막

좁쌀 한 알 -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

최성현 지음, 도솔(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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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 지음, 당그래(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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